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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릭 Jun 02. 2017

'나'에 관한 1.

혹은, 기분전환을 위한 긴 주제.

여기서 '나'란 일반명사로 사용되는 단어일 수도 있고 개별적인 개인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둘은 엄밀하게 구분될 수 없는데, 사람들은 '나'란 단어를 사용할 때 의심할 필요가 없는 확실성을 가지고 사용하면서도 막상 자신이 생각하는 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그 확실성을 무엇에서 찾을 것인지 어려워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분명해 보이면서도 설명하기 힘든 단어도 드물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어떤 함수가 다시 그 함수의 변수가 되는 논리학의 오랜 난제를 설명하는 것과 유사하다. '나'란 존재는 나와 타인 모두에게 명확하게 지칭될 수 있는 대상이면서도 그 내부적 속성에 관해서는 비대칭적인 정보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나를 객관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시 타인이 나에 관해 지닌 정보에 근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점점 혼란에 빠트리게 만든다.       


이를테면 누구나 자신의 외모에 대해 나름대로의 평가를 내리고 있겠지만 그 평가의 근거를 말하라고 한다면 결국 타인들이 내리는 평가의 총합에 대해 나 자신이 어떤 반응을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과연 ‘나’란 존재의 외모에 대해서조차 나는 타인보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미리 결론을 내려두자면 이런 어려움에 빠지는 이유는 애초에 불분명한 것을 규정지으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도 없이 생각하고 사용하는 '나'는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서의 유기 생물체를 지칭하는 지칭 대명사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명확히 규정되기 힘들다. 단정 지어 말하자면 난 그것이 실체 없는 허깨비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전혀 문제 될 건 없다. 대체로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는 그 자체가 뭔가를 규정하고 있다기보다는 그것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나'란 존재의 어렴풋한 윤곽을 추적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명확한 목표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아마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면 이미 스스로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하는 계기 정도의 의미는 있을지 모르겠다. 뭔가 심란할 때 여기 담벼락에 글을 남기곤 했는데 이 주제에 관한 생각은 한 페이지로는 부족해 긴 호흡의 연작으로 이어볼 생각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자주 이 글을 쓰는 일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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