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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릭 Aug 07. 2016

유치한 사랑의 노래 (9)

진실을 받아들일 때


- 나도 쌍꺼풀 수술하면 어떨까?


여자의 물음에 뜻밖이라는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던 남자가 엄숙한 말투로 대답했다.  


- 네 얼굴에 관한 최고권위자의 입장에서 그건 절대 아니라는 견해를 강력히 전달하겠어.
- 좀 밋밋해 보인다고 하면 잘 어울릴 거라던데.


남자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여자가 중얼거리자 남자의 목소리가 한층 거세졌다.


- 누가? 누가 그런 미학적 사고가 결여된 용감한 발언을 한 거야? 음.... 누군지 알 거 같은데... 남 말하기 좋아하는 걔 아냐? 
- 말 안할래!


동그란 눈으로 여자가 시치미를 뗐지만 남자는 오히려 확신에 찬 표정이 되었다.


- 맞네, 걔네. 그게 정말 널 위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해? 난 걔가 널 질투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걘 틈만 나면 남들 얼굴 품평회잖아. 그런 이야기를 해도 네가 관심을 안보이니까, 아예 네 얼굴을 걸고넘어지는 거라고.
- 왜 그래, 질투라니... 착한 얘라고. 
- 착한거랑 뭔 상관이야. 갠 지나치게 외모에 관심이 많은데 비해, 그에 걸맞은 사고력이나 감각이 부족하단거지. 어떻게 이런 눈을 보면서 버젓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물론 의식적으로 그런다는 건 아냐. 하지만 그런 식으로 티 나지 않는 모욕을 무의식적인 자기 위안으로 삼는 부류가 있다니까. 자기 자신이 상대방을 욕보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 그래도 내 친군데, 지금 너무 까칠한 거 아냐?


생각보다 거친 남자의 반응에 여자가 눈을 흘겼다. 그런 여자의 표정에 아랑곳없이 남자는 할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 내 말이! 친구라면서 너무 친구에 대해 모르고 있으니까. 너처럼 쌍꺼풀도 없이 커다란 눈에 이처럼 완벽한 실루엣을 가지기가 어디 쉬운 줄 알아? 이건 인간의 유전자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이라고. 이런 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해야한다니까. 


말끝에 갑자기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몸을 굽혀오는 바람에 여자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남자는 잠깐 여자의 얼굴을 구석구석 살펴보더니 안경을 고쳐 쓰고 다시 말을 이었다.    


- 흠.... 아무래도 그러기엔 보존성이나 재현가능성이 부족하단 말이지.... 안타까운 일이야. 

낙담해하는 남자의 표정에 여자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 피..... 저 넉살하고는....
- 어~ 넉살이라니! 넌 오늘도 화장 안했잖아. 요즘 직장 다니면서 너처럼 화장 안하는 여자가 어딨냐? 그렇게 네가 화장을 귀찮다고 여길 수 있는 여유가 어디서 온 거라고 생각해?


오히려 정색을 하며 남자가 되묻자 여자가 다시 걸음을 옮기며 대답했다.


- 화장한 건데. 크림 바르고 파우더 한 건데
- 아니 그런 거 말고 색칠. 그림 그리는 거.


금방 자신의 곁에 다가선 남자의 물음에 여자가 별걸 다 묻는다는 듯이 대답했다. 


- 그냥 바쁘기도 하고.... 좀 귀찮기도....


여자의 대답에 남자가 맞장구를 치며 소리를 높였다.


- 바로 그거야. 누군 시간이 남아돌아 화장해? 너는 모르겠지만 네 무의식은 알고 있는 거야. 난 화장 따위 필요 없는 얼굴이라구! 이 자신감... 그렇게 낳아준 부모님께 넌 항상 감사해야 한다니까. 
- 또 저런다. 아저씨,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 그래요. 어쩔 땐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된다니까...


여자가 황당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며 눈치를 줬지만 남자의 목소리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 농담이라니! 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거뿐이야. 타고난 네 겸손함이 차마 그걸 인정하지 못하는 거 뿐이라고. 이제 진실을 받아들일 때가 됐어.
- 아이고... 됐네, 됐어..... 하여간 영악해가지고는.


여자가 민망한 얼굴로 손사래를 치자 남자가 여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입가엔 보일 듯 말 듯 웃음이 배어들고 있었다.


- 영악이라니... 그럼 넌 꼬리가 수백 개는 달린 여우냐? 사실 수술 같은 건 처음부터 생각도 없었잖아?


남자의 물음에 여자도 입가에도 배시시 웃음이 배어들었다. 


- 아, 밥은 뭐먹을까?
- 말 돌리지 마세요. 여우씨.
- 여우는 무슨 여우...


말을 얼버무리며 여자가 바삐 걸음을 옮겼지만 금방 곁에 붙어서 남자가 소리쳤다.


- 대답하세요, 여우씨! 눈 예쁘면 답니까?
- 아.. 왜 이래...
- 도대체 안 예쁜 곳이 어딥니까? 


여자가 도망치듯 달렸지만 남자의 말소리는 그녀의 귀에서 조금도 멀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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