고운로 그 아이 / 그럼에도 웃을 수 있다면
"뭐라고요? 종이배(내 별명)가 할머니라고요? 종이배, 사십 대 아니었어요?"
환갑 진갑 다 지난 제가 어쩌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서 듣게 되는 말이랍니다.
"와, 진짜 동안이신데요? 전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아주 조금 더 많은 줄 알았어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런 말을 들으면 저 역시 눈꼬리가 초승달처럼 바뀌면서 기분이 좋아지곤 했어요. 아이들의 말이 다 사실인 줄 알았거든요. 마음속에서는 '아이들의 눈은 정확하니까'라고 생각하면서 괜히 거울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곤 했지요. 하지만 요즘엔 안답니다,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척'하면서 해주는 립서비스라는 것을요. '젊어 보인다'와 '날씬하다' 앞에서 기분 나빠할 여자 어른은 없다는 걸 아이들도 이미 간파한 거죠.
아무리 영악한 아이들이 띄워준다고 해도 나이가 들면서 거울 보는 횟수는 많이 줄었습니다. 여행을 가도 아름다운 자연이나 배경, 가족들 사진을 주로 찍지 제 얼굴이 들어간 사진은 별로 찍지 않아요.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화면 한 귀퉁이에 손을 올리거나, 그곳에 있었다는 표시로 두 발을 찍는 정도? 가족들이 함께 찍는 셀카는 팔을 길게 뻗어 "얼굴은 작게, 다리는 길게, 뱃살은 가리고!" 찍으라고 하지만, 찍힌 사진을 보면 표정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웃고 있어도 영혼이 없는 듯한 묘한 표정입니다.
[글루미 릴레이] 열두 번째 글인 고운로 그 아이 작가님의 글 '그럼에도 웃을 수 있다면'에서 답을 찾아봅니다.
"웃음은 인간관계에서도 큰 역할을 한다. 함께 웃음으로써 동질감과 친밀감이 생기고, 서로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내가 사람들을 웃기는 일이 그들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내 마음의 선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표현일까?"(200쪽)
제가 어느 글에선가 썼던 것 같은데요. 옛날에 쌍둥이 직장 상사를 모신 적이 있습니다. 비슷한 직종에 계셨던 한 분은 우리 사무실에 계셨고, 또 한 분은 한 건물 옆에 있는 다른 사무실에서 일하셨습니다. 외모와 목소리, 행동거지는 물론 유머 코드까지 닮았던 두 분은 자주 점심식사를 같이 하시곤 했습니다. 서로의 근무지를 방문하시는 일도 잦았고요.
눈썰미가 없는, 특히 사람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저는 두 분을 구별할 수 없었어요. 두 분이 앞에 걸어오시면 제 앞에서 저를 보고 웃어주는 분이 제 상사였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그분께는 늘 1,2초씩 인사를 늦게 하는 결례를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렇습니다. 웃음은 사람을 향합니다. 아는 사람이라야 웃을 수 있고, 웃음의 물을 주면 사람을 향한 앎과 사랑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납니다. 사람을 향하지 않고 혼자 웃었다가는 머리에 꽃을 꽂았느냐는 오해를 받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을 향해 잘못 웃었다가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셀카 사진의 표정이 어색한 것도 사람을 향해 웃는 게 아니라 기계를 향해 웃어서 그런가 봅니다.
오랫동안 아이들하고만 지냈던 제가 요즘은 초로의 여인들을 만날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대체로 성당에 다니는 분들인데, 종일 기도만 하실 것 같은 분들인데도 의외로 보톡스나 필러, 쌍꺼풀 수술 등 성형 시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눈은 어디가 잘한다, 입가 주름은 어느 병원이 최고다 하며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요. 저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야라 낯설기만 합니다.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 같기도 하고, 빌딩 숲에 둘러싸인 서울 한가운데 혼자 멀뚱멀뚱 서 있는 촌노인네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집에 와서 거울을 봅니다. 덥다고 텃밭에는 자주 가지도 않았는데 양 볼에는 기미가 잔뜩 올라왔네요. 가늘어지고 흰 머리칼이 다 덮어 주지 못하는 두피가 더 넓어졌습니다. 눈두덩은 더 처지고 만져보지 않아도 피부는 푸석해졌어요. 거울을 보면서 물어요. '당신, 누구슈?'
나이가 들수록 거울 안에는 기대했던 제 얼굴이 없습니다. 젊을 적 제 얼굴이 사라졌을지라도 절 닮은 제 아이의 쨍하게 웃는 얼굴이 보이면 좋으련만, 별로 닮고 싶지 않았던 돌아가신 부모님 얼굴이 겹쳐 보입니다.
보톡스와 필러를 아무리 쏟아붓는다고 해도 거울 속 사람은 바뀌지 않겠지요. 우스갯소리처럼,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거 아니니까.
그래도 거울 속에 있는 사람을 향해 씩 웃어 봅니다. 어차피 지어질 주름이라면 웃상 할매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서요. 눈가에 자글자글 주름이 파여도 사람을 향해 자주 웃을 수 있는 노년이 된다면 좋겠어요. 하회탈처럼 보일지 고사상에 올라와 있는 맘좋은 돼지머리를 더 닮았을지는 모르지만, 웃을 때마다 상대를 향한 앎과 사랑이 깊어지듯, 거울 안에 든 사람을 더 알고 사랑하게 되면 좋겠습니다.
"벽을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늘 웃음 코드를 사용해"(203쪽) 오신 고운로 작가님!
"웃음에는 힘이 있다. 그 힘을 믿고, 웃음이 뿜어내는 빛줄기를 따라 함께 걸어가 보면 좋겠다."(203쪽)라고 하셨으니, 웃상 할매를 꿈꾸는 저도 그 길에 동행시켜 주시렵니까? 그럼 성형외과 전화번호는 따지 않아도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