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
아침, 눈뜨자마자 나에게로 달려와 딸아이는 ‘심심해’를 외쳐댔다.
“물놀이장 갈까?”
눈을 동그랗게 뜨며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어린이 물놀이장이었기 때문에 어른은 준비가 필요 없어, 간편했다.
후다닥 아이의 수영복을 찾아 입게 하고, 갈아입을 옷과 수건을 챙겨서 출발했다.
물놀이장을 보고 좋아하며 물로 풍덩 달려가기를 원했던 내 기대와 달리,
아이는 근처에 있는 파라솔 자리를 찾아 헤매는 나를 따라다녔다.
“물에 왔으니까 빨리 가서 놀아~”
내 말을 듣고도 아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아는 친구들이 아무도 없다며 졸졸 쫓아다녔다.
짐을 놓을 적당한 공간을 찾고, 물놀이장으로 들어간 지 5분.
45분 운영, 15분 휴식 시간을 기준으로 운영하는 물놀이장이었기에 아이는 곧 파라솔로 돌아왔다.
“힝, 발만 담갔는데 휴식이래” 투덜거렸다.
옆에 있는 매점에서 과자와 음료수를 사주며 휴식시간, 아이를 달랬다.
휴식 시간이 끝나갈 즈음 갑작스레 비가 쏟아졌다.
한 방울, 두 방울 물놀이장 수면 위로 동그란 원들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물줄기가 점점 거세지고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비가 잦아들면 다시 재개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비는 점점 더 거세졌고, “쏴~” 소리가 들릴만큼 쏟아지는 빗줄기를 원망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운영하는 곳에서 풀 죽어 있는 아이들과 가족들이 안쓰러웠는지 물총을 대여해 주겠다 방송했다.
필요한 어린이는 줄을 서라고 했다.
방송을 듣자마자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뛰어가는 아이들과 달리 딸은 내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어서 가서 받아와~. 몇 개 없어서 늦게 가면 못 받을 수도 있어~”
물놀이, 물총놀이를 좋아하는 아이였기에 빨리 가서 받아오기를 재촉했다.
느릿느릿 걸어가는 아이는 역시나 거의 마지막에 줄을 섰다.
받아온 물총은 어찌 된 일인지 작동하지 않았고, 하필이면 고장 난 물총인걸 알게 되었다.
가서 바꿔오라고 했다.
느릿느릿 운영실로 갔던 아이는 가져갔던 물총을 그대로 들고 돌아왔다.
“왜 안 바꾸고 왔어?”
“다 고장 난 것밖에 없대.”
“그럼 반납하고 오지, 그건 왜 가져왔어?”
“그냥…”
아이는 그렇게 물총 안에 물을 넣어 엄마, 아빠에게 손을 뻗어보라고 한 뒤, 손에 물을 뿌려주고 다시 채우기를 반복했다.
휴장은 한 시간 동안 지속됐고, 오전/오후 2부로 운영되던 물놀이장은 오전 마지막 타임 45분 만을 남겨두고 다시 열렸다.
“이제 45분 신나게 놀고 가는 거야. 알았지?”
물놀이장에 들여보냈지만, 엄마도 옆에서 지켜봐 달라는 아이.
예전에 왔을 때는 학교 친구들을 우연히 만나 신나게 놀았었는데, 오늘은 별로 친하지 않은 아이 한 명만 왔다며 혼자서 이리저리 물놀이장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 다녔다.
허리까지만 몸을 담그고 수영도 하지 않은 채 물놀이장 밖에 서 있는 엄마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보니 가슴이 뜨거워지며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제 시간이 30분밖에 안 남았어~ 저기 혼자 노는 친구들에게 말 걸어봐~”
모든 것에 싫다고 입술을 쭉 내민 그 모습에 언성을 높일 것 같아, 엄마는 파라솔에 있겠다며 자리로 돌아왔다.
이내 자리로 따라온 아이는 다시 엄마가 옆에 와주면 좋겠다며 졸라댔다.
아이의 손에 이끌려 다시 간 물놀이장에는 세차게 발차기를 하며 수영을 하는 아이, 튜브를 타고 노는 아이, 친구와 더 오래 잠수하기 게임을 하는 아이들까지.
까르르까르르 웃음소리 가득한 물놀이장 속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딸은 아까와 똑같이 배회하며 엄마에게 말 걸고 물속을 걸어 다녔다.
‘휴~’ 한숨이 절로 나오는 걸 애써 삼켰다.
오전 타임이 끝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갈 시간이 되었다.
탈의실 앞까지 함께 간 아이는 잠시 문을 열어보더니 조금 있다 들어가겠다고 했다.
“학교 친구가 안에 있어서 그 친구가 나오면 들어갈래”
“엄마가 같이 들어가서 가려줄게. 어서 들어가서 갈아입자.”
1분, 2분… 시간은 흘렀고 언제 나올지 모르는 친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자니 냄비 속에서 물이 끓기 직전의 기포처럼 화가 방울방울 맺히고 있었다.
다시 몇 방울씩 내리던 비 때문에 우산을 들고 아이가 갈아입을 옷과 큰 타월 등 양손 가득 들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자니, 이럴 거면 왜 여기까지 왔을까 싶어 후회가 밀려왔다.
한 번 더 아이를 달랬다.
“사람들 다 갈아입고 가는 시간이야. 얼른 들어가서 갈아입자”
탈의실에 들어가기 싫다며 부루퉁한 얼굴을 보니, 그동안 참았던 화가 폭발했다.
“친구가 언제 나올 줄 알고 기다려! 다른 애들은 다 들어가서 갈아입는데 왜 너만 유별나게 구는 거야!”
“그대로 타월 깔고 차에 타. 집에 가서 씻고 갈아입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아이와 씩씩대며 돌아오는 나에게 함께 간 남편도 조용히 아이와 우산을 쓰고 따라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뭐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났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어릴 적 나의 내성적이었던 모습을 닮아서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끼리끼리 노는 아이들을 부러워하며, 나에게 먼저 다가와주는 아이에게만 마음을 내어주던 소극적인 모습.
그렇게 내성적이었던 내 모습을 닮을까 싶어 내 아이는 태권도와 수영학원을 보내서 외형이 강인한 아이를 만들어주려 했고, 미술과 피아노 학원을 보내서 친구가 없어도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를 만들어주고자 노력했다. 당당하게 자신의 매력을 뽐냈으면 하는 마음에 스피치 학원도 일 년 넘게 보낸 터였다.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그동안 쌓아온 기대가, 그동안의 노력들이 와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듯했다.
어릴 적 내가 싫어했던 나의 모습과 똑같은, 소극적이고 주눅 들어 있는 딸의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나를 닮은 아이의 모습에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어린 시절 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씻은 아이가 다가왔다.
물놀이장에 갔는데 비 와서 놀지도 못하고 겨우 45분밖에 못 노는 게 짜증 나고 싫어서 기분이 내내 언짢았다며 말을 걸어왔다.
대화를 하며 물놀이장에서 쌓인 마음의 앙금을 걷어내긴 했지만, 오늘 왠지 가슴이 답답하고 힘들었다.
아마도 오늘은, 아이와 함께 내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한 날이었던 게 아닐까.
내가 못마땅해하던 나를 그대로 닮은 아이의 앞날이 걱정되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누구를 위한 나들이였는지.
어쩌면, 아이와 함께 나도 조금씩 자라고 있는 중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