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 완성 대신 투고를 하기로 했다
시간은 뚜벅뚜벅 참 잘도 갔다. 초고 쓰기로 목표한 시간이 끝났지만 하루 한 꼭지씩 쓰고 나서 수정까지 하겠다던 처음 계획과는 달리 제대로 쓴 꼭지가 별로 없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제 마지막이 될 휴직의 시간이 끝나고 나서 아무런 결과물이 없는 채로 복직원을 제출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눈이 절로 감겼다. 더 이상 내 모래시계 속에서 사정없이 떨어지는 모래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투고를 해보기로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참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블로그나 브런치 같은 채널에 글을 써둔 게 있던 것도 아니고, 초고라고 쓰긴 했으나 제대로 완성된 글도 몇 개 없었다. 그래 놓고 출판사에 투고를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다니.
하지만 그때의 그 무모함과 용기 덕분에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투고를 할 적당한 타이밍이란 건 없다. 제대로 준비가 되었을 때를 기다리는 것보다 투고를 해보고 출판시장의 반응을 보고 수정해서 또다시 투고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투고를 마음먹은 당신이 해야 하는 두 가지.
01. 출간 기획서 작성하기
투고할 때 필요한 건 원고와 출판 기획서 딱 두 가지다. 투고하는 원고의 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원고보다는 출판 기획서가 더 중요하다. 책을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다는 요즘, 출판사에서 받는 투고 메일이 한두 통이 아닐 텐데 원고를 하나하나 읽을 수 있을까. 그보다 출판 기획서를 보고 책으로 만들 수 있겠다 싶을 때야 원고도 한번 열어보지 않을까. 고로 출간 기획서 작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
이렇게 말하는 나도 사실 난생처음 출간 기획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오- 하는 감탄사가 나올만한 기획서를 작성하지는 못했다. 저자 프로필이나 마케팅 계획을 쓸 때는 쓸 말이 없어서 머리를 쥐어뜯어야만 했다. 더군다나 내가 쓰려는 책은 이미 출판 시장에 많이 나와 있는 주제의 책이었다. 나만의 차별점을 드러내고자 이리 써보고 저리 써보고 하다 보니 그래도 한 번쯤 들여다볼만한 기획서를 쓸 수 있었다.
출간 기획서 쓰는 법이나 양식은 조금만 검색을 해보거나 책자 등을 참고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출간 기획서는 내가 쓰려는 원고가 어떤 내용이고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는 건데, 거기에는 이 원고가 꼭 책으로 나와야만 하는 필요성 혹은 책으로 나왔을 때 팔릴만하다는 설득력이 담겨야 한다. 내가 아닌 세상이 공감하는 책이어야 출판사도 기꺼이 비용과 수고를 들여볼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02. 투고할 출판사 조사하기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쉽기도 한데 투고하기 전에 출판사 조사를 많이 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마음이 급했다. 빨리 투고를 해서 계약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복직을 하는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 책을 쓰겠다는 말에 비웃음을 날리던 남편에게 본떼를 보여주겠다는 유치한 감정이 뒤섞여 나를 재촉했다. 또 한편으로는 설마 투고하면 답장이 올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경험 삼아 한번 투고해보지 뭐'하는 마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서 투고하기보다는 '한다'는 자체에 의의를 두었다.
- 현장조사: 서점가기
우선 교보문고에 직접 가서 내가 쓰려는 책과 관련 있는 주제의 코너를 찾아갔다. 책을 뽑아 들고 판권지 페이지에 나와 있는 출판사의 메일 주소를 하나하나 찍었다. 서점에서 책을 촬영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던 터라 직원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조심 찍다 보니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포동포동한 둘째를 아기띠에 메고 서있으니 어깨가 아파왔다. 오래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손에 잡히는 데로 대충 몇십 권의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게 힘이 들기도 했지만 '여기에 내 책도 꽂힐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하니 설레기도 했다. 서가에 꽂힌 책들이 하나같이 빛나 보였다.
- 온라인 조사: 투고할 출판사 정리하기
도서관에서 책 구입한 게 몇 년인데 웬만한 출판사는 다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알고 있던 출판사보다 처음 들어보는 출판사가 훨씬 많았다. 심지어 책은 아주 유명한데 출판사는 너무 생소한 경우도 많았다.
집에 와서 서점에서 조사한 출판사 리스트를 정리해보았다. 이상한 게 있었다.
'왜 유명한 출판사들은 하나도 없지?'
유명한 출판사들은 서점의 매대라 불리는,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간과한 터였다. 나는 이미 신간이 아니거나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들이 주로 꽂혀있는 서가에서 책을 찾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형 출판사는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가 보았다. 대부분 원고를 투고하는 페이지와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들 대부분이 원고의 완성본을 요구한다는 점이었다. 초고를 완성하지 못한 나는 아쉽지만 투고조차 해보지 못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꼭 원고 완성본을 보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이제 마지막 단계, 투고 메일 보내기만 남았다. 몇백 개씩 보낸다는 사람들 이야기도 들었지만 요령이 없던 건지 에너지가 없던 건지 나는 고작 40여 개의 메일을 보내고 조금 지쳤던 것 같다. 출판사 리스트에서 어떤 책을 냈는지 하나하나 보면서 메일을 보내다 보니 하루에 스무 개 보내기도 힘이 들었다. 이틀에 걸쳐 메일을 보내고 반응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과연 연락이 올까. 답장만이라도 주면 좋겠는데.'
조마조마하며 메일함을 계속 들여다봤지만 수신확인은 되어 있었는데 답장은 없었다. 수신확인이 안 된 곳도 여러 곳이었다.
'메일을 좀 더 보내봐야 할까?' 하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받은 메일함에 메일이 오기 시작했다.
Re: 00 투고에 대한 회신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