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내일도 놀이터에 가겠습니다
오후 1시의 하늘은 유난히 더 맑고 투명했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라 놀이터에 아이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코로나 때문인지 점심 먹을 시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훨씬 더 한산했다. 적당한 햇볕과 그리 차지 않은 바람이 간간히 불어오는 놀이터는 무척 평화로웠다. 답답하게 마스크를 끼긴 했지만 미끄럼틀로 껑충 뛰어가는 첫째의 발걸음은 오랜만에 상당히 들떠있었다. "엄마! 엄마! 여기 좀 봐봐~" 하면서 부르는데 그러는 아이를 따라다니는 게 좀 힘들었다. 하필 오늘 아침에 유모차를 세탁소에 맡길 게 뭐람. 둘째를 계속 안고 있어야 했기에 어서 벤치에 앉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행히 지난번에 놀이터에서 한번 본 적이 있던 8살 언니를 만났다. 나는 반가워하며 "지난번에 만났었지? 안녕?" 하고 말을 걸었고 혼자 놀던 그 아이도 우리 첫째를 조금 반가워하는 듯했다. 우리 아이보다 한 살 더 많은 아이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혼자서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따라와" 그 아이는 우리 아이를 데리고 그네로 가서 밀어주기도 하고, 줄을 꽈배기처럼 돌려서 태워주기도 하며 잘 놀아주었다. 혼자 놀았으면 심심해했을 텐데 다행이었다. 웃으면서 재밌게 놀고 있는 첫째를 바라보다가 놀이터 빈 벤치에 좀 앉아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시 앉아서 핸드폰 메시지 몇 개를 확인했다. 별 내용은 없었다. 오늘도 그저 그런 하루구나 하고 생각하고 다시 그네 쪽을 바라보았다.
그래, 어디서 숨바꼭질이라도 하는구나 싶어서 주변 벤치, 나무 그늘 아래, 바위틈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두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놀이터 주변 인라인장으로 가보았다. 거기에는 인라인, 자전거, 킥보드를 타는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그 사이 어디에도 두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바로 근처 아파트 단지 도서관에 가보았지만 오늘은 휴무여서 문이 잠겨있었다. 어디로 간 걸까? 잠시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는 걸까 싶어서 다시 원래 앉아 있었던 벤치에 가서 앉았다. 그 사이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함께 나온 엄마들도 많았고. 아장아장 걷는 아가와 나온 할머니는 손주에게 우리 둘째를 가리키며 "저기 아가 좀 봐." 라며 나를 향해 미소를 보였다. 나는 애써 미소로 화답하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아이들 소리로 다소 시끄러워진 놀이터를 다시 한번 구석구석 다니면서 아이 이름을 외쳤다. 시간이 좀 지난 것 같은데 아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내 가슴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아까 그네 타고 있던 여자아이 두 명 못 보셨어요?"
"혹시 저기 그네 타고 있던 여자아이 두 명 못 봤니?"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 담소를 나누는 엄마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다들 못 봤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바로 옆 경비실로 가서 아저씨한테 물어보았지만 "글쎄요 점심 먹고 있어서요. 기다려보세요. 오겠지요."라는 태연한 답변만 돌아왔다. 좌절과 걱정, 그리고 자책으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구나. 예전에 살던 동네는 놀이터가 바로 집 앞에 있었다. 아이가 놀이터 주변을 다 파악하고 있기도 하고, 여차해도 집으로 찾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놀이터에서 늘 자유롭게 놀았는데 지금은 달랐다. 이사온지 얼마 안 되어서 나도 주변 지리를 잘 모르는데 7살짜리 애는 오죽할까.
‘따라와-' 아까 그 아이가 왜 내 눈치를 보면서 우리 애한테 따라오라고 했을까? 그 애는 왜 맨날 놀이터에서 혼자 놀고 있었을까? 예전에 초등학교 2학년도 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를 본 적 있는데 설마... 아니겠지?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과 추측이 난무했다.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되었다. 남편에게 연락하자니 불같이 화를 낼 것 같아 차마 말하지 못하겠고 동생한테 연락했다.
"어머 어떡해, 빨리 찾아봐. 아파트 방송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동생의 말을 듣고 경비실에 cctv가 있는지 물어보고 안되면 방송을 해야겠다 싶었다. 그러고도 안되면 경찰에 신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놀아도 한 번도 내 시야에서 벗어난 적은 없었는데 어떻게 된 걸까? 도대체 두 아이는 어디로 간 걸까?
바쁜 걸음으로 경비실로 향하는데 저만치서 두 아이가 나타났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하게 맺혀 있는 아이를 보자 안도와 동시에 화가 치밀었다.
"너 어디 갔었어? 엄마한테 말도 없이!!"
"저기 옆에 운동장에 갔다 왔는데. 새집 만들려고 재료 구하러 언니 따라갔다 왔어요....... 엄마 미안해."
우리 아이도 옆에 있던 아이도 화를 심하게 내는 나를 보자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어디 가면 간다고 엄마한테 말을 하고 갔어야지. 걱정했잖아. 이제 그만 집에 가자!"
내가 정색하고 말했으니 당연히 집에 가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이는 금방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알았어 잠시만. 언니랑 비밀창고에 좀 다녀올게."
뭐? 비밀창고? 얘네들이 진짜. 그건 또 어디란 말인가.
두 아이는 운동장에서 주워온 상자, 스티로폼, 솔방울, 나뭇가지 등을 가지고 놀이터 나무 그늘 쪽에 가서 진짜 새집을 진지하게 만들었다. 벌레도 잡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진심으로 아쉬워하면서 말이다. 순간 피식하며 웃음이 나서 새집 꾸미기를 마무리하는 아이를 천천히 기다려주었다.
하마터면 아이를 잃어버릴 뻔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아이를 지켜봤어야 했는데. 한시도 눈을 떼지 말았어야 했는데. 평소 나는 아이에게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기회를 준답시고 아이를 너무 방임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는 평범한 일상을 당연하게 여겨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을 안일하게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아이는 언니와 9시에 만나기로 했다며 내일 또 놀이터에 가겠다고 한다. 그럼 그 8살 아이는 아침부터 늘 혼자 놀이터에 나오는 걸까? 그 아이의 부모님은 왜 그 아이를 혼자 놀이터로 보내는 걸까? 다행히 아이가 사회성도 좋아 보이고 동네 지리도 잘 알고 있는 듯했지만 꽤 오랜 시간을 놀이터에서 혼자 놀아도 괜찮은 걸까? 그렇다면 놀이터에서 혼자 놀아도 되는 나이는 몇 살부터일까. 친구와 같이 가 아닌 혼자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아이는 정말 재미있을까? 그 아이에게 부모님은 어디 계시고 혼자 노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오늘은 그냥 묻지 않기로 했다. 내 머릿속이 여러 가지 생각들로 상당히 복잡했으므로.
세계 보건기구(WHO)의 신체활동 건강지침에는 만 5-17세 어린이 및 청소년은 매일 최소 60분 신체활동을 해야 한다고 권장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어디 그러기가 쉬우랴. 초등학생들은 놀이터 대신 친구와 PC방에 가고, 유아들은 부모가 편하게 앉아서 아이를 놀게 할 수 있고 놀 거리도 다양한 키즈카페를 더 선호 할런지도 모르겠다. 놀이터는 세상이 워낙 흉흉하기도 하고 놀다가 안전사고도 왕왕 발생하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는 부모가 꼭 지켜봐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집 앞 놀이터는 꼭 필요한 곳이고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가장 마음 편하게 놀 수 있는 곳, 단조로운 놀이시설에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신나게 뛰놀 수 있는 곳, 나무와 흙과 더불어 다양한 상상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 나는 그런 놀이터를 예찬한다. 그래서 오늘처럼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 있었음에도, 한시도 아이를 놓치지 않고 지켜봐야 하는 다소 불편함을 동반할지라도 나는 아이와 또 놀이터에 갈 거고 아이에게 자유롭게 놀라고 이야기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