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터면 아이에게 상처 줄 뻔했습니다

내가 책 육아를 하게 된 이유

by 글빛승연


“안아줘. 으앙~ 물 줘. 물. 물. 말말말... 말... 말 못 하겠어. 못 걷겠어.”

잘 자다가 새벽 2~3시만 되면 어김없이 깨서 대성통곡하는 아이. 왜 우냐고 물어보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한 문장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30분이고 1시간이고 울기만 했다. 물을 달라길래 컵에 따라주고 가져가라고 하면 다리가 아파서 못 걷겠다고 우는 아이. 할 수 없이 물컵을 가져다주면 일부러 쏟아버리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 심한 날은 우는 시간이 장작 한 시간이 넘어갔다.


첫째가 6살이었을 때 갑자기 새로운 잠투정이 시작되었다. 엄마의 임신이 6살 아이에게도 꽤나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이 방법 저 방법으로 달래 봐도 소용이 없었다. 화도 내 보고 엉덩이도 찰싹 때려봤지만,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소리를 지르다가 진정하자고 숨을 고르다가 다시 윽박을 지르고 내 마음은 한 달 가까이 계속 널뛰기를 하고 있었다. 다음날 출근도 해야 하는데 새벽마다 잠을 못 자니 이거야 원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말도 못 하겠고, 걷지도 못하겠다고 하는 아이 말을 고대로 믿진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유독 잠이 없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잠을 안 자려고 했던 아이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정형외과나 심리상담센터 같은 곳을 가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밤마다 고민했다.


문제가 뭘까? 아이에게 갑작스러운 변화가 생긴 게 있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의 임신, 동생이 태어난다는 사실 그뿐이었다. 원인을 안다면 분명 해결책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병원에 가기 전에 남편과 고민 끝에 일단 우리가 한번 노력해보자고 결정을 내렸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그래 신나게 놀아주자! 주말마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장소를 물색해서 열심히 다녔다. 둘째가 나오면 더 못 놀아줄 것 같아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공원이며, 키즈카페며, 놀이동산 여기저기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아이의 잠투정은 나아지나 싶다가도 다시 또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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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달려 놀아주는 것도 힘들어질 무렵 태교 하는 셈 치고 책이나 열심히 읽어주자는 생각을 했다. 밤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없는 애교를 떨어가며 애기 때처럼 정성스레 책을 읽어주었다. 그렇게라도 첫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가족에 대해서, 동생에 대해서, 출산에 대해서 잘 알려주는 책이나 재밌게 표현하고 있는 책,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책을 찾아 읽어주었다. 그랬더니 다른 책은 안 보고 그런 책들만 며칠을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했다. <나도 엄마 배 속에 있었어요>라는 책은 초등학생용 책인데도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읽고 또 읽어달라고 해서 몇 번을 봤는지 모른다.


“어머니, 요즘 이야기 나누고 있는 주제가 가족이잖아요. 그래서 오늘 유치원에서 나의 탄생에 대해서 알아보고 영상 보면서 친구들과 이야기 나눴는데요. 너무 잘 알고 있더라고요. 아이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었는데 그걸 친구들한테 다 설명해줬어요. 아마 어머님께서 임신 중이시라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나 봐요. 집에서 칭찬 많이 해주세요.”

유치원 선생님의 전화였다. 생각해보니 한 번도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임신과 출산에 관해서 이야기해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가 관련 책을 많이 읽더니 친구들에게 설명해줄 정도로 자세히 알게 된 것이었다.


그날 밤 아이에게 칭찬을 하면서 넌지시 물어보았다.

“친구들한테 설명 엄청 잘해줬다면서? 유치원 선생님도 깜짝 놀라셨대. 엄마도 잘 모르는 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아 엄마가 책 읽어준 거 있잖아. 그거 보면 다 나와있어.”

“근데 그런 책 읽을 때 속상하지 않았어? 엄마 뱃속에도 동생 있어서 지금 속상한 거 아니야?”

“아니야 동생 때문이 아니라 엄마랑 아빠 때문에 그런 거야.”

“엄마랑 아빠가 왜?”

“아니 나한테는 안 그러면서 동생한테는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동생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태어나면 더 그럴 거 아니야.”


아이의 대답을 듣는데 툭 하고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 눈물은 아이의 마음을 몰라준 것에 대한 미안함과 동시에 아이의 마음을 지금이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왜 진작 아이에게 이런 걸 물어보지 않았을까. 밤마다 우는 아이에게 무슨 악몽을 꿨냐고, 낮에 유치원에서 무슨 일 있었냐고, 어디 아프냐고 그런 거나 물어보는 엄마가 아이는 얼마나 야속했을까.

“그랬었구나. 엄마랑 아빠가 몰랐어.”

울먹이는 아이를 안아주며 긴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후로 아이의 새벽 잠투정이 점차 사라졌다.


밤마다 읽었던 책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이와 나눈 대화 때문이었을까? 물론 지금도 그 이유를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때 그 일을 계기로 아이에게 더 집중하고,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한 최선은 아이와의 책 읽기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독차지하는 기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것도. 학교에서 배웠던 독서치료가 별건가. 엄마야말로 우리 아이의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최고의 전문가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란다면 아이가 사춘기가 되고,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부딪힐 때마다 책이 중매쟁이가 되어서 우리를 이어주지 않을까.


정말 다행이다. 그때 아이의 마음을 놓치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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