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서하(여등) / 행복한 꽃
두 살, 네 살 터울의 오빠 언니가 있었던 덕분에 저는 한글을 꽤 일찍 뗐습니다. 한글을 읽고 쓸 줄 안 덕에, 차린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는 것처럼 언니가 다니던 교실에 책걸상 하나 더 놓아주면서 제 국민학교 생활이 시작되었고요. 남들보다 두 해 앞선 여섯 살 때였습니다. 저는 이미 그렇게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취학 연령인 여덟 살이 되자 취학통지서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기막힌 일이죠. 옛날 우리나라 교육 행정이 이렇게 어설펐어요.
취학통지서가 나온 여덟 살 3학년, 그 무렵이었을 거예요. 제가 아주 좋아했던 동화책이 있었어요. 집에는 계몽사였던가, 붉은색 표지였던 세계 명작동화같은 전집도 있었지만 제가 제일 좋아했던 동화책은 집에 몇 권 안 되던 단행본 중의 하나였어요.
제목은 [풍금 속 나라]. 작가와 출판사는 모르지만 대체적인 줄거리와 표지는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그 이후 자라면서 많은 그림책, 동화책, 세계 명작을 읽었어도, 오랫동안 제 '최애 동화책'은 이름 모를 작가가 쓴 [풍금 속 나라]였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먼저 만나 가장 다정하게 기억되고 있는 책이지요.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이 책의 실물을 구하고 싶어 온라인 헌책방에서 검색해 보았지만 찾지 못했어요.
예전에는 교실마다 풍금이 있었지요. 저는 풍금을 볼 때마다 풍금 속 세상을 여행하는 동화 속 주인공이 되었답니다. 풍금 안에는 누가 살까,로 시작된 상상의 날개는 텔레비전 안에는 누가 살까, 장미꽃 속에는 누가 살까, 시계 안에는 누가 살까 등등 끝없이 펼쳐졌지요. 지금도 [풍금 속 나라]를 생각하면 세파에 찌든 제가 아니라 착한 꿈을 꾸었던 어린 시절의 저로 잠시나마 되돌아가는 기분이 들어요.
[글루미 릴레이]의 여덟 번째 이야기는 오서하 작가님이 쓰신 '행복한 꽃'이라는 제목의 동화입니다. 글쓰기 교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구성으로 세 편의 작은 이야기가 담겨 있지요.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작가님의 다른 동화가 궁금해졌어요. 우리 책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책은 아니어서요. 저는 작가님이 내신 여러 권의 책들 중에서 [사라진 학교]라는 책을 구입해 읽었는데요, 그 책을 읽고 나니 작가 소개를 써준 챗GPT가 꽤 믿을 만하게 느껴지더군요.
그의 글은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세상의 틈새에서 빛나는 순간들을 포착해, 한 편의 동화처럼 따뜻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소중한 기억으로 남기를 기대하며, 앞으로도 따뜻한 서사가 이어지기를 바란다.(159쪽/챗GPT가 소개한 작가 소개 중)
작가님이 쓰신 '행복한 꽃'을 다시 읽으며 행복의 정의들을 마음에 담습니다.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진 않을 거야. 거친 비바람과 위기와 위기를 함께 극복했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꽃은 행복을 알게 된 것이라 생각해."(146쪽)
"맞아. '행복은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에 달려 있다'라고 한 명언이 생각났어."(같은 쪽)
'어쩌면 행복이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몰라.'(150쪽)
"동화를 만들면서 생각했는데요. 행복은 마법처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 어릴 때 동화를 읽던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랐어요."(155쪽)
'오서하' 작가님의 이름을 단 동화책이 세상에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작가님이 쓴 이야기가 민들레 씨앗처럼 어떤 아이들의 마음에 날아가 앉기를요. 빠르게 바뀌는 영상과 손 안의 휴대폰에 시선을 빼앗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아이들이 각자 마음에 동화 한 편을 오래오래 품고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가 쓴 글이 아니어도, 아니 오서하 작가님의 글이 아니어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그 어느 동화작가의 글이라도 무방하겠지요, 그것을 읽고 마음에 품은 어린시절이 따뜻하고 평화로웠다고 여겨진다면요.
(오서하 작가님의 필명은 여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