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릭 Sep 11. 2022

베터 콜 사울 Better call Saul

시즌6, 전시즌의 마무리. 

주의!! 무지막지한 스포일러!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마지막을 의식한 시즌이었는지, 지난 시즌들과는 다르게 장면들이 느슨하고 군더더기가 많고 감정에 치우친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안일한 연출이란 생각. 여전히 내가 본 최고의 드라마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에 따른 아쉬움도 어쩔 수 없다. 이미 정해진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이고, 그것에 도달하는 플롯도 적절했으나, 그 전개과정이 그동안 쌓아온 캐릭터들을 소모성으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미 중반 이후부터는 드라마에 대한 몰입보다는 애정으로 시청해야 했다.


시즌 전반부 나초의 죽음부터 설득되지 않았는데, 위험을 줄타기하며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었던 그가 아버지에 대한 협박에 순순히 목숨을 내어 줬을 땐 이게 뭐지 싶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그런 협박은 금방 되치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버지를 건드리면 카르텔에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 거라고, 그가 반대로 협박하고 잠적해서 기회를 엿보면 되기 때문이다. 쫓기면서 목숨이 위험해질 수는 있을지언정, 그가 살아있는 한 그의 아버지를 죽이는 건 거스로서도 전 카르텔과 상대해야 하는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초는 충분히 그 정도 배짱을 지닌 캐릭터로 그려졌었다. 처음부터 거스의 협박에 협조한 건 맞지만, 거스 측이 성공할 경우 향후 자신의 이익도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하워드의 죽음. 나초의 결말을 그럭저럭 인정하고 넘어서고 있었는데, 그에 이은 이 두 번째 타격감은 컸다. 그때까지 이어지던 몰입도가 급 떨어졌다. 전 시즌을 두고 봤을 때, 그의 죽음은 마치 그리스 희곡에서 곧잘 사용되었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아주 편리하게 결말로 이끌게 만드는 신이 등장하는 기계장치를 뜻하는데, 그의 난데없는 죽음으로 그나마 안전핀 구실을 하던 킴이 떠나버림으로써, 지미의 타락은 정당화되어 버리고 사실상 이 드라마의 가장 중심에 놓인 이야기가 싱겁게 끝나버렸다. 하워드는 지미의 악의를 드러내는 도구로서는 적당했지만, 그를 중심 내용을 결정짓는 데까지 사용해버린 건 너무 과했다.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죽어버린 광경을 보고서 슬픔을 느끼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우연이 아니라 자신들의 작전이 제대로 먹혀서 감당하지 못할 일이 터져버리는 쪽이 뻔하지만 훨씬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었을 것 같다.


랄로의 죽음. 시즌 통틀어 마이클과 더불어 최고의 능력자인 이 인물은 거스의 전선 발차기 신공에 맥없이 무너진다. 그는 네댓 명쯤은 순식간에 처리하는 사격솜씨를 지닌 인물이다. 그 정도의 감각이라면 약간의 움직임에도 곧바로 반응하기 마련이다. 프로복서가 그 짧은 시간에 주먹을 피할 수 있는 건 단순히 주먹만 보기 때문이 아니라, 몸 전체의 실루엣을 통해 무게중심의 이동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반응하기 때문이다. 랄로 정도의 능력자라면 거스가 전선을 차려는 액션을 취하기도 전에 이미 움직임을 알아챘어야 한다. 그는 저게 돼?라고 말할 만한 상황에서도 상대를 제압해왔었다. 게다가 그는 거스가 방탄복을 입은 것도 알고 있었고, 이전 몇몇 장면에서도 그는 상대방의 머리를 정확하게 노렸었다. 게다가 마이클. 노련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베테랑은 거스를 죽이러 온 킴을 보고서 갑자기 영화에 등장하는 흔한 경찰이나 경비원들 마냥 잔뜩 인력을 이끌고 지미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그는 시종일관 상황의 핵심을 꿰뚫어 보고 제어하고 관리하는 캐릭터였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감탄한 부분이 등장인물들에 대한 세밀한 묘사였는데, 잇달아 실망스러운 전개가 이어지면서 조금씩 시청하는데 집중이 필요했다. 하필이면 마지막 시즌이라니. 예전에 재밌게 보았던 '그 땅에 신은 없다'도 마지막 회가 가장 실망스러웠었다.


뜬금없는 요소들은 틈틈이 이어졌다. 왜 넣었는지 모를, 마치 돈을 전부인양 지미를 그리는 몇몇 억지스런 장면들. 마치 인생의 소중한 것은 돈이 아니라 소중한 그 무엇이라고 교훈을 강요하는 듯 한 장면들. 후회란 키워드와 타임머신을 엮는 대화들. 급기야 정말 오랜만에 등장한 척의 씬에서 소품으로 소설책 타임머신이 보였을 때는 몸이 오글거릴 정도였다. 지미에게 진정 돈이 전부였다면 무난히 HHM에 근무하면서도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 막대한 이익과 하워드의 제안까지도 지미는 스스로 거부했었다. 이런 장면들은 시종일관 중요하게 다뤄졌었고, 지미의 의식을 설명하는 핵심 요소였었다. 아예 돈과 무관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스쳐 지나는 씬도 아닌 의미를 강조하는 씬에서 이런 장면이 반복되는 건 그 결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에 갑자기 이야기는 순애보로 바뀐다. 특유의 논리와 입담으로 협상에 성공해 많은 감형을 받았던 지미는 갑자기 킴의 소식을 듣고 자백해버린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전개지만 이 역시도 너무 안일했다. 사실상 피날레에 해당되는 부분이었는데, 그에 걸맞은 인물의 감정과 그 감정을 떠받힐 대사들이 밀도 있게 구성되어야 했다. 전시전의 마무리라면 최소한 시즌4 마지막 회에서 보여주었던 전율 정도는 있어야 했다. 이런 단순한 회한은 내게 너무 모자라게 느껴졌다. 이런 편리한 연출은 마지막 장면까지도 이어진다. 지미의 재판 발언에 감응했던지 킴이 복역 중인 지미를 찾아온다. 재회한 두 사람은 초기 변호사 시절을 연상하게 만드는, 그 뻔한 의도를 드러내며 나란히 벽에 기대 담배를 나눠 피고 헤어진다. 감정이입이 되기보단 추억팔이라는 느낌. 이런 의도는 시즌 중간중간 등장하는데, 무려 브래이킹 배드의 그 월트와 제시가 등장하고서도, 그것들은 그런 추억팔이 이상의 장면으로 연출되지는 못했었다. 물론 그 추억팔이가 내게 안 먹힌 건 아니지만.


쓰다 보니 너무 비판적인 것만 나열되었다. 너무 애정했던지라 그만큼 실망이 컸던 것이고, 정말 매력적으로 그려졌던 인물들이 마지막에 너무 대충 다루고 있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내게 '베터 콜 사울'은 시즌을 기다려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봤던 유일한 드라마이다. 아마 이런 드라마를 다시 만나긴 힘들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내가 느낀 실망의 일부분은 더 이상 이 드라마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인 것도 같다. 글을 마무리하려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 In Stiller Nacht(J.Brahms) - Pink Martini

매거진의 이전글 베터 콜 사울 Better call Saul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