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은 Aug 29. 2024

캠핑장비는 개미지옥이긴 합니다만

캠핑 에세이

본격적으로 캠핑을 시작한 지 6년째,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시간에 비해 캠핑을 다닌 횟수는 어느 누구 못지않게 많다.

거의 매주 캠핑을 다녔으니 일반적인 캠퍼들과 비교하자면 10년 이상은 캠핑을 한 것 같다.

게다가 내가 본격적으로 캠핑을 시작한 때가 코로나가 시작되는 시기라서 정말 캠핑의 열풍이 분 때였고,

덩달아 캠핑업계는 호황을 이룬 시기였다. 

텐트나 코펠, 버너 등 기본적인 장비들 수준은 거기서 거기였는데

캠핑의 열풍으로 장비들은 엄청나게 업그레이드되며 초보 캠퍼들을 유혹했다. 아니 유혹당했다?

색깔과 디자인, 크기, 소재 등이 다양해지면서 장비들이 눈부시게 발전되었다.



우리의 첫 텐트는 허리를 펼 수 없는 아담한 사이즈의 텐트여서 허리 좀 펴고 싶다고 노래를 했는데

드디어 휴양림 데크에도 올라가는 서 있을 수 있는 텐트가 등장하였고

이후로도 수많은 텐트들이 캠퍼들을 유혹했다.

코펠도 스텐 제품들이 주를 이루다가 색깔을 입힌 코펠들이 등장.

버너의 종류도 날이 갈수록 눈에 띄는 제품들이 많아졌다. 

기본적인 필수 용품들에서 벗어나 없어도 되는 장비들까지 속속 등장했다.

어두움을 밝혀주는 용도에서 인테리어적인 측면을 강조한 예쁘고 고급진 랜턴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일명 아이스박스라 불리는 쿨러들도 '이게 쿨러라고?'의문이 들 정도로 화려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캠핑샵들은 날마다 쏟아지는 신제품을 진열하느라 정신이 없고

여기저기서 생겨나는 캠핑업체들이 경쟁하듯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냈다.

한때는 우드와 면텐트의 열풍 속에 누구나 백곰 한 마리씩(노르디스크) 들이고 싶어 안달이 났다.

샤랄라 분위기인 면텐트와 우드 제품들로 세팅을 한 피드들이 인스타를 도배했다.

텐트, 버너, 코펠, 침낭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은 무너지고

마치 집을 옮겨 놓은 듯한 아름다운 세팅에 캠퍼들은 날마다 지갑을 열었다.

사고 나면 또 필요한 게 생기고, 남들을 보면 또 살 게 보였다.

그러다 캠핑샵에 가면... 한 가지 사러 갔다가 10가지 이상을 사는 게 다반사다.




테이블도 무수히 발전을 거듭하다가 요즘엔 IGT테이블 열풍이다.

시스템키친처럼 버너와 바스켓이 맞춘 듯이 들어가고, 

높낮이 조절까지 되어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세팅이 가능해졌다. 

지나치게 비싼 가격 때문에 그림의 떡이던 하이엔드급 IGT테이블은 

10만 원도 안 하는 저렴한 가격대의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봉인된 지갑이 슬그머니 열리기 시작했다. 

더 가볍게, 더 다양한 디자인으로, 더 간편한 제품이 나왔으니 구입을 안 할 수가 없다. 

꿩 대신 닭이 아니라 닭이 더 맛있고 좋아서 선택하게 된 경우들이다. 


캠퍼들 중에는 텐트 색깔이나 분위기에 맞춰 색깔 세팅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블랙 세팅, 우드 세팅, 카기나 탄색 세팅 등 정말 각양각색의 제품들이 캠핑 시장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모든 취미가 그렇듯 캠핑도 하면 할수록 고수라는 말을 듣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 고수다우려면 용품들 자체가 남달라야 한다.

소재부터, 세련된 디자인까지 고수들의 용품은 절제된 부잣집의 느낌을 전해준다. 

'나는 부자가 아니니 나와는 상관없는 용품들이네, ' 

이런 생각의 이면에는 '나도 사고 싶다. 하나만이라도 바꿔 볼까?'라는 마음이 꼬물거린다. 

이런저런 합리화를 내세우며 어느새 고수들의 용품 중 하나가 장바구니행이다. 

아참! 요즘은 캠핑 용품에 차도 들어가는 것 같다.

캠핑에 최적화된 지프나 디스커버리, 디펜더 등 고급 외제차들은 캠퍼들의 가슴 아픈 희망사항이다. 

누가 봐도 '난 캠퍼다!' 얘기해 주는 이런 4륜구동의 멋진 차들이 캠핑장에 진입하는 순간 완전 시선 강탈이다. 

이런 차들과 함께 캠핑을 하는 그 멋스러움이란...

차 위에 루프탑을 설치하고 그 위에 앉아 노을 진 석양을 바라보는 모습이란...

캠핑은 누가 더 자연을 멋지게 즐기느냐가 아닐까?

모기향 거치대 역시 예술 작품을 방불케 하는 제품들이 나와 우리의 지갑을 열게 했고

향을 즐기는 캠퍼들이 즐겨 찾는 인센스도 캠핑의 멋을 더해주는 인테리어 제품이다.

노지 차박 캠퍼들의 필수품인 고가의 파워뱅크, 다양한 화로대, 오븐, 가습기, 난로, 거기다 냉장고와 에어컨까지!

정말 사도사도 끝이 없는 캠핑용품들이 얼굴을 내민다. 


요즘은 패킹이 간단하면서도 디자인적으로도 뛰어난 제품이 인기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이런 제품은 고가지만 일단 눈으로 봤다면 땡빚을 져서라도 사고야 만다. 

기존 제품은 어떡하냐고? 당근이 있으니 문제없다. 


또 우리 젊은 캠퍼들은 브랜드에 목숨을 건다. 고가 브랜드에서 만든 제품이라면 일단 인기가 있다.

비싼 건 문제가 되지 않기에 인지도와 선호도에 성공한 브랜드들은 

디자인과 편리성에 중점을 둬서 기가 막힌 제품들을 선보이고 있고, 

대량 생산을 하지 않는다는 마케팅 전략에 따라 나오는 즉시 팔려버려 쉽게 구매하기조차 힘들다. 

안 그래도 고가인데 웃돈을 주고서라도 구입하겠다는 캠퍼들이 줄을 선다.

좋은 제품은 한정판인 경우가 많으니 촉각을 곤두세우고 따끈따끈한 정보를 잘 캐치해야 한다.

이렇게 정보가 중요한 캠핑 시장이라 오픈런은 아니지만 클릭런을 해야 구입에 성공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구하기 힘든 제품을 구매한 캠퍼들은 사진 잘 찍어 인스타 피드에 자랑스럽게 올리고, 

그러면 많은 인친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게 된다. 

이런 인스타의 특성을 이용하여 업체에서는  인플루언서들에게 물건을 제공해 주고

제품 소개 피드를 올려달라고 줄을 선다.

잘 찍은 피드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그 물건을 구매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침낭과 매트, 야전침대 종류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샵에 갈 때마다 등장한 신제품들이 내 지갑을 강탈해 간다.

아주 날강도 같은 놈들이다. 

그래서 캠핑샵을 개미지옥이라고들 한다.

자주 가면 안 되지만 자꾸 가는 이유는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그 호기심이 구매욕을 일으키고 어느새 계산은 끝나버린다. 


하지만 개미지옥에 빠지는 건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내가 가진 취미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그로 인한 행복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을 돈 주고 살 수는 없지만 돈 주고 산 용품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면 그건 나쁜 지출이 아니다.

자꾸 움직이며 활기를 찾고 자연과 마주하는 행복을 느끼게 도와주는 즐거운 개미지옥이 있어 고마울 따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