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를 쓰기 위해 포기한 두가지
초고를 쓸 때는 육아휴직기간이었다. 시간이 많으니 여유있게 써보겠다고 호기롭게 시작했다. 출근하게 되면 집에서 노트북 켜는 시간마저 갖기 어려울 수 있었다. 어떻게든 남은 휴직기간안에 초고를 다 쓰고 출간까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럴려면 최소한 하루 한꼭지는 써야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모르면 무식하다고 목차를 정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책쓰기의 책도 모르는 초자였기 때문에 내가 아는 이야기를 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름 짜임새 있게 스무개 정도의 목차를 정하고 보니 꽤 그럴듯했다.
'이제 쓰기만 하면 책이 나오는걸까?'
초고를 한번 쓰고 수정까지 하고 투고를 해봐야겠다는 엄청난 착각을 안고 초고 쓰기에 돌입했다. 400키로가 넘는 한강을 몇번 폴짝 뛰면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개구리처럼 한치 앞을 모르고 덤볐다.
글쓰기는 쓰는 마음으로만 되는 게 아니었다. 글쓰는 감을 잊고 산지 너무 오래되었던 터였다. 한줄 쓰고 한숨 쉬고. 지웠다가 다시 썼다가, 혼자 욕했다가 웃었다가 미친짓을 반복했다. 스무고개도 이것보단 쉽겠다 싶었다. 머리속에는 글감들이 떠돌아다녔지만 뭉게 뭉게 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을 소주제에 맞춰 논리적으로 쓰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한 꼭지를 채 쓰지 못하고 하루를 넘기기 일쑤였다.출근을 안해서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꼭 그런것도 아니었다. 초고를 쓰겠다고 작정한다고 내 환경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아이랑 하루종일 붙어 있으니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못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한 꼭지당 최소 A4용지 두페이지는 채우자는 처음 마음과는 다르게 한페이지 채우기도 힘들때가 많았다. 한강은 커녕 강 입구의 돌다리도 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폴짝거리는 개구리가 되고 말았다.
모래시계는 모래가 떨어지는 속도가 일정하다. 그런데 이놈의 육아휴직이라는 시계 속 모래는 왤케 빠르게 떨어지는건지. 한 달에 한번씩 육아휴직 급여를 신청하는 때는 눈깜짝 할 사이에 돌아오곤 했다.
어떻게든 글을 쓸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벌기 위해 무엇이건 포기를 해야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tv? 술? 친구?
초고를 쓰기 위해 포기한 것 두가지
하루에 한꼭지를 쓰려면 최소 두시간, 많게는 그 두배가 걸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먹고, 자고, 싸는 것도 엄마의 손을 필요로 하는 갓난 아기에게 24시간을 밀착하고 있었다. 때문에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
다행인 건 둘째가 아직 어리니 낮잠을 꼬박꼬박 자주었다는 것. 내가 오롯이 원고를 쓸 수 있는 시간은 둘째 낮잠 시간과 두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 밖에 없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둘째 낮잠 시간에는 미처 못먹은 내 밥을 챙겨 먹거나, 아이 이유식을 만들거나, 어지러진 집을 치웠다. 하지만 초고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뒤로는 아이가 낮잠에 돌입하면 다른 일 다 제쳐두고 노트북 전원을 켰다.
글을 쓰면서도 아이가 깰까봐 조마조마하면서 타이핑을 했다. 배가 고플 때는 밥을 먹으면서 쓰기도 했고, 아이가 후기 이유식(죽에서 진밥 수준으로 먹는 시기)으로 넘어 가서는 밥솥에 이유식을 올려놓고 글을 쓰기도 했다.
밥솥이유식은 정말이지 신세계였다. 전기밥솥에 재료를 넣어두고 취사를 누르면 한시간이 지나 맛있는 이유식이 뚝딱 완성되었다.
아이 둘을 씻기고 재우고 난 다음에도 평소 같으면 쌓인 설겆이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어지러진 거실을 치우느라 두시간이 훌쩍 지나가겠지만, 초고를 쓰는 동안에는 정말 해야하는 급한 불만 끄고 원고를 적었다.
그렇다고 뭐 아예 집안일에 손을 놓을 수 있나? 설겆이며 빨래는 매일같이 생겨나는 것이고, 아이들 먹을 것 챙기기, 청소기를 돌리거나 먼지를 닦는 일 같은 기본적인 일들은 미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을 왠만하면 아이들이 깨어 있을 때 하려고 했다.
물론 어떤날은 아이들이 보채서 온전히 봐줘야할 때도 있었고, 집이 엉망이어서 도저히 청소를 안할 수 없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원고를 쓰고 다시 집안일을 하고 반찬을 만들고, 다시 책상에 앉아서 졸다가 또 글을 쓰다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처음에는 죽도 밥도 아닌것 같은 이런 상황을 때려치울까 싶은 마음이 솟구치다가도, 시간이 지나니 이 생활도 그럭저럭 할 만했다. 내가 주방에 자꾸 있다보니까 아이들도 식탁에서 밥먹고, 간식 먹고, 놀이도 하고, 책도 읽고 ... 넓은 거실 놔두고 좁은 주방에서 떠날줄을 몰랐다. 뭐 그래도 남들은 거실의 서재화를 한다 어쩐다하는데 우리집은 식탁의 서재화라도 이루었으니 나쁘지 않다 싶었다.
나는 원래 올빼미족이었다. 밤에 자는 게 왜그렇게 아까운지 첫째를 임신했을 때도 버티고 버티며 새벽 1시는 기본이고 그 시간이 넘어서 잘 때도 많았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아이를 재워놓고 남편과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게 낙이었다. 어른의 언어로 소통하고 싶어 아이가 잠들면 핸드폰을 켜고 티비를 켰다. 낮동안 아이들과 씨름했을 나같은 엄마들과 카톡으로 이야기하고, 어른들만의 세상을 이야기하는 토크쇼를 보는 게 즐거웠다. 아이랑 하는 그런 말 말고 일상에서 어른들이 하는 농담, 그런 거 하면서 막 웃고 떠들고 싶어서 잠을 참았다. 맥주캔을 따서 아이들 몰래 숨겨놓은 간식을 먹으며, 좋아하는 책을 읽는 시간도 꿀맛이었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은 당분간 끊을 수밖에 없었다. 긴 밤시간을 원고쓰기로 대체하기로 마음 먹었다. 거기까지는 오케이. 문제는 아이들이 자는 시간인데도 밤에는 글쓰기에 집중이 잘 안된다는 점이었다. 외면하려고 해도 자꾸 집구석이 눈에 들어오니 나도 모르게 집을 막 치우고 있었다. 야식을 즐기는 남편의 '한입 줄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그걸 먹다가 시간을 훌쩍 보내기도 했다.
에라이. 도저히 안되겠타불.
이대로가다간 밤이고 낮이고 흐리멍텅한 날들만 이어질 게 뻔했다. 내 시계 속 모래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고, 셋째를 낳지 않는 한 이걸 뒤집을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결단을 냈다.
새벽기상을 시작했다. 수십년을 새벽에 잠들던 사람이 새벽에 일어나야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해야하는 목적이 있으니 기적같이 눈이 떠졌다. 처음에는 나를 따라 일어나는 아이를 다시 재우다가 나도 잠들기도 하고, 일찍 깬 아이와 놀아주다 새벽시간을 날리는 날도 있었지만 아이도 나도 점차 적응을 해갔다. 덕분에 남편도 아이도 모두 잠든 새벽, 온전히 홀로 있는 시간 두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건 친구들과의 술자리, 밤마다 즐겨보던 넷플릭스 뿐만이 아닐 수 있다. 책쓰기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려면 자고 싶으면 자고, 씻고 싶으면 씻는 기본적인 욕구마저 포기해야할지 모른다.
초고쓰기에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과 작별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시간을 벌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당신이 다행히도 홀홀단신 돌봐야 할 아이나 반려견이 없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애써야 한다.
잠깐이면 되겠지?
몇 달만 참으면 끝이 보이겠지?
라고 생각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금방 끝날 것 같던 초고 쓰기는 긴긴날로 이어지고 당최 끝나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