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할머니를 보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임영웅 - 바램

by 성희의지금

코로나 때문에도 그렇고 거리가 멀어서 친할머니를 찾아뵌 지 오래였다.

거리두기도 어느 정도 풀렸고, 이젠 더 늦기 전에 찾아봬야 될 것 같고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3년 만에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할머니를 보자마자 나는 얼어붙었다.


"어떻게 3년 만에 이렇게 달라지실 수가 있지...??"


요즘 난 내 모습도 예전과는 다르게 조금은 달라지고 있는 것 같고 지난 시간들이 아쉽고 그립고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조금은 씁쓸함이 알게 모르게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지금보다 더 나이 들었을 때의 무서움도 조금은 공존했다. 점점 수능이 끝나갈수록 19살들이 20살이 될 때마다 나의 나이는 한 살 더 먹고, 초반-중반-후반으로 갈수록 숫자가 점점 커질 때마다 "내가 벌써 이 나이?!" 하며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해가 갈수록 나를 채워가고 많은 깨달음과 배움으로 나라는 사람이 조금씩 성장하며 더 멋진 내가 되는 것 같은 건 너무도 감사하고 좋은 일지만,

마음속 어딘가 한편으론 아직 내 마음은 나이가 나타내는 숫자만큼 커지지 못하였는데 숫자만 커져서 억지로 어른의 흉내를 내고 살아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마음의 배속이라도 한 듯 할머니는 예전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셨다.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하셨고......

예전엔 막 웃으면서 나와 함께 대화도 하고 할머니 댁 가면 항상 맛있는 거 해주시고 같이 식사도 하고..

같이 카페도 가면서 횡단보도가 거의 빨간불로 바뀌게 되어 같이 손을 잡고 뛰곤 했었는데..


불과 3년 만에,


지금은 걷는 것도 너무 불편해하시고, 말씀하시는 것도 힘들어하시고, 말도 길게 못 하시고, 내 말에 집중도 잘 못하셨다.


순간 너무 머리가 띵해져서 어떠한 생각도 하기 이전에 그런 할머니를 마주하는 순간 눈물부터 나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물이 흘러 앞이 뿌예진다..


사람이 늙는 것은 너무 당연한 거다.

당연함을 받아들이는 데에 왜 용기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어릴 때 난 <엄마는 엄마> <할머니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이렇게 대상이 정해져 있고, 그 대상 속에 대한 이미지도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늙는다는 것에 대한 체감이 와닿지 않았었다.


지금은 이제 나도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중이고,

엄마 아빠도 내가 나이가 든 만큼 세월의 흐름으로 나이가 더 드시고

할아버지는 내 곁을 떠나셨고 할머니도 너무 달라져 있으시다.


순간 무섭고 기분이 묘했다...

너무 빠르다.. 3년 만에 어떻게 이렇게 손바닥 뒤집 듯 달라져 계실까..

세월의 흐름에 대한 아쉬움이 뒤늦게 나를 힘들게 할 줄은 전에는 몰랐다.


어릴 때는 몰랐다.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한 묘한 씁쓸함과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큰 용기라는 것을.


나 아닌 타인, 나의 가족에 대한 세월을 받아들이는 것도 이렇게 힘들 줄 너무도 몰랐다.


마음 한 구석에 돌멩이라도 자리 잡은 듯이 아프고 답답했다.

진작 찾아뵙고 사진도 더 많이 찍고 더 많이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이 할머니를 웃게 해 드릴 걸

지금은 나의 말에 집중도 잘 못하셔서 길게 대화를 전혀 하지 못해서 이야기를 제대로 나눌 수가 없다..

예전에 할머니 텐션이 나오질 않으시고 숨 쉬는 것조차 말을 길게 하시는 것조차 너무 힘들어하셔서

세 마디 이상의 대화가 안 되는 할머니와 나를 보고는 후회가 물 밀듯이 밀려왔었다.


할머니는 매번 새벽기도를 가서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신다.

이제는 새벽기도는 걸음이 불편해서 못 가시는데

그래서 내 기도를 한 번이라도 더 교회 가서 해주시지 못하는 것에 속상해하신다.


몸이 아파진 것과 스스로 달라진 것을 할머니는 더 잘 아신다. 그런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하나 줄어 슬프다고 말하시는 할머니 때문에, 그 말씀을 또 오래 천천히 떠듬떠듬 아이처럼 하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몰래 화장실로 가서 쏟아지는 눈물을 훔쳤다.


"너무 내가 벅찬 사랑받고 있음을 잊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아파왔다...


나는 지금도 조금씩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에 씁쓸하고 슬펐는데, 할머니도 당연히 그러실 텐데 그전에 나를 더 먼저 생각해주시는 마음이 누구보다도 대단한 것 같다. 너무 감사하다.

그렇게 엄마는. 아빠는. 할머니는. 할아버지는. 우리의 부모님들은 늘 "나"보단 "자식, 손주"가 먼저 인 것 같다. 그 슬픔마저도 이겨 내실 정도로 강하고 멋진 분들이시다.


그날 나는 임영웅이 부른 리메이크한 바램을 100번은 넘게 들었다. 트로트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날은 유독 가사에 빠져 그 노래가 너무 좋게 느껴졌다.

<바램 노래 가사>

내 손에 잡은 것이 많아서
손이 아픕니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온 몸을 아프게 하고
매일 해결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 시간도 없이 살다가
평생 바쁘게 걸어 왔으니
다리도 아픕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 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 주면서
사 랑 한 다
정말 사랑 한다는
그 말을 해 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 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 뿐입니다

정말 와닿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가사다. 가사에 집중하고 있으면 저 속에 홀로 외롭던 마음도 조금은 따뜻해지는 것 같다.


특히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이 가사가 오늘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어준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은 나이가 들고,

나이가 들어감에 우리는 노화가 오고 물건도 오래 써서 닳는 것처럼 여기저기 아파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속도 탄탄해지고 내면이 단단해지는 만큼 겉도 조금씩은 변해간다.

예쁘고 찬란했던 내 모습마저 잃은 것만 같아 아쉽고 씁쓸해진다.

인간이 늙어가고 변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바나나가 노란 것
비가 오면 우산을 써야 하는 것
눈이 오면 길이 미끄러운 것


위의 3개와 같이 다 알고 있는 당연함에 우리는 자연스레 인지하고 살아간다.

당연함은 당연함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별생각 없었는데 나이가 드는 것만큼은 꼭 다른 느낌을 가져다주는 것만 같다.

늙는다는 것에 대한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나이 들면서 점점 변해지는 세월도, 나도 받아들이는데 조금은 어색하고 조금은 아플 수 있다.


그렇지만 숙명을 다하고 있는 중이라 노래 가사처럼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고 있는 걸 수 도 있겠다.

우리는 익어 갈수록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며 조금 더 나은 나와 마주한다.

하지만 너무 익거나, 익은 것을 오래 두고 시간이 흐를 경우 색이 변색되거나 이상해지는 것처럼 우리의 몸은 역량을 다하고 아프게 될 때가 찾아온다.


우리 할머니는 삶과 이별할 날이 가까워져 이런 거라고 얼른 가면 된다는 말을 웃으면서 하셨지만 그 웃음 속에 아픔이 나는 조금 느껴졌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말씀 하시지 말라고 오래오래 사셔야 한다고 하는 나의 말에 할머니는 웃으시면서 "원래 늙으면 다 가"라고 짧게 답하셨다..


우리 모두가 영원히 사는 뱀파이어가 아니라, 세상 속에 잠시 살아있다가 살아진다.

인생에 후회는 사실 큰 의미 없다고 생각했었다. 후회가 되었기에 내가 또 배우고 더 좋은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하고, 그때에 나는 어차피 그때의 선택을 시간을 돌려도 또 했을 것 같기에 후회는 할 수 있어도 후회하는 시간 속에 나를 가둬두진 말자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번만큼은 너무너무 후회가 된다..


나처럼 지나간 그 시간을 후회하지 않게 가장 젊은 날인 "오늘"을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한다. 서로 마주 보고 웃을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따뜻함을 나눠서 익어가는 시기 동안 함께 좋은 기억을 많이 담아 두고 조금이라도 덜 후회되는 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할머니 너무너무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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