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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릭 Oct 06. 2018

대충 만드는 천연발효빵.



사진은 생애 두 번째로 구워낸 빵. 두 덩어리 중 한 덩어리는 이미 뱃속에서 소화 중이다. 빵을 굽게 된 사연은 굉장히 뜬금없다. 지난주 커피콩을 볶을 전기오븐을 샀다가 오븐이 생긴 김에 빵까지 굽게 되었던 것. 평소 요리에 대한 지론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인지라 이스트니 계란이니 그딴 건 모두 생략하고 순수 밀가루와 물만 가지고 시도했다.

      

예전 어떤 글에서 누군가 발효에 관해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양분과 수분과 온도만 적당하면 효모가 알아서 열심히 일한다는 것. 빵을 위한 밀가루 반죽의 발효는 바로 효모가 먹고 싸고 번식한 결과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효모는 공기 중 어디에나 존재하며 자신의 생장에 적당한 조건이 되면 금방 자신의 생명력을 발휘한다. 더운 날, 금방 음식에서 쉰내가 나는 것과 같은 원리지만, 이를 밀가루 반죽에 이용하면 소화하기 힘든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해 훨씬 풍부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예전에 자주 요거트를 발효시켜 먹었기 때문에 대충 비슷하겠지 생각했는데 정말 비슷한 구석이 많다. 처음 발효시켜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려짐. 뭐든 잘하기가 힘든 법이지 대충 흉내 내는 건 쉬운 법이다.     


당장 필요한 건 밀가루뿐이다.  몸에도 좋고 발효하기에도 좋대서 통밀가루로 덜컥 한 포대를 구매. 통밀은 속껍질 째 빻은 것이다. 흔히 쓰는 백밀가루처럼 단일조직으로만 된 밀가루는 효모의 입장에서도 편식이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좀 더 자연친화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기 좋은 먹이는  백밀보다는 통밀이란 건 어쩌면 당연한 원리다. 뚜껑을 닫을 수 있는 용기에 적당히 밀가루를 넣고 진한 요거트정도의 묽기로 물을 섞는다. 그리고 그냥 상온에 내버려두면 끝. 사람이 지내기에 적당한 온도면 따로 온도조절을 할 필요가 없다. 아무래도 정확하게 온도와 습도를 맞춰주면 더 잘되겠지만, 이 방식은 거칠게, 대충, 막! 너무 엇나가지 않을 정도의 가이드만 설정해두고 '효모 너 맘대로 해!' 이런 식이니까 너무 잘하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 사실은 워낙 게으른 성격인지라 그렇게 귀찮게 관리할 거면 빵 만들 생각조차 안 했을 것이다. 뚜껑이 필요한 이유는 효모가 발효하면 열이 발생하는 데 아무래도 덮개가 있는 쪽이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데 적당해 보여서다. 두번의 경험으로 확실히 뚜껑을 덮어두는 쪽이 발효가 잘된다. 단 많은 양은 나오는 가스양도 많으니 밒폐용기는 폭발의 위험이 있기도.

     

이렇게 내버려두면 반나절이 지나지 않아 거품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거슨 효모가 지금 잘 먹고 잘 싸고 있다는 증거. 그러다 보면 처음보다 훨씬 묽어지면서 끈적한 느낌이 더해진다. 대충 이렇게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정도. 여기까지가 반죽을 위한 발효종의 완성.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 발효종을 냉장고에 며칠 숙성시킨다던지, 다시 밀가루를 섟어 좀 더 키워 사용하는 등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던데, 여기에선 그딴 거 모두 생략. 만들어진 발효종에 빵을 만들 양만큼 밀가루를 넣고 빵 반죽을 한다. 만들어진 반죽이 건조하지 않도록 뚜껑이나 비닐을 덮어둔다. 이것도 다시 효모종이 불어나 발효되는 것임으로 덮개가 있어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쪽이 발효에 유리할 듯.


처음엔 대충 반나절, 두 번째엔 대충 12시간을 두었는데 두 번째가 훨씬 제대로 발효가 된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발효된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나눠 오븐에 넣고 구우면 끝. 처음엔 200도에 10분 정도, 두 번째엔 180도에 15분 정도 구웠는데 두 번째가 훨씬 식감이 좋다. 정말 이게 끝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빵이 만들어진다. 다시 요약해보자면, 처음 밀가루를 약간 반죽해 내버려두면 발효종이 되고 그 발효종을 넣어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다시 발효시켜 구우면 빵이 뚝딱 만들어진다. 물론 천연발효임으로 느긋하게 기다리는 미덕은 필수. 


땡- 오븐의 타이머가 경쾌한 신호음을 울리면 근사하게 부풀어 올라 먹음직럽게 구워진 빵을 꺼낸다. 세상에 이걸 내가 구웠어! 채 식지 않은 뜨근한 빵을 적당히 자른다. 방안이 구수한 빵 냄새로 가득하다. 


첫 번째 빵은 오미자청에 오일만 섞어 찍어 먹었는데도 꽤 그럴싸했다. 두 번째는 좀 더 신경을 써서 닭안심을 익히고 또 대충 오일 드레싱을 만들었다. 급하게 오일에 소금과 강황가루, 생강가루를 섞었는데, 의외로 약간 시큰한 곡물향과 어울려 꽤 그럴싸한 풍미가 났다. 오일을 듬뿍 발라 빵에 끼워먹었더니 뭔가 제대로 요리를 해서 먹은 기분. 유레카! 밥해먹기 귀찮아 대충 스파게티만 줄창 해 먹었는데 의외의 요리법을 하나 발견했다. 여기에 역시 이 오븐에 볶은 원두로 내려 냉장고에서 숙성해둔 더치를 더하니 금상첨화, 화룡점정. 이 모두가 새로 산 이 작은 오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적어본 오늘의 브런치. 

            

오늘 낮에 다시 새 발효종을 만들면서 오미자청을 넣었는데 발효할 때 굉장히 좋은 향이 난다. 뭔가 고소하면서도 오묘한 향긋함. 다음 구워질 빵이 벌써부터 궁금해지네.       


# My Favorite Things - Joey Alexa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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