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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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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의 글 Mar 05. 2022

독박육아와 전업주부가 꿈인 남편입니다.

아빠가 되고 싶은 남자

부스스한 머리, 번들거리는 이마, 반쯤 뜬 눈, 목이 늘어난 티셔츠. 이런 자연인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게 면도는 깔끔히 한 남자가 아기를 품에 안고 현관으로 향한다. 먼저 문 앞에 선 아내는 신발을 신고 남편과 아기에게 입을 맞춘다. 그리고 결기에 찬 목소리로 남겨진 이에게 말한다.  벌고 올게. 아내의 결기에 감동한 남자는 나지막하면서도 진중한 목소리로 답한다. 여보.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여자는 자신을 배웅하는 남편과 아기를 보며 잠시 시어머니를 떠올린다. 이 집안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하나 흐르는데, 그것은 시어머니가 심어 놓은 가모장제 문화다. 쓰러졌던 가정 경제를 맨손으로 일으킨 어머니를 보고 자란 덕분일까. 남편은 아내의 일을 무한히 응원해준다. 자신의 일을 포기하고 독박육아와 전업주부를 기꺼이 맡을 만큼.


아쉽게도 앞의 장면은 현실이 아니라, 남편인 나의 , 나의 장래희망이다.   



우리 부부에겐 아직 아이가 없다.  



그래서 손주를 기다리는 양가 부모님껜 늘 죄송한 마음이다. 물론 할 말은 있다. 이제 겨우 결혼한 지 1년 하고도 6개월쯤 지났을 뿐이라고. 하지만 내년에 네 나이가 마흔이라는 말엔 고개를 숙인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낳아야 체력이 된다는 말엔 납작 엎드리고 만다. 지금 낳아도 너 환갑 때 애 대학 간다는 말까지 나오면. 아. 그만 때리세요. 하고 도망간다.


아이 생각이 없는 것 아니냐는 부모님의 우려와 달리, 우리 부부는 아이를 무척 좋아한다. SNS에 여러 지인이 올려둔 귀여운 아이와 처절한 육아의 현장을 서로 보여주며 눈을 못 떼곤 하니까. 다만 아직 아이를 키울 준비가 안 됐을 뿐이다. 준비는 무슨 준비. 일단 낳으면 어떻게든 키운다는 옛 어른의 이야기에도 충분히 공감하지만, 마음에 남아있는 두 가지 문제가 걸림돌이다. 하나는 내 집 마련, 다른 하나는 아내의 커리어다.



SNS에서 보면 내가 눈을 못 떼는 아이. 엄마 아빠가 우리 글쓰기 모임에서 만났다. 내겐 좋은 아빠의 모델이기도 하다.



우리가 과연 아이를 낳고 맞벌이를 포기할 수 있을까. 둘 다 개인 사업자인 탓에 육아 휴직은 없고 양가 부모님도 아이를 봐줄 수 없는 형편이다. 둘 중 한 명은 육아를 위해 일을 잠시 멈춰야만 한다. 수입은 줄고 지출은 늘어날 텐데, 영원히 전세만 전전하며 주거 불안을 느끼진 않을지도 걱정이다. 게다가 아내는 돌고 돌아 어렵게 적성을 찾았다. 그러니 일이 곧 아내의 정체성이기도 했다. 그가 운영하는 베이킹 공방은 오랜 노력으로 이제 막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엄마가 되기 위해 여기서 멈추는 것이 정말 최선일까.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엄마 아빠가  수는 없을까. 정답은 없고 선택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환경에 타협점을 찾아야만 했다.



내가 주로 육아를 할 수 있을 때 아이를 갖자.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아이 가질 시기를 이야기했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내가 주로 육아를 할 수 있을 때면 좋겠다고. 아예 독박육아여도 괜찮고 전업주부가 되어도 괜찮다고. 크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아내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커리어를 포기하지는 않았으면 했으니까. 게다가 내가 하는 일은 언제 그만두어도 미련이 없었다. 육아는 체력이 중요하니까 내가 더 잘할 수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내는 희생하겠다는 남편의 말에 잠깐 감동을 받은 표정이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내 외벌이로 괜찮을까. 어째 불안한 표정이다. 지금은 부족하지만 당신은 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이 목 끝까지 나왔다가 가장이 되라는 말 같아 도로 삼켰다. 커리어 고민에서 다시 돈 문제로 돌아왔다.


 




현실의 문제는 언제나 계산적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둔다면 그만큼 어디선가 보충을 해야 한다. 아내는 조금 더 일을 늘려보기로 했다. 어쩌면 외벌이를 해야 할 수 있다는 각오도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정말 아내에게 모든 부담을 지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육아를 전담하더라도 내가 부업 정도의 일은 할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일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나는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육아를 하면서도 틈틈이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할 텐데. 역시 글을 다루는 프리랜서 일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다. 국문학을 전공했고 4년째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며 많은 사람의 글을 보는 역할을 해왔으니 여기서 길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모든 게 막연하지만 조금씩 시도해봐야겠다. 원고를 조금 더 모아서 투고도 해보고, 프리랜서 플랫폼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도 찾아봐야겠다. 동시에 병원을 다니며 아이를 가질 몸의 준비도 해야 한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독박육아를 꿈꾸며 미래를 준비하는 남편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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