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중학교 3학년이 되도록 원없이 놀기만 하던 딸내미가 갑자기 '예고' 진학을 하고 싶단다. 이런저런 우려도 있었지만, 하고 싶다는 데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어 부랴부랴 미술학원을 알아봐 주었다.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가장 먼저 사달라고 한 건, '전동 연필깎이'와 '전동 지우개', '전동 지우개똥 치우개'였다.
그때까지는 세상에 그런 물건이 있는 줄도 몰랐다. 연필깎이라 하면 기차 모양으로 된, 손잡이를 돌리는 것에서 더는 진화한 물건이 없을 줄 알았다. 지우개도 샤프 모양을 한 지우개가 있는 줄은 알았으나, 그것이 버튼을 누르면 위이이잉 소리를 내면서 자동으로 지워줄 줄은 몰랐다. '전동 지우개똥 치우개'라니, 대박. 지우개를 쓰고 나면 생기는 지우개똥이야 손으로 쓱쓱 털어 버리거나, 자그마한 책상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치우면 된다고 생각했지, 책상 위의 미니 로봇처럼 자동으로 빨아들여 주는 신박한 제품이 있을 줄이야.
내가 문구의 진화에 대해 몰랐던 것처럼, 아마 아이도 부엌 살림의 진화를 모르고 있을 거다. 마늘을 얇게 채를 썰어 칼등으로 누르거나, 칼 손잡이 뒷부분으로 찧는 것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전기를 꽂아 다지는 '마늘 다지기'가 나온 지 오래되었다. 요즘엔 USB 충전식으로 나온 것들도 있다. 볕이 좋을 때 몇날 며칠 내다말리던 무말랭이, 고구마말랭이는 식품 건조기 안에서 때깔도 곱게 말려진다. 전기가 식품만 말려주는 게 아니다. '김치냉장고'에 이어 최고의 히트 가전이라고 칭송받고 있는 빨래건조기는 아무리 장마철이라고 해도 하룻저녁 안에 뽀송뽀송하게 말려준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건, 쉽게 쓸 수 있는 '전기' 덕분이다. 내 방만 해도 그렇다. 우리나라가 삼면이 바다라면, 내 방 벽에는 삼면에 전기 콘센트가 있다. 휴대폰, 조명등, 노트북, 블루투스 이어폰, 재봉틀에 피로를 풀어줄 마사지 기계까지 전기가 필요한 물건들은 종류도 다양해서 삼면이 콘센트라도 부족하다. 예전에 비하면 제품에 직접 연결하는 것보다 '충전식'이 많아졌다. 휴대폰만 해도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여분의 배터리가 있어 갈아끼우면서 사용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고, 유선이 아닌 무선충전을 하기도 한다.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남아 있지 않지만,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배터리를 넣어 움직이는 장난감이 꽤 있었다. 얼마 사용하지 못하면 갈아끼워줘야 해서 AA, AAA형 배터리 여분을 충분히 사다놓아야 했다. 체온을 자주 재야 하는 요즘, 수은주를 겨드랑이에 끼거나 혀 밑에 넣고 재던 체온계도 요즘은 찾아볼 수 없어 체온계에 넣는 동그란 배터리도 생필품 목록에 들어가 있다.
그런 중에도 아직은 사고 싶지 않은 가전이 있으니, 식기세척기다. 대체로 그릇이 뽀득뽀득 잘 닦였는지는 맨손으로 확인하고 싶어서다. 물론 밥 먹고 난 뒤에 설거지가 귀찮아져서, 식구들이 가끔 가위바위보나 화투 한 판으로 설거지 당번을 정할 때도 있지만, 작은 부엌에 또 하나의 가전을 들여놓고 싶지는 않다. 식기세척기를 들여놓는 날은 내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연필 깎는 법을 가르쳐 주었었다. 연필은 칼로 깎아 쓰는 거라고, 연필을 쓰다가 부러지면 스스로 깎아 쓸 줄 아는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손가락을 벨 수도 있겠지만 점차 힘을 조절할 줄 알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작은아이한테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그 유명한 기차 모양의 연필깎이를 사줬었다. 그때 그렇게 했던 것이 '전동 연필깎이'에까지 이르게 한 건 아닌지 반성이 된다. '미술 하려면, 걔는 미술 하는 아이라서 필요한 거야'라는 핑계를 대기는 하지만.
아이가 내놓은 교복 셔츠의 목덜미와 소맷부리를 손으로 비벼 빨다가, 문득 아이는 손빨래를 할 줄 알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마 잘 못 할 것 같다. 그동안 빨래는 엄마가, 아니 섬유에 따라 다르게 선택해서 빨아주는 진화한 세탁기가 해주었으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면 아이만 걱정되는 것이 아니다. 마늘 다지기가 고장 나면 나 역시 튀지 않게 칼등으로 마늘을 잘 찧을 수 있을까? 일일이 번호를 누르지 않아 식구들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상황으로 봐서는, 뇌를 사용하지 않아 기억력이 약화되듯, 손을 사용하지 않으면 손도 점점 굼떠질 텐데.
얼마 전에 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누가 그러더라? 나이 칠십 되면 온 몸이 한 번 바뀐다고."
"무슨 말이야?"
"이제는, 칠십쯤 되면 무릎관절도 바꾸고, 이빨도 여기저기 갈아끼우고, 심지어 심장까지 인공으로 갈아끼우고, 그렇게 온 몸을 한 번 갈아끼우고, 그걸로 또 남은 삼십 년 살아서 백 살 채우는 거래."
하, 그런 말이었구나. 그야말로 '웃픈' 현실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럴 수도 있는데, 그러고 싶지 않기도 하다. 기계가 진화하는 속도에 비례하여 나의 퇴화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아서. 퇴화를 부추기는 '편안함'을 지금이라도 경계하기 시작해야, 내 힘으로,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오래 하면서 살 수 있는 건 아닐까.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