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빵을 먹기 위해 글을 씁니다
"아니 애 키우고 일하면서 어떻게 책을 썼어요?"
"커피랑 빵 먹으려고요."
가끔씩 누가 그 와중에 어떻게 책 쓸 생각을 했냐고 물으면 내가 대답하는 말이었다.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아이들과 밥을 먹으면 늘 먹는 둥 마는 둥 체할 것처럼 먹기가 일쑤였다. 식탐이 꽤나 있는 편인 내게는 가만히 맛과 향을 음미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책을 쓴다는 행위는 '혼자서 커피 좀 마시겠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합리적인 이유를 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책 쓰기를 핑계로 카페에 가는 시간, 아이나 남편이 아닌 나를 위해 커피를 내리고 빵을 굽거나 사 먹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글이 안 써져 자괴감을 가지던 순간들을 잊게 해 주었다. 타놓은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글을 쓰기 전에는 의식처럼 커피를 내렸다.
쓰기 위해 달리는 소설가 하루키의 루틴은 너무나 유명하다. 강원국 작가 역시 매일 아침 산책 후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서 돌아오며 뇌에 '내가 곧 글을 쓸 거다'라는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김훈 작가는 글쓰기 전 연필을 깎는다고 하고, 은유 작가는 시 한 편을 필사하고 글을 쓴다고도 했다.
나의 글쓰기 루틴은 새벽 기상과 스트레칭, 그리고 커피 내리기였다. 글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먼저 시간을 정하고, 장소를 정하고, 루틴을 만들었더니 최소한의 시간은 글 쓰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면 나도 모르게 스트레칭을 하고 커피를 타서 노트북을 켰다. 그러면 뭐에 홀린 사람 마냥 자동적으로 글이 적어질 때가 많았다. 물론 그 집중력은 그날그날 달랐지만 '지금은 글 쓰는 시간이야'라고 정하고 나니 한 문장이라도 적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책 쓰기도 글쓰기다. 그것도 장기 레이스의 글쓰기. 매일 쓰고 고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습관과 루틴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그렇다고 뭐 꼭 새벽에 일어나고 커피를 마시라는 게 아니라는 건 아니라는 건 아니고, 그보다 중요한 건 글 쓰는 몰입의 시간을 경험해보는 것이 아닐까.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엔도르핀이 솟고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 좋아서 쓰는 글만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쓰다 보면 '쓰는 일'에 빠져들어 나도 모르게 몇 문장을 술술 쓰고 있는 신비한 체험을 할 때가 있다. 그런 경험을 하다 보면 쓰는 사람이 될 확률이 훨씬 커지는 것 같다.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잘 놀고, 맛있는 음식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쓰는 것도 써본 시간이 쌓인 사람이 잘 쓰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 시간이 쌓이기 전까지는 커피 내리기든 기도든 필사든 뭐든 해보면서 나만의 글쓰기 루틴을 찾아보는 게 필요하다.
그 루틴은 꼭 글쓰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하루를 잘 보내기 위해서, 나를 잘 돌보기 위해서 필요하다. 쓰는 마음에는 꾸준한 마음과 부지런한 마음이 담겨 있다. 도저히 여유가 없어서 야근하고 사무실에 남아서, 남들 출근하기 한 시간 전에 도착해서 글을 쓰는 직장인도, 아이를 재우고 쪽잠 자며 겨우 글을 쓰는 나 같은 애엄마도, 노트북이 없어서 핸드폰에 키보드를 연결해서 쓰는 학생도 모두의 쓰는 마음에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정성스럽게 내리고, 내가 좋아하는 빵을 에어 프라이기에 돌려 가장 따끈따끈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 시간은 나를 사랑하는 순간이고, 하루를 가장 행복하게 시작하는 방법이다. 아이가 깰까 봐 사뿐사뿐 방문을 열고 새벽에 책상 앞으로 기어코 가는 해위는 글 쓰는 사람의 루틴인 동시에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장기간 책 쓰기를 하면서 허리도 아프고 손목도 아팠지만, 커피 마시고 빵 먹는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 있었으니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다고 쳐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