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엄마랑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엄마, 오래 살아야 해요

by 글꽃J

매주 토요일이면 친정으로 향한다.

혼자 식사하실 엄마께 밥친구도 되어 드리고, 평소 혼자 가시는 산의 길동무, 그리고 저녁이면 말동무가 되어드리기 위해 일부러 빼두는 시간이다.

엄마를 만나 운동을 위해 매일 찾으시는 낮은 산으로 함께 올라간다.

모기가 기승이라, 내가 물릴까 걱정되어 함께 가자는 말을 선뜻 하지 못하는 엄마.

그런 엄마를 알기에 주섬주섬 양산과 마실 물을 챙겨 엄마를 따라나선다.

엄마는 내심 반가워하시며 살이 노출되는 곳이 없도록 단단히 챙겨 입었는지 확인하시고는 모기 물린데 바르는 약을 가방에 넣고 출발하신다.

산으로 오르다, 지난번 함께했던 곳에 다다랐다.

걸음을 멈추신 엄마는 말씀하셨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어떤 사람이 꽃을 예쁘게 심어둔 데가 있어. 가볼래?”

“좋아요!”


어릴 적 시장에 따라가던 그때처럼 엄마 뒤를 졸졸 따라가니 알록달록 꽃이 심어져 있는 곳이 나왔다.

꽃밭 끝자락에 나이 지긋하신 남성분이 계셨다.

“처음 오시는 분 같네요~”

내일모레면 팔십이라는 그분은 돌 위에 얹어둔 작은 라디오 소리에 몸을 맡긴 채였다.

신나는 음악에 연신 무릎을 살짝씩 굽혔다 폈다 하며 리듬을 타고 계셨다.

머리가 다 빠졌다며 두건을 두르신 어르신은 79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키 크고 건장한 체형을 자랑하셨다.

웃음 가득한 얼굴과 몸 전체에서 긍정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엄마도 가끔 가보긴 했지만, 그 어르신을 만난 건 처음이라고 하셨다.

처음 오시는 분들이니, 소개를 해주시겠다며 그곳에 심어둔 열매와 꽃을 하나하나 소개하셨다.

큼직한 수세미 열매와, 봉숭아, 맥문동 꽃 등등…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꽃들부터 익숙한 꽃까지 에덴동산이 따로 없을 듯했다.

평소 “나는 자연인이다”를 즐겨 보시며 그런 생활을 꿈꿔오시던 엄마께 이곳은 작은 텐트나 원두막만 하나 있으면 딱 그리던 그런 곳이었다.

엄마도 너무 잘 꾸며놓으셨다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선사하며 즐겁게 생활하시는 그 어르신이 대단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시고, 또 그런 열정을 부러워하셨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엄마가 꿈꾸는 그런 곳에 살게 해드리고 싶지만, 내 가정과 회사가 있기에 엄마를 모시고 시골로 당장 내려갈 수는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산 중턱에서 운동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식탁에서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전부터 토요일 저녁이면 엄마의 생각을 듣고 상담사가 된 듯, 여러 부정적인 생각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조언을 드리고 있었다.

다음 달, 9월에 잡힌 병원 일정을 언급하시며 그때 진료에 가면 내성이 생긴 탓에 더 이상 약도 처방 안될 것이고, 그러면 증상이 급속도로 안 좋아져서 곧 세상과 이별하게 될 거라며 이미 사형선고를 받아둔 듯 담담히 말씀하셨다.

속상한 마음에 말했다.

이미 일어나지 않은 일을 단정 짓지 말라고.

옆에서 아무리 긍정적인 말을 해도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몸도 생각대로 흘러간다고.

그래서 부정적인 의식의 흐름을 끊어내야 한다고.

“이제 다 틀렸어. 언제 집 구하고 언제 텃밭 가꾸고… 이제 그런 걸 할 시간이 없어. 있는 걸 하나씩 정리해야지.”

엄마의 말을 듣고, 하루를 살아도 내 마음을 지옥에 빠뜨린 채 살면 그게 사는 거겠냐고,

행복하게, 즐겁게, 희망을 갖고 살라는 말을 하다가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온 말.

“엄마, 엄마는 오래오래 살아야 돼.

왜냐면 아직 내가 엄마랑 하고 싶은데 너무 많거든요.”

나도 모르게 내뱉진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덤덤한 엄마와 다르게 혼자 눈물 흘리는 걸 들킬까 싶어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어릴 적 과일장사, 식당 일 등 궂은일을 하며 겨우 집을 장만했지만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다시 내 집 한 칸 없이 2년마다 이사하기를 수십 번 반복하는 엄마였다.

‘내 집을 갖는 게 소원’이라고 노래를 부르시던 엄마를 시골 편안한 집으로 모시지 못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처음 암 진단을 받은 지 어느덧 4년.

엄마와 울고 웃으며 언제가 마지막일지 모를 그 살얼음 같은 날들을 견뎌 왔는데.

나약해진 엄마를 보며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허둥대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뭘 더 해드릴 수 있을까.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다.

아직… 나는 엄마랑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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