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못 차리는 여자 수공예 요리를 시작하다

다시 이유식을 만든다는 것

by 글빛승연


어렸을 때 진지하게 만나볼까도 생각했던 선배는 아침을 차려주는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듣자 더 이상 만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누구나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겠지만 아침을 차려놓고 남편을 깨우는 아내의 모습은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흉내 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이 남자는 평소 아침밥을 먹지 않는데 이게 그와 결혼생활을 결심할 수 있었던 필요조건 중 하나였다. 그만큼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 특히 아침식사를 차린다는 건 내게는 참 어려운 일이다.


우리 부모님은 부지런하신 분이다. 어릴 적부터 아빠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신문을 읽고 아침밥을 든든히 드시고 출근을 하셨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위해 365일 중 300일 정도는 매일 아빠가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생선을 굽고, 아침의 보약이라 불리는 사과를 깎으셨다. 엄마는 더 자고 싶어 하는 우리 자매를 깨워서 아침을 먹이고 학교에 챙겨갈 점심 도시락까지 빠짐없이 챙기셨다. 학교에서 도시락을 열어보면 항상 밥 위에 계란이 올려져 있고 반찬도 세 가지 이상이 빼곡하게 반찬통에 담겨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물론 엄마는 일을 하지 않아서 조금은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대단한 정성과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내 눈에는 우리 엄마가 슈퍼우먼 같았다.


결혼을 하고 처음에는 나도 남편과 아침을 먹어보려고 애를 썼다. 간단하게나마 밥과 반찬을 차리고 사과도 깎아보고. 물론 그게 일주일로 끝이긴 했지만. 그 후로는 아침에 간단하게 빵이나 떡, 미숫가루 같은걸 먹고 출근했다. 신혼 때는 저녁도 집에서 열심히 만들어 먹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엄마의 손재주를 물려받지 못했다. 남편은 내가 해준 음식을 먹고는 “자기는 참 좋은 재료를 가지고 맛없게 요리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아”라고 평했다. 그리고는 그가 약간의 양념과 재료를 첨가해서 다시 요리를 해주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새로운 요리처럼 맛이 달라졌다.



남편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그런데 아이는 달랐다. 태어난 지 5개월 지났지만 여전히 연약하고 순수하기만 한 아이에게 먹일 음식은 조심스러웠다. 처음에는 미음, 그러니까 환자들이 먹는 것처럼 쌀가루를 물에 끓이는 정도인 그 간단한 것 정도만 해보자고 생각했다. 아기가 먹는 거니까 냄비도, 칼도, 도마도, 조리도구도 다 새로 장만했다. 결혼할 때 부엌살림에는 1도 관심 없었던 내가 그 간단한 미음을 만들겠다고 책도 사고, 살림살이도 사는 게 내가 봐도 좀 우습긴 했다.

평소에 모든 요리를 위해서는 레시피가 필요한 나는 이유식 역시 책을 보고 저울에 재료를 달아보며 정석대로 만들었다. 그러니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그래서 일주일 정도만 만들어보려고 했던 이유식을 채소도 첨가하고, 고기도 첨가하면서 한 달, 두 달이 넘게 계속 만들었다. 그 기간이 놀랍게도 아이가 밥을 먹을 때까지 이어졌다. 계속 그럴 수 있었던 건 아이가 내가 해준 음식을 정말 잘 먹었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아이가 입을 안 벌린다고, 얼마 먹지도 않고 음식을 뱉어낸다고 속상해했지만 우리 아이는 먹는 데 거침이 없었다. 새가 모이를 먹듯이 입을 벌려 오물오물 다 받아먹었다. 남편처럼 이상한 평가를 내리는 대신 활짝 웃어주는 게 귀엽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다.


평소 나 혼자 먹을 땐 빠르고 간단한 조리법이면서 포만감을 주는 메뉴를 택한다. 주로 라면, 삼겹살 구이, 참치캔 비빔밥 같은 것들이다. 그에 비하면 육수를 내고 쌀을 갈고 야채를 다져 죽을 끓이는 건 몹시 성가신 일이다. 평소 나는 육아 체질이 아니라고 말하고 다녔다. 요리 또한 귀찮고 재미도 없을뿐더러 잘하지 못하는 종목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육아와 요리의 교집합인 이유식은 생각보다 재밌었고 꾸준히 하니 제법 잘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나먹자고, 내 입으로 들어가는 걸 만든 게 아니라 가능했던 게 아닐까. 물론 모성애나 책임감도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결과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순수하게 누군가를 생각한 내 정성이 한 사람을 성장시키고 어여쁜 모습으로 피드백되어 돌아온다는 건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충만감을 주었다. 그래서 졸린 눈을 비벼가며 재료를 다듬고 익히고 냄비 앞을 지키고 서서 요리를 하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 엄마도 그랬을까. 원래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기도 하지만 부엌에서 그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우리 가족이 엄마 음식을 먹고 이만큼이나마 건강하고 튼튼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첫째가 훌쩍 자라 이제 라면도 먹고 인스턴트도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잠시 수공예 요리의 세계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다. 그런데 정신 차리고 보니 이번엔 둘째가 밥 먹을 준비를 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둘째 엄마들은 많이들 이유식을 사먹인다고 하는데 난 이번에도 만들어보려 한다. 이번에는 새로운 조리도구도 책도 사지 않았다. 필요한 건 책에 나오는 레시피나 번쩍번쩍한 도구가 아니라는 걸 안다.

다시 이유식을 만든다는 건 가장 순수하고 어여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날들이 활짝 열린다는 뜻이고, 내 평생 다시는 하지 않을 수공예 요리실력을 마음껏 발휘해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남편에게도, 친구나 가족들한테도 제대로 요리다운 요리를 해준 적은 없지만, 적어도 우리 집 아이들에게만은 내가 최고의 요리사로 기억되기를 욕심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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