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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릭 Feb 27. 2017

플라시보 효과에 관한

혹은, 자기기만의 생리학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는 의학에서 가짜 약을 복용하고서도 심리적 효과에 의해 실제 증세가 호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특히, 물리적 손상이 덜한 신경성 증상일수록 그 효과는 실제 약의 효과에 근접한다. 플라시보 placebo란 단어는 ‘나는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기원한 것인데, 우리가 일상에서 이 용어를 사용할 때는 좋게는 자기긍정의 힘, 나쁘게는 정신승리 쯤의 의미가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 적당한 불안이 주는 긴장감은 상황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면 무기력이나 우울증, 신경쇠약과 같은 형태로 일상적 활동 자체가 힘들어지게 된다. 때문에 인간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불안을 줄이려 애쓴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매사에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어서 그 간격을 심리적으로 메우려고 하게 되는 데, 이때 그가 가장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믿음을 스스로의 마음에 심는 것이다. 무심코 잘될 거야라고 중얼거리거나, 아전인수식의 억지주장을 편다거나, 점을 보러 가서 불확실함을 확정 지으려 하거나, 종교적 교리에 의존하는 것 모두가 그런 노력의 일환들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런 확고한 믿음이 신경계통에 영향을 미쳐 실제 생리작용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믿음이 주는 마음의 안정을 통해, 불안감이 유발하던 해로운 신경물질이 줄어들고 긍정적인 물질들이 배출됨에 따라 신체활동에 활력을 더함으로써 닥친 상황을 극복하기 쉽게 만든다. 플라시보 효과도 이런 생리작용에 기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먹은 약이 진짜든 아니든, 단지 약이라 믿기만 해도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두뇌에는 스스로 약을 공급해주는 조제실이 있는 셈이다.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 그것을 바로잡기보단 생각을 바꾸는 것을 ‘인지부조화’라고 부른다. 이것은 보통 부정적인 뜻으로 사용되지만, 단지 생명력을 유지하는 유기체의 입장에서는 신념과 신념, 신념과 현실의 불일치에 시달리며 고통받느니, 차라리 잘못된 믿음을 가지더라도 그런 불일치를 줄여 스트레스를 줄이는 쪽이 당장 삶에 이익이 된다. 물론, 이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한 관점이어야지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설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만큼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태극기를 흔들며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쏟아내는 노인들이 있다. 헌법정신이나 민주주의의 가치, 인간의 존엄성에 무지한 나이 값 못하는 어른들이라는 비난이 있지만, 난 오히려 그들의 눈에서 공포심을 느낀다. 젊음이 사라져 버린 무기력감, 너무나도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두려움, 자신의 삶을 바쳤지만 점점 멀어져 버린 가족들과의 단절이 주는 외로움. 보통 권력자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그 사회의 약자들이다.  

   

특히나 가부장적인 자존심만 남아버린 지난 시대의 남자들이 자신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거라곤 그들의 지난날이 주었던 영광의 기억뿐이다. 그것이 실제는 야만과 폭력에 기반을 둔 그릇된 안정이었다 할지라도, 그 기억은 현재 알 수 없는 한국에서 자신을 지켜줄 한 가닥 자존심일지 모른다. 그 시절 힘겨웠지만 세상은 최소한 그들이 노력을 기울이며 적응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더 이상 급변하는 세상에 도전할 힘도 가만히 머물러있을 여유도 그들에겐 남아있지 않다. 그들이 놓여있는 현실의 한국에서 태극기는 과거 자신들이 삶을 위로해주는 가짜약인 것이다.     


그것이 하필이면 추악하고 무지한 한 권력자에 대한 응원이었던 것이다. 그 권력자의 범죄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들에게 그것은 현재 세상에게서 받는 두려움에 비하면 사소한 것들에 불과하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당연히 여길 만큼 교육을 받을 기회도, 반성할 시간도 없이 젊음이 사라져 버린 그들에겐 이 불안한 시간을 견딜 경제력조차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에게 세상은 가짜 약을 자꾸만 삼켜야 하는 두려움이다.     


그들이 내뱉는 말들의 끔찍함 견디려면 그들이 느낄 끔찍함을 떠올려야 한다. 난 그들을 연민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난 떠나야 하는 시간을 깨달을 여유가 없었던 그들의 삶들이 슬프다.


Special Needs - Place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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