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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빛승연 Feb 23. 2022

출간 일기 1. 시작: 나를 찾으러 떠났다  

200일 된 아이를 키우던 평범한 엄마는 왜 책을 쓰기로 했을까?

둘째가 태어난 지 220일째 되던 날, 책 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나 오늘 책 쓰기 수업 있어. 잠깐 다녀와도 되지?"




남편에게 허락을 구하듯 통보를 하고 오프라인 수업을 하러 가는 날은 가슴이 콩콩 뛰었다.


'나도 뭔가를 배우는구나.'

'내가 다시 뭔가를 해볼 수 있다니.'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음식물쓰레기 버리러 가는 그 시간조차도 설렐 때가 있다. 혼자 있는 시간, 그 시간이 그저 귀하니까. 하물며 노트북을 들고 외출이라니. 그날은 아침을 굶고도 초콜릿 과자를 처음 맛본 아이처럼 엔도르핀이 솟았다.





터울이 꽤 나게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던 시간, 코로나 때문에 바닥을 친 시간도 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이'를 위해서 온 시간을 쓰던 첫째의 육아휴직 때와는 달랐다. 내 생애 마지막이 될 두 번째 육아휴직은 '나'를 위해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아이가 먹던 과자봉지에 적힌 문구. 내 마음이 딱 이 마음.


그동안 누구의 도움 없이 일하면서 첫째를 오롯이 키웠던 시간은 매 순간 숨이 가빴다. 하루치 하루치를 그저 충실하게 살아내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다. 집-회사-집-회사. 그 테두리 안에서 열심히 해야 할 의무를 묵묵히 했다. 그랬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가 아닌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회사, 집 그 어디에서도 잘 해내지 못하고, 적당히 하는 게 최선인 채로 매일 어정쩡한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나만 뒤로 걷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걷는 법을 잊어버린 지 오래였지만 지금이라도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보고 싶었다.

 


@mikbutcher, 출처 Unsplash


휴직을 한 지 몇 달 후 오래 살던 곳을 떠나 낯선 동네로 이사를 했다. 동네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신생아였던 둘째와 외출도 거의 못하고 집에만 있는 날들이 이어졌다.


집에서는 웬만하면 컴퓨터를 안 하는 편인데 아이가 제법 통잠을 자게 되어 오랜만에 컴퓨터를 켰다. 종교가 있다고 하기도 부끄럽게 힘든 일이 있거나 뭔가를 간절히 바랄 때만 기도를 하는 나는 그날도 그런 마음에 일기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웹서핑을 하다 우연히 발견한 플랫폼인 브런치에 글을 썼다. 그저 일기같이 마구잡이로 쓴 글인데 쓰고 나니 왠지 근사해 보였다. 글 밖의 나는 세상 최고 무난한 사람이라 특별한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글 속의 나는 세상 억울하고, 세상 행복하고, 세상 특별한 일들을 겪는 사람이었다. 글을 쓰고 있을 때 나는 가장 솔직한 사람이 되었다. 못난 나를 그대로 드러내고 나니 진짜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컴퓨터를 켜고 무슨 글이든 적었다. 그렇게 집에서 컴퓨터를 켜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던 날, 우연히 어느 책 쓰기 수업의 공지글을 읽었다. 잊고 있던 나의 꿈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책 쓰기 수업 공지글 중에서



운명이었던 걸까. 타이밍이 맞았던 걸까.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평범한 공지글 속 한 문장에 강하게 이끌려 내  손가락은 어느새 신청서 양식에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 '내 삶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빛이 될 수 있다면. 끝끝내 책이 되지 못하더라도 이 과정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선물'이라는 그 부분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신청한다고 다 선발되는 게 아니었는데도 '뭘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지만 해보고 싶다'라고 뻔뻔하게 신청서를 적어냈다.


뭔가를 바꾸고는 싶은데 그게 뭔지 몰랐던 그때. 무엇이든 필요했다. 청소기 돌리고 아이 재우고 먹이는 것 말고 나를 쏟아낼 다른 뭔가가 필요했다. 그게 내게는 책 쓰기라는 것으로,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쓰기라는 것으로 다가왔다.  


톨스토이가 말했던가. 하고 싶다면, 지금이어야 한다고.


책 쓰기 수업에 기적처럼 선발된 나는 일단 뭐든 써보기로 했다. 지금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빨리 오라는 첫째와 남편의 말을 뒤로하고, 낡고 무거운 노트북을 들고 낑낑거리며 집 밖으로 나갔다. 뒤로만 걷던 내가 비로소 내 의지로 한 발자국을 떼서 앞으로 걸어본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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