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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릭 Sep 04. 2022

 베터 콜 사울 Better call Saul

시즌6 중간쯤 감상기

이야기는 생각보다 슬프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시즌, 킴은 지미의 거짓말에 견디지 못해 폭발해버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격정은 급작스런 결혼으로 이어졌었다. 사랑에 빠져버린 똑똑한 여자가 선택하는 어리석음의 전형이랄까. 그녀의 감정은 사랑보다는 연민에 가까워 보인다. 남들이 느끼지 못한 그의 기발함, 성실함, 분투를 지켜보았고, 그가 느낀 분노, 상실감, 공허함을 킴은 누구보다 이해했다. 때문에, 점점 수렁으로 빠져드는 지미를, 그것도 자신의 신념과는 반대방향으로 미끄러져가는 그 안타까움을 놓지 못하고, 그녀는 자신을 그에게 붙들어 매어버렸던 것이다.


자신이 그의 곁을 지켜야 한다는 모성본능 비슷한 애착일 수도 있고, 나아가 자신이 그를 구원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일 수도 있고, 스스로의 능력으로 삶의 문제들을 풀어온 사람들이 가지는 결단과 자신감이 그녀를 이 어처구니없는 남자에게 돌진해버리게 만든 이유일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은밀하게 진행되는 하워드를 골탕 먹이려는 시도들은 실은 그녀가 망설이는 지미를 부추긴 것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지미의 내면에 깔린 울분은 또 어떤 식으로 지미를 자극할지 모를 불안의 원천이랄 수 있는데, 아마 킴은 하워드를 몰락시킴으로써 지미가 울분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일지 모르겠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흔하게 가지는 착각 중 하나는 나의 노력이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이다. 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얼핏 보면 위대한 감정이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오만한 이기심에 불과하다. 우리의 노력은 누군가를 구원할 수 없다. 우리는 단지 누군가의 노력에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은 아주 오랜 진실이다.


시청자로서 지미에 대한 나의 애정도 약간은 킴과 유사한 지점에 놓여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번 시즌이 진행되면서부터는 이 오랜 애정도 식어가고 있다. 지난 시즌, 물론 지미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카르텔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렸다. 그의 이탈과 더불어 어쩔 수 없이 킴도 휩쓸리는 과정에 있다. 이제 카르텔의 위험은 그녀의 일상 속에 언제건 개입될 수 있는 상황이다. 강인하고 자신에 찬 여자의 당혹스러운 표정과 그녀의 어쩔 줄 모르는 눈빛을 바라봐야 한다는 건 꽤나 감정을 자극한다.


이처럼 사랑하는 이에게 위험의 가능성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정서적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인 것 같다. 위험을 예감한 지미 역시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더욱이 카르텔의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떠맡게 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결국 일들은 그 사람의 본성에 따라 흐른다. 만약 그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를 우선으로 여겼다면, 그는 떠맡겨진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킴이 얽히게 되는 상황을 피하는 데 머리를 굴렸어야 했다. 아마 그의 언변과 기발함이라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자신이 벗어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동안 드라마는 영리하게도 그 과정을 촘촘히 엮어 지미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들어 왔다.


일상에서도 이런 유형의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런 사람은 자신에게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열심인 나머지, 중요한 것이 망가지는 걸 보지 못한다. 이런 점은 약간은 킴도 마찬가지인데, 그녀의 사랑과 연민이 그녀 자신뿐 아니라 그를 엉뚱한 곳으로 밀어 넣고 있다. 사랑은 많은 것들을 해결하지만 또 그만큼 많은 문제들의 원천이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인간은 얼마나 많은 일들을 저지르는가. 수많은 병폐의 이유, 먹고살기 위해서였다는 흔한 변명은 대개 사랑하는 이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 때문에 벌어지는 것들이다.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는 이유, 양심에 거스르면서 지시에 따르는 이유, 남을 짓밟고서라도 올라서려는 이유, 그중 대다수는 그 아름답고 위대하고 숭고하다는 사랑으로 정당화된다.


이런 관점에서 척은 지미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었다고도 볼 수 있다. 지미는 그 흔한 이유인 사랑 때문에 제 발로 수렁에 걸어 들어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순수한 악인이랄까.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붙잡은 잠자리 날개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뜯어내는 것처럼, 지미는 킴과 결혼을 하고서도 자신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없다. 사랑하지만 결코 그 근원에 도달하지 못하는 정신적 불구자라 부를 수 있을까. 그렇다고 척을 옹호하고 싶지 않다. 지미가 가진 악덕의 절반은 형에게 책임이 있으니까.


여하튼 킴의 불안한 눈빛이 점점 신경 쓰이고 있다. 한 번에 완주하려 했지만 아쉽게 오늘은 여기까지만. 밤 커피는 하지 않지만 모처럼 마시는 기분에 덤으로 브런치질.




# Adress Unknown - The Ink Sp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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