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길 / 신의 옷자락
브런치 세상에서는 가끔 '환속(還俗)'한 작가님들을 만납니다. 제가 가톨릭 신자다 보니 불교에서 승려 생활을 하다가 환속한 분들보다는 가톨릭에서 성직이나 수도 생활을 하다가 평신도로 돌아온 분들에게 관심이 가지요.
저도 젊어 한때 수도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었으니 저 역시 환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환속'이라는 말이 적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환속은 성직자나 수도자나 승려가 그 직을 내려놓고 세속으로 돌아온다는 것인데, 그들이 살던 신학교나 수도원, 절간이 심심산골에 있다고 해도 그곳 역시 '또 다른 세속'일 뿐일 거거든요. 종교적으로 다른 삶의 양식을 취해서 사는 것이지, 그들만 세속이 아닌 천국에 발을 딛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어쨌든 산을 오르며 열심히 도를 닦다가 퍼뜩 '이 산이 아닌가벼~' 하는 마음이 들어 하산을 했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세속'에서 살았던 경험은 인생길에 더없이 소중한 배움이 되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각기 다른 동기로 모인 다양한 인간 집단 속에서 속내를 다 드러낸 채 살아가게 되는데, 그렇게 공동체적인 생활을 하며 갈고 닦이다 보면 사람에 대한 이해와 지혜가 쌓이게 마련이거든요.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수녀원에서 배웠다'라고 할 만큼 제게는 성장의 기회가 되었던 시절입니다.
그러나 가던 길에서 방향을 틀고 나면 뜻하지 않은 방황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아닌 하느님과 손가락 걸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나 스스로 정한 길을 끝까지 살아내지 못했다는 자괴감,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긴데 괜히 관뒀나' 하는 후회가 몰려오기도 합니다. 성직자 수도자의 삶이 마치 '성공'한 인생이라도 되는 양, 그 길을 끝까지 가지 못한 사람은 결국 실패한 거라고 가슴을 치는 거지요. 아, 이건 제가 그랬다는 겁니다. 단지 제 경험이었을 뿐, 길을 바꾼 모든 분이 그렇다고 일반화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살던 어느 날이었어요. 그날은 월요일 저녁이었지요. 직장에서 있었던 갈등으로 촉발된 우울과 분노, 거기에다가 주기적으로 덮쳐 오던 자책과 후회까지 더해져 저는 한껏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깊은 우울감이 바닥을 치던 저는 무작정 길을 걸었어요. 한참을 걷다가 제 발걸음이 멈춘 곳은 동네 성당 앞이었죠.
보통 월요일은 성당에 미사가 없어요. 문이 아예 닫혀 있는 곳이 많고요. 여기도 닫혔겠지, 하고 슬그머니 성당문을 밀어 보았는데, 어라? 문이 열리는 거예요. 2층에 있던 대성당까지 올라갔지요. 아무도 없는 성당에는 감실 앞 성체등만 켜져 있었습니다. 제대 뒤편에 걸어 놓은 어두운 색조의 성화가 빨간 불빛을 받아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루카복음 15장, 되찾은 아들의 비유 일명 '돌아온 탕자'를 그린 렘브란트의 그림.
그림에 눈길을 둔 채, 저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습니다. 기도가 아니었어요. 성호경도 긋지 않고, 주모경도 외우지 않고, 무릎을 꿇지도 않은 채 그냥 중얼거리듯 말했어요.
'주님, 저 왔어요.'
...
잠시 후 말씀이 들렸습니다. 귀가 들었는지 마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널.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
...
그렇게 저는 저의 하느님을 다시 만났고, 그분의 품에서 오열했습니다.
[글루미 릴레이]의 열여덟 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인 이원길 작가님의 글 '신의 옷자락'에서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다시 만납니다. 이 유명한 복음 말씀은 묵상할 때마다 언제나 새롭게 다가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도 전에 유산을 미리 달라고 청해서 아버지 곁을 떠난 둘째 아들. 그렇게 받은 돈을 흥청망청 다 날리고 삶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나서야 아버지에게 돌아가지요. 오매불망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돌아온 아들을 다시 받아들이며 성대한 잔치를 열어줍니다. 그러나 늘 아버지 곁에 있던 큰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자비로운 모습이 불만스러울 뿐이고요.
"둘째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에게 돌아왔다고 해서
둘째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화되거나 나아진 바는 없었다.
귀환의 파티도 그때뿐, 고단한 목축의 일상은 그대로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제 둘째는 안다.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곳이 언제나 아버님의 곁이라는 것을....
그렇게 난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268쪽)
불 꺼진 성당에서 회심의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해서 저 역시 "고단한 목축의 일상"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알아요, 제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든지, 저를 기다리고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요. 돌아가고 싶을 때는 돌아갈 곳이 있고, 저를 받아줄 분이 있다는 것을요.
어떤 오물 속에서 뒹굴며 살았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내게 주신 것들을 다 잃어버렸다고 해도 탓하지 않으시는 분, 내가 그분 곁을 떠났다고 해도 나를 한시도 잊지 않고 기다리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요.
아! 그리고 하나 더.
그때 그림 앞에서 저도 모르게 뱉었던 한 마디, 그게 진짜 기도였나 봐요.
어쩌면 기도란 그리 쉬운 건가 봐요.
*대문 사진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