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우리의 선택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흔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로 인용되는 이 문장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엄밀히 ‘정치적 동물’이란 말은 기계적으로 번역하자면 '폴리스적인 동물'이란 뜻이다. 고대 그리스의 독립적인 공동체의 단위가 '폴리스 polis'였고, 이는 오늘날과 비교하자면 형태상으로는 도시, 행정상으로는 국가로 간주될 수 있다. 즉, '정치학'으로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폴리티카 Politika'는 정치란 추상적인 개념에 관한 설명이 아니라, 그냥 당시 국가단위라 볼 수 있는 도시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위 문장의 의도를 살려 다시 해석하자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하는 동물이다.’ 쯤이 된다. 이 공동체의 바람직한 형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시로 간주했던 것인데, 이 '도시적'이란 단어가 마치 성경이 번역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단어들이 윤색된 것처럼, '정치적'이란 말로 번역되면서 뭔가 실제 삶에서 분리된 개념적 뉘앙스를 지니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위 문장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정치란 개념을 결부시킨 인간의 속성에 관한 정의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도시적'이라는 구체적인 수사로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고민했던 건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 어떻게 하면 올바른 결정들이 이뤄질 수 있을까에 관한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였다.
한국의 경우는 오랜 독재의 경험 탓에 정치적이란 말은 꽤나 터부시 된다. 독재자에게 국가의 운영에 관한 발언들은 권력에 대한 공격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고, 공교육 시스템에서 적극적으로 다루는 것을 피해왔기 때문에 왠지 일상생활과는 동떨어진 불편한 주제가 되어왔던 것이다. 게다가 경험적, 혹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사람들에게 정치적 발언은 뭔가 불순하고 위험한 것으로 인식됨으로써 그것에 대해 기피하는 풍토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근대 시민국가에서 자신이 사는 동네, 도시, 국가가 어떻게 운영될지에 대한 관심은 필수적이다. 다수의 공정한 의견이 반영되는 합리적 의사 결정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그 자체로 옳은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적 실험들을 통해 그런 합리적 의사결정구조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받아들인 하나의 방식이다. 그러나 수많은 구성원들의 의견들을 조율해서 반영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고, 인간은 보통 눈앞에 이익이 명확하지 않은 한 복잡한 일에 관여되는 것을 기피한다. 때문에 이에 적극적인 개입할 시민이 필요한 것인데, 그런 의식적 소양을 지닌 시민은 저절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적극적인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고, 또한 그 과정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구조를 필요로 한다.
이미 앞서 수천 년 전 민주주의 체제로 온갖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었던 그리스인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이런 약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 체제가 적절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경제활동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생각할 여유를 지닌 계층이 필요하다고 보았는데, 이는 오늘날의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중산층에 해당된다. 이런 먹고살만한 중산층이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과두나 왕정으로 이행되기 쉽다고 설명한다. 이런 현상은 한국도 근래에 경험한 것들이다. 독재기간의 경제성장으로 두터워진 중산층이 민주정부를 낳았지만, IMF로 다시 그 중산층이 몰락해버리자 다시 권위적인 정부로 회귀해버렸던 것이다. 그 극단적인 결과가 어떤 폐해를 낳고 있는지는 현재 실시간으로 확인 중이다.
때문에 실질적인 민주주의 체제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중산층을 길러내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단지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과도 직결된다. 극심한 빈부격차로 부촌과 빈촌으로 분리되고 그로 인해 반목하고 불안이 가중되는 사회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어떤 가치나 신념을 따를 것인지는 각자의 몫에 달려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시킨다는 건 전제군주국가에 어울리는 생각일뿐더러 실제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정당을 지지하든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든 정치적 신념은 당연한 개인의 권리임으로 상관하고 싶지 않다. 다만 미리 말했듯이 다수의 공정한 의견이 반영되는 의사결정구조를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 의사결정구조로서 민주주의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자신이 지지하는 누군가가 혹은 그 정책이 이 사회의 중산층을 늘리는데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반드시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