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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릭 May 14. 2018

영화 콜럼버스 Columbus, 2017


시적이다. 의지할 곳 없이 건축물로부터 위안을 느끼며 사는 영민한 소녀 '케이시'와 건축에 몰두한 아버지로부터 소외되어 성장했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두발로 딛고 선 '진'. 진은 소녀에게서 어렴풋이 아버지의 열정을 이해하게 되고, 케이시는 진의 자극으로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비집고 세상으로 나선다. 간결한 대화와 사색적인 영상과 차분한 열정으로 가득 찬 영화다.  

    

캐스팅 역시 훌륭하다. 한국에서 온 진 역에는 한국계 미국인 배우 존 조. 한국말을 할 때, 꽤 정확한 발음에 비해 굉장히 낯선 억양을 구사한다는 점이 흠이지만, 어차피 이 영화에서 한국인이라는 설정은 낯선 이방인이라는 액세서리에 불과하니까 패스. 무엇보다 케이시 역을 맡은 여배우의 표정연기는 이 영화의 중심에 두기에 손색이 없다.    

 

이 영화는 마치 ‘데미안’의 현대적 각색처럼 느껴진다. 어릴 적 난 지독히도 데미안을 갈망했었다. 내 속의 가늠할 길 없는 감정과 생각들을 풀어내고 또 이끌어줄 친구이자 스승 같은 누군가에 대한 간절함. 그 막연한 기다림. 아마도 성장통을 겪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심정을 가졌을 테지만, 나의 경우엔 그런 감정과는 별도로 내게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란 체념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난 그런 갈망을 해소하는 방법은 나 스스로가 데미안이 되는 수밖에 없다는 섣부른 결론을 내려두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완성인 채로 끊임없이 찾아 헤매고 욕망하는 기간이야 말로 자신을 제대로 성장시켜주는 밑거름이 되는 것 같다. 너무 이른 자기 확신은 자신을 정체시키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체된 자는 자신이 정체되어 있다는 사실 조차 쉽게 깨닫지 못한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세계를 부수는 것은 과연 현명한 일일까. 당연하게도 깨닫는 것과 현명함이 일치하리란 보장은 없다. 다만 인간은 행동함으로서만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 뿐이다.



# Hammock - Meier (Columbus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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