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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부터 하느님은 온라인에도 계셨을지니

2023년 1월 11일 수 / 오프라인에서와 같이

by 글방구리

어제는 우리 교구에서 세 명의 청년이 사제로 서품되었다.

전에는 한 해에 수십 명의 사제가 탄생되면 체육관을 빌려 서품미사를 봉헌하기도 했지만, 사제성소가 줄어든 요즘에는 대부분 각 교구의 주교좌성당에서 열리는 것 같다. 장소에 제약이 있다 보니, '비표'가 없는 사람들은 서품식이 열리는 장소에 들어가기 어렵다. 그래서 참례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유튜브로 실시간 중계가 된다. 나도 어제 처음으로 유튜브 미사를 '봤다.' 손에는 뜨개질거리를 들고. 성당에 가서 하는 건 '미사 참례'지만, 방송을 통하는 건 '미사 관람' 또는 '미사 구경'이라고 해야 더 적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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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들의 종신서원미사나 사제들의 서품미사에서 가장 경건해지는 순간은 아무래도 성인호칭기도가 울려 퍼지는 때다. 자신을 봉헌한다는 의미로 엎드려 있는 모습도 그렇거니와, 앞으로 가야 할 길에 함께 해달라고 천상의 온갖 성인들에게 보호와 도움을 청하는 것은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기도 같아서다. 성인호칭기도가 울려 퍼지는 동안이면 거룩함을 넘어,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울림과 떨림을 느끼곤 한다.

그 후에는 참석한 모든 신부님들의 안수가 이어지는데, 서품 당사자에게는 아마 이 순간도 매우 뜻깊을 것 같다. 잘 살든 못 살든, 자신보다 앞서 사제의 길을 걷고 있는 선배들이 일일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축복을 빌어주는데, 얼마나 감동스럽겠는가. 그러나 그것을 지켜보고 기다리는 신자들에게는 조금 지루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새 사제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나면, '가장 효과가 좋다는' 새 사제 강복'(강복이 아니라 축복이 맞는 말이지만)이 있다. 속된 말로 하자면 막 신내림을 받아 '영빨'이 가장 좋은 때 하는 축복이라는 거다.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가 아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안수를 받는 순간, 열심한 신자들은 또 한 번 감동의 눈물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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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를 전화로 하면 효과가 없나요?"

예전에 종종 듣던 질문이었다. 주보나 교계 신문에서 '교리 상식'으로 올라오던 주제이기도 했는데, 모든 성사는 대면으로 해야 효과가 있고, 그래서 고해성사를 전화나 메일, 기타 등등 이렇게 하면 효과가 없다고 했다.(나의 기억이 잘못되었을까?)

그런데 그랬던 교회가 코로나 때문에 성당 문이 닫히자, 평화방송에서 하는 '방송미사'라도 보라고 했다. 아니 그전에도 한 주간에 한 번씩 성당을 방문하면서 미사 중계를 하곤 했다. 그럼, 이건 효과가 있는 건가?

아마도, 잘은 모르지만, 미사에 직접 참례하는 것과는 다를 테고, 영성체를 직접 하지 못하니 '신령성체' 기도를 하라고 권고했을 테다. 효과가 있든 없든, 신앙의 끈을 놓지 않게 '구경이라도 하라'는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효과가 없는 일에는 별로 끌리지 않아, 방송미사를 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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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어렸을 적 일이 떠올랐다.

유리 겔라라는 세계적인 초능력자가 우리나라에 왔다. 어느 방송국에 출연한 그가 부리는 묘기들을 텔레비전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그때 방송을 진행하던 사람이 그랬다. 마음을 모으면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도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서, 각자 숟가락을 가져오라고 했다. 호기심이 발동했던 나도 내가 쓰던 숟가락을 부엌에서 가져와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그리고 그 사람을 따라서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숟가락의 목 부분을 살살 쓰다듬었다. 눈을 떴을 때, 내 숟가락도 45도가량 휘어져 있었다! 유리 겔라만큼 90도 가깝지는 않았지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눈앞에서 이루어진 일인데도 반신반의했고, 휘어진 숟가락을 식구들에게 보여주며 뛰어다녔다.


이 일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모 수녀님으로부터 '활원운동'이라는 걸 배웠던 적도 있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떤 '기운'에 맡겨져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경험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분명히 내 몸에 작용을 하고 있는 거다.

새 사제 축복이 있겠다는 해설자의 말을 듣고,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뜨개질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얼른 무릎을 꿇었다. 인터넷이 상용화하지 않았던 시대의 '옛날 하느님'은 몰라도, 온라인이 대세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주관하시는 '요즘 하느님'은 화면을 뚫고 축복의 기운을 보내주실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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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웃기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옛날 하느님, 요즘 하느님이라니.

하느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분, 코로나 이전에도 이후에도 계셨던 분일진대. 코로나 전에는 효과가 없고, 후에는 효과가 있다고?에이, 그런 건 아닐 거다.

교회 수장의 가르침을 따르지 말자는 말은 아니지만, 전화나 전파를 통한다고 해서 그 누구도 "당신은 하느님의 복을 받았소, 아니오, 복을 받지 못했소, 당신은 죄를 용서받았소, 아니오, 용서받지 못했소." 하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태초부터 지금, 아니 종말까지, 홀로 변함없이 온전하게 존재하시는 분이시므로.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그리고 오프라인에서와 같이 온라인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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