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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릭 Nov 14. 2020

별이 내린다

띠리릭. 도어록 신호음이 울린다.


휴일 오후, 남자는 낮잠에 들었었다. 잠에서 깼지만 그는 가만히 누운 채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살며시 구두를 벗는 소리. 현관 벽 모퉁이에 놓인 소파 위로 가방이 기울며 넘어지는 소리. 식탁과 거실장 사이로 사뿐히 내딛는 발걸음 소리.


저만치 여자의 조심스런 몸짓과 얼굴에 피었을 장난스런 미소를 남자는 눈을 감고서도 또렷이 그려낼 수 있다. 아마 그의 왼팔에 드리운 햇살의 감촉이라면 거실 마룻바닥에는 그녀의 조그만 발목이 예쁜 그림자를 그려고 있을 것이다.


방 앞에서 멈춰 선 여자의 걸음. 그녀는 문틀 사이로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을 테다. 아직까지 잠에서 덜 깬 남자의 감각은 약간 꿈과 뒤섞여 있었다. 방문 너머로부터 여자의 환한 눈빛과 입가의 미소가 그의 나른한 의식 속으로 촉감이듯 흘러들었다.


여자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 움직임을 따라 바스락거리는 옷깃으로부터 떨어지는 아련한 향기들. 그 조각들 몇 개가 날려와 남자의 콧잔등을 타고 미끄러진다. 침대 맡에 다다른 여자가 멈춰 선다. 그녀의 시선이 마치 구름처럼 떠올라 천정을 맴도는 것만 같다. 문득 남자는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되물었다.


이윽고 그 조심스런 움직임이 침대를 타고 오른다. 무게감이 실린 스프링의 흔들림을 느끼는 동안, 그녀의 한쪽 무릎이 남자의 허벅지를 스쳐 지나고 있다. 다시 멈춘다. 이제 그녀는 바로 그의 손에 잡힐 거리에서 가만히 남자를 내려 보고 있다. 그사이 방 안을 채우던 여자의 향기가 턱밑에서 찰랑거린다. 삶이란 그 자체가 꿈일 거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녀의 가지런한 숨소리가 곱다. 여자의 표정이 궁금해진 남자가 눈을 뜨려 할 때쯤, 그의 볼과 이마로 그녀의 머리카락이 쏟아져 내린다. 그 부드러운 물결과 함께 밀려드는 진한 여자의 향기를 느끼며 남자가 눈을 뜬다. 머리카락에 가득 잠긴 그의 얼굴 위로 한낮에 포근한 밤이 내리고 커다란 두 개의 별이 떠올라있다.


자리를 지키며 잠깐 동안 반짝거리던 두 별이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온다. 향기에 듬뿍 취한 남자는 날아오르듯 별빛 속으로 빠져든다. 달콤한 어둠 속으로 언뜻언뜻 햇살이 부서진다.




# Syracuse - Claude Bo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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