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분이 꼭 그래.
- 대체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온 거야.
- 자신감이라니?
남자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던 여자가 콧바람을 내며 묻자 남자가 무신경하게 되물었다.
- 내가 호감을 가졌을 거라는 그 확신 말이야.
- 확신이야말로 남자가 가진 최고의 무기지. 이런 어리석은 특징이 없었다면 나 같은 고만고만한 남자들은 몇 만 년 전에 씨가 말랐을걸. 그 자신감인지 무모함인지 덕분에 이렇게 여행도 오게 된 거 아니겠어?
마침 주문했던 음료가 나왔다. 여자는 한 모금을 마시면서 눈앞에 펼쳐진 해변을 바라봤다.
- 흠.... 내가 낚인 거라는 거네.
나른한 늦오후의 바람이 그녀의 이마에서 머리카락을 살랑거리는 걸 바라보며 남자도 한 모금 들이켰다.
- 글쎄.... 어쩌면 내가 낚인 거랄 수도.
- 그건 무슨 뜻이야?
남자의 말에 여자가 획 고개를 돌리며 되물었다.
- 그런 확신에 취해서 맹목적으로 네게 달려들게 만든 거 말이지. 제 정신이라면 도무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 제정신이 아니었으면? 지금은 제 정신이라 달리 보인다는 거네!.
- 당연하지. 안 달라 보이는 게 오히려 이상한거지. 원래 사랑이란 감정이 정상적인 정신상태라곤 할 순 없지.
- 뭐가 그렇게 달라 보이 길래 이런데?
남자의 느긋한 말투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여자가 쏘아붙였다.
- 순진하고 얌전하기만 한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여우같다는 거, 이것저것 잴 줄 도 알고, 교묘하게 사람의 감정을 이용할 줄도 안다는 거. 요즘 무슨 일이 잘 해결되었다고 생각이 들 때면, 그게 왠지 누가 미리 정해둔 길로 발을 내디딘 듯한 기분이 든단 말이지.
여자의 눈꼬리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지만 남자는 재미있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 요즘 좀 잘해주니까 아주 미쳤구나, 너? 지금 여기서 휴가 보내게 된 게 꼭 나 때문인 것처럼 말한다?
- 그래서 하는 말이지. 요런 여우같은 분이 없었으면 내 주제에 어떻게 이런 멋진 여행을 생각해 냈겠어? 전혀 내가 생각지 못했던 너라서 좋아서 하는 말이야. 곰보다 여우라더니....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버렸다고 할까....
저 능글능글한 웃음, 하지만 이젠 저런 표정까지도 사랑스럽기만 한 걸.... 여자는 피식 웃음이 새려는 걸 꼭 다문 입술로 막으며 대신 자신을 바라보며 함박웃음 짓는 남자를 향해 눈을 흘겼다.
- 뭐지, 이 돌려까기 당하는 기분은....
- 돌려까기라니, 아가씨! 돌려칭찬하기!
이런 유치한 말장난까지 사랑하게 될 줄 그땐 상상도 못했었지. 여자는 속으로 미소를 삼키며 처음 자신에게 고백을 하던 남자의 결의에 찬 눈빛을 떠올렸다.
- 이상한데....
- 그치? 내 기분이 꼭 그렇다니까.
남자가 잔을 들어 여자의 잔 끝을 툭 쳤다. 두 사람은 동시에 음료를 마셨다. 그리고 반짝거리는 물결이 밀어내는 파도소리에 나란히 귀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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