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서 나이를 줄여준단다. 오예! 두 살이나 줄여준다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라고 할 줄 알았나?
나는 이런 일이 있으면 진짜 '승질'이 난다. 내 나이를 내 마음대로 헤아리겠다는데, 나라가 왜 이런 것까지 통일하고 난리야.
이른바 '한국 나이'(우리 나이)로 세지 않고 모든 걸 '만 나이'로 통일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어? 언젠가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하는 기시감이 들었다. 찾아보니 2013년~2014년쯤에 실시된 도로명 주소다. 그때도 무진장 화가 나고 이해가 안 되었다.
어느 글엔가도 썼지만, 어떤 공간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 공간을 경험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윗관들공원'이라는 이름보다는 아이들 눈에 넓어 보이는 공간이어서 '너른마당'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뒤로, 적어도 아이들과 함께 너른마당에서 신나게 놀았던 모든 사람에게 그곳은 '윗관들공원'과는 다른 관계를 맺은 공간이 되었다. 윗관들공원 쓰레기는 줍고 싶지 않아도, 너른마당 쓰레기는 얼른 주워 치우고 싶다는 말이다.
도로명 주소로 '통일'한다고 했던 그 당시에도 수십 수백년 동안 그 골목골목을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와 경험을 '행정 편의'로 뭉개버리는, 매우 난폭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 선조들이 뱃속에 잉태되었을 때부터 '사람'으로 쳐준 그 나이를 굳이 뭉개버리겠다는, 뱃속 생명에 대한 존엄은 1도 없는, 아주 천박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와, 아이들은 어쩌냐. 일곱 살 아이들한테, 이제 너희 다시 다섯살인 거야,라고 어떻게 말해 주냐." 학교는 '여덟살'에 가는 거고, 학교 가기 전 최고 형님인 '일곱 살'은 아이들한테 정말 특별한 의미였다. 어떻게 먹은 일곱 살이고 어떻게 먹은 여덟 살인데, 그걸 두 살이나 아래로 까먹으라니.
아이들한테는 정말 '멘붕'일 소식일 것 같은데, 이와 관련된 어떤 뉴스를 찾아봐도 아이들의 입장이나 상황을 걱정하고 염려한 내용은 없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을 얼마나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내일의 희망이라느니, 어른들의 거울이라느니, 어린이날마다 입에 발린 소리는 해주지만, 진짜 아이들을 아이들답게, 아니 사람답게 대해주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뱃속 사람은 생명으로 안 쳐주겠다는, 응애 하고 나온 순간부터 '사는' 걸로 쳐주겠다는 발상이니, 이 세상에 와 몇 년 살지 않은 아이들 따위야 '같잖아' 보이겠지.
역사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나라를 정신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우리말을 빼앗고 우리 문화를 말살했다는 것 정도는 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살살 달래가면서 지배하는 '가스라이팅' 범죄가 무섭듯, 앞으로 이 나라가 백성들의 정신까지 슬금슬금 지배해 올까 무섭다. '영적인 끼'가 있는 분들이 손바닥에 쓰신 대로 '왕'자리에 오르셨으니 나라도 영적으로 '다스리려'하시겠지.
어미가 아기를 뱃속에 품는 게 얼마나 신비로운 축복인지 모르니 뱃속 나이 따위는 없을 테고, 뱃속 아기를 지우는 일은 더 쉽게 이루어지겠지. 생각할수록 무섭다.
나이를 이리 세든 저리 세든 세월은 흐를 테다. 내후년이면 예순한 살이 될 거고, 태어난 해의 띠를 다시 맞게 되어 '환갑'이라는 날을 맞게 될 거다. 어릴 때는 왜 환갑이 예순살이 아닌 예순한 살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 살'이라는 게 붙으면서 뭔가 이 날로부터 새로운 시작을 할 것 같은 축복으로 다가왔었다. 그런데 앞으로 환갑은 '쉰아홉살'에 맞게 될 테니, 환갑이든 진갑이든, 새로운 시작이라기보다는 '끝을 내야' 하는 지점, 불길하다고 하는 아홉수에 치러야 할 행사가 되리라.
오늘 이렇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성질을 부린다고 해도, 병원 처방전과 약 봉투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던 '만 나이'가 내 나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될 날이 오리라. 마지막까지 버티며 사용하지 않겠다던 스마트폰도, 카카오톡도, 도로명주소도 지금 익숙하게 사용하게 된 것처럼 나 역시 뱃속 나이를 버리고 항복하는 날이 올 거다. 그러다가 내가 헤아린 것보다 두 살 더 젊은 나이에 나는 죽게 될 거다.
'그러니, 왜 이딴 쓸데없는 일을 하냐고! 민생이나 챙기라고! 내 나이를 돌려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