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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릭 Aug 10. 2016

유치한 사랑의 노래 (11)

유신론자


- 그래서? 그게 이것과 무슨 상관이란 거야?


여자가 팔짱을 끼며 잔뜩 남자를 노려보았다. 남자는 충분히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이 차분하게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 그러니까, 인간은 어떤 사건을 이해하기위해서 그것의 원인을 추적하게 되어 있거든. 이게 사고의 기본적인 작동원리니까. 원인을 찾고 또 그것의 원인을 찾음으로써 근원을 향하게 되는 거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건 논리적으로 끝없는 해명을 요구하기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결코 사고의 원래 목적이었던 이해를 완벽히 충족시키지 못한단 말이야. 사고 스스로의 존재방식이 스스로의 목적에 위배된다는 거지.

때문에 우리에게는 어디선가 의심을 멈추고 그냥 받아들여야하는 지점이 생기게 마련이라고. 그런 지점들의 집합체가 신 같은 거야. 어떤 우주의 질서 같은 거. 사실은 그게 도덕적 신념이든 합리적 법칙이든 쾌락적 본능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어, 개인의 사고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기초만 제공한다면 말이야. 그런데 지금까지 난 도무지 그런 지점이 없었거든. 그냥 원하는 만큼 의심하고,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유용성의 관점이란 말이야. 물론 여기에는 아까 말했던 윤리적이거나 미적 관점까지 포함돼.

근데 너에 관해선 전혀 달라. 함께 있으면 그런 관점만으론 뭐라 해명하기 힘든 부분이 많거든. 이를테면 심지어 아주 신나게 다툴 때조차 난 함께 있기를 원한단 말이야. 너와 떨어지고 나면 왠지 세상의 모든 풍경에서 뭔가 빠져있는 것처럼, 마치 아주 아름다운 꽃이 사실은 조화였다는 것을 알아 버리고나서 느껴지는 그런 .... 이해돼? 그 메마른 감정들.... 참기 힘든 건조함....

그것들 때문에 나 스스로가 무기력해질 지경이란 말이야. 그 원인을 생각해 오다가 난 이런 결론에 도달한 거야. 바로 좀 전에 말했던 그 지점에 바로 네가 있는 게 아닐까.... 내 궁극의 원인. 그렇다면 넌 내게 일종의 신인 셈이지. 그래서 이젠 누가 나에게 유신론자라고 부른다 해도 인정할 수밖에 없어. 이건 정말 나에게 아주 낯선 생각들이란 말이야.

사실 요즘 이런 감정을 극복하려고 꽤 애쓴다고. 잠깐만 집중하지 않으면 이상한 기분에 빠져들고 말아. 그래서 가능하면 일에 몰두하려고 엄청 노력한단 말이야. 그래서 진동음을 느끼지 못했다는 거지. 


자신의 긴 설명에 확신을 더하겠다는 는 듯 남자가 마지막 문장에 힘을 실어 전했으나, 여자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쏘아붙였다.   


- 신 좋아하시네! 그래서 전화를 못 받았다는 거야!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냐구!
- 내가 잘못한건 맞지만 제발 내 진심만큼은 훼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남자가 호소어린 목소리에 간절한 눈빛까지 담는 모양을 지켜보던 여자는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남자는 여자의 웃음이 잦아들 때까지 애절한 모양을 멈추질 않았다. 한참을 웃고 난 후 여자는 그런 자신이 한심스럽다는 듯이 한숨을 내 쉬었다.


- 휴..... 이딴 걸 농담이라고 웃어주는 여자는 세상에 나 밖에 없을 거야.
- 그러니까 넌 내게 신이라는 거야. 나의 미와 관능의 여신이자 진리와 용기, 그리고 자비와 화해의 여신님. 


남자가 팔짱을 끼고 있던 여자의 팔을 풀어내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자 여자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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