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희원이 작가님처럼 글쓰기

희원이/창 너머 풍경의 속도, 그리고 오래된 무언가(ft. 글방구리)

by 글방구리

희- 희원이 작가님처럼 글을 써 보려 합니다, 오늘은요. 그래서 '희'라는 한 글자를 딱 써 놓았는데, 우와, 이거 첫 시작이 참 어렵군요! 저는 글쓰기 수업 때 아이들에게 가끔 옛이야기를 창작해 보게 하는데요, 그럴 때면 "마음대로 상상해서 써. 하지만 너무 억지스러우면 재미없는 것, 알지?"라고 말하곤 합니다. 삼행시 형태의 글도 운을 맞추려다 보면 억지스러워지기 쉬운데, 희원이 작가님은 삼행시, 사행시, 아니 어떤 때는 긴 문장을 가지고 놀이글처럼 쓰곤 하시죠.


원- 원래 [글루미 릴레이]는 오랜 문학상을 받은 차례대로 쓰는 거였어요. 그런데 어찌어찌 날짜를 조정하다 보니 저는 희원이 작가님에게서 바통을 넘겨받는 열 번째 주자가 되었답니다. 전 중간 정도가 된 게 좋았어요. 아이들 운동회 때 하는 계주도 첫 주자와 마지막 주자에 관심을 더 쏟게 되잖아요. 릴레이에 참여한다고는 했지만 제가 과연 다른 작가님들에게 폐가 안 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제 앞 주자인 희원이 작가님 글방을 더 자주 드나들었던 것 같아요. 작가님이 어떤 글을 써서 넘겨주실까, 이 분이 평소 어떤 스타일의 글을 쓰시는지 궁금해서요.


이- 이메일이 도착했어요, 드디어. 희원이 작가님은 앞 주자인 오서하 작가님의 글에서 '빨간 풍선과 태양'이라는 문장을 받으셨네요. 하나의 같은 문장으로 만든 네 번의 변주와 함께, 지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에 서 있지 않아도 "자기보다 더 소중한 누군가를 위한 삶(168쪽)"을 의식하며 "멈춰 서서, 스쳐 지나간 풍경을 떠올리는(169쪽)" 장면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작- 작심하고 여러 번 톺아 읽다가 저는 이 구절에 줄을 그었습니다. "때로는 멈춰 서서, 스쳐 지나간 풍경을 떠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떤 순간이든 그 순간만의 풍경은 있는 법이고, 놓친 풍경만큼이나 켜켜이 쌓인 풍경도 있는 법이니까. 그런 풍경은 종종 설움도, 아쉬움도, 그리움도 뒤섞인 채 이름을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먹먹하게 번졌다. 익숙하고도 오래된 저녁노을처럼."(169쪽) 그리고


가- 가상의 인물이 아닌 저 자신의 삶과 죽음에 이 문장을 대입해서 써 보기로 했지요. 신약을 발명하게 되면 수많은


님- 임상 실험을 하게 될 텐데, 그 효과를 가장 잘 입증하려면 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써야 하지요. 우리의 [글루미 릴레이]가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면 글을 읽고 쓰면서 저부터 치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처-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너무 긴장하지 말자고,


럼- 엄청나게 잘 써 보겠다고 자신을 몰아세우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글- 글을 아무리 잘 쓴다고 해도 한 사람의 삶을 다 담을 수 없지만, 인생에 딱 한 번 맞이할 죽음과 장례식을 상상하며 쓴다면 제 글에 진정성은 담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희원이 작가님의 글에 쓰인 '대전역'과 '중년 부인'은 제 현실과 너무 맞닿아 있기도 했고요.


쓰- 쓰다 보니 희원이 작가님께 드리는 글이 아니라 작가님에게서 받아 쓴 제 글 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하지만 이 연재브런치북에서는 어차피 제 글은 건너뛰려고 했으니, 열 번째 이야기 '제 장례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는 이렇게 퉁치자고요. 혹여 이게 무슨 말인가 궁금하신 독자분이 계시다면 브런치 작가 18명이 함께 쓴 [글루미 릴레이](마니피캇)를 구입해서 읽어주세요.^^


기- 기차는 대전역에 섰고, 제 장례식을 다녀간 중년 부인은 "사랑은 살아 있을 때 할 수 있고, 회한이 섞이지 않은 진정한 슬픔 역시 살아 있는 순간에만 그 가치가 유효하다는 것(180쪽)"을 깨닫고 돌아갑니다. 끝이라 생각했던 시작은 어떤 모습일까요? 다음 주에 '엔딩의 시작'(진아)을 함께 열어 보아요.




keyword
이전 09화마음에 동화 한 편 살고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