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여행 DAY 4
어쩌죠.
낙산사에 찍은, 너무도 멋진 사진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멋진 녀석들을 고르느라 참 애먹었습니다.
강원도 여행 4일 차
양양/강릉 일정_ 1.
- 숙소 체크 아웃
- 낙산사 (택시 이용)
- 정인회 식당 (회덮밥과 물회)
- 낙산 버스터미널 (a.k.a 편의점)
- 강릉 시외버스터미널
- 엘커피
드디어 낙산사에 가는 날이다. 친구와 나는 아침에 일찍 준비를 마치고 숙소에서 나왔다. 계획대로라면 버스를 타려 했지만, 위의 사진과 마찬가지로 하루의 일정이 빠듯하여 택시를 타게 됐다. 여행 중에 택시를 타다니. 해외 여행지에서 급할 때가 아니면 타지 않았던 택시를 국내 여행에서 버젓이 타고 말았다. 시간보다 돈이 궁하다는 20대 초반이 이렇게 지나간 걸까. 이제는 5천 원 더 쓰더라도 4인실보단 2인실, 버스보단 택시가 좋은 나이가 됐나 보다.
에어컨 바람 시원한 택시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택시가 신나게 달려렸다. 20분쯤 흘렀을까 쨍한 햇빛 아래 아스팔트 주차장이 보였다. 나와 친구는 각자의 캐리어와 백팩을 갖고 낙산사 입구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
"우와. 다음에는 여기 앞에 숙소 잡고 싶다."
양양에서는 낙산사만 봐도 될 줄 알았는데, 최소 이틀은 보냈어야 했다.
캐리어를 질질 끌고-왜 속초에서 그렇게 책을 많이 샀는지- 올라가니 매표소가 보였다. 정신없이 3천 원을 내고 입장권을 구매한 나는 그곳에 계신 보살님께 부탁하여 짐을 맡겼다. 어깨에 날개가 돋친 듯 가벼웠다. 낙산사 개장 시간은 6시. 우리가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8시 30분이니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요한 시간을 걷다 보니 손이 저절로 뒷짐을 졌다. 푸릇푸릇한 잔디와 소나무가 얽혀 수풀을 이뤘다. 그 그늘 아래를 걸으니 눈이 호화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은 잘 닦인 흙길을 밟고 있지만 그 예전에는 낙산사를 찾기 위해 얼마나 험준한 산행을 감행해야 했을까, 생각하니 이 모든 게 감사했다. 그리고 낙산사에서 *하룻밤만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리 많은 사찰을 다녔는데 이런 생각이 든 적은 처음이었다. 찾아보니 낙산사 템플스테이가 있단다. 다음에는 꼭 해봐야겠다.
널널이 주변을 둘러보곤 의상 기념관으로 들어갔다. 더위를 피해 실내로 찾아든 것은 우리만이 아닌지 이미 자리를 잡은 참새 한 마리가 보였다.
**낙산사는 관음보살이 항상 머무는 곳을 이르는 '보타낙가산'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으며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 설명에 의하면 그는 '한국 불교를 크게 빛낸 신라의 대표적 고승이며 이 땅에 화엄사상의 토대를 굳건히 세운 화엄종의 개조'라고 한다. 그의 일생을 표현한 작품을 죽 둘러보며 친구와 나는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낙산사 홈페이지 참고.
어디부터 가봐야 할까. 짧게 고민했지만 그냥 사람들이 향하는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만일 내가 강원도 양양 사람이었다면 매일 왔을 거야. 확신해.'
친구도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의상대에 올라 바다를 마음껏 구경했다.
"왜 인천 바다는 저런 색깔이 안 나는 거야."
동해를 구경하고 있을 때면 저절로 안타까운 소리가 나왔다. 바닷속이 저리도 푸르고 투명하게 비치는 것은 봐도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난간에 기대 열심히 구경하고 있는데 저 멀리 몰려오는 사람들을 보니 자리를 이동할 때가 된 모양이다.
의상대를 뒤로하며 걷는 순간에도 흠칫흠칫 스쳐 지나간 풍경을 되새기느라 뒤돌아봤다. 말도 안 되게 머진 낙산사가 신물이 날 정도로 뜯어보고 싶었다. 이곳은 몇 번을 봐야지 익숙해질까. 스님께 어쭈어보고 싶었다. 당신들은 이 절경이 마치 내가 바라보는 도시의 빌딩 숲처럼 익숙한 일상이 되었냐고.
홍련암은 ***관음굴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 유래와 관련한 전설이 있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입산을 하는 중 돌다리 위에서 파란 새를 보고 쫓아갔다. 새는 석굴 속으로 들어가 자취를 감췄고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의상이 석굴 앞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에서 기도를 드렸더니 바닷속에서 홍련(붉은 연꽃)이 솟아오르고 그곳에서 관음보살이 나타났다고 한다. 이에 그는 홍련암이라는 이름의 암자를 석굴 위에 지었다고 한다.
*** 네이버 두산백과 참고
더 이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을 게 확실하기에 이곳은 저렇게 마음껏 푸른 걸까. 암벽 사이에 핀 이끼가 꽃처럼 피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건하게 아침을 여는 사람들을 멀찍이서 지켜보곤 홍련암을 떠났다. 돌아가는 길에 의상대가 키 큰 소나무들 사이로 빼꼼 보인다. 시간이 그새 흘렀다고 의상대를 둘러싼 사람들이 삼삼오오 사진을 찍고 있었다. 걷다 보니 다시 표지판 앞이다. 이번에는 왼쪽으로 꺾었다.
양 옆으로 길이 난 커다란 연못이 보였다. 내가 보기엔 숨 쉬기도 힘들어 보였는데 연못 안에는 잉어와 거북이가 살고 있었다. 점점이 퍼져있는 연잎을 바라보며 O양과 나는 일부러 길을 돌아 보타전으로 향했다.
낙산사 보타락이라고 한다. '락'은 읽겠는데 '보타'를 못 읽는 거 보니 정말 한문 공부를 다시 시작할 때가 온 것 같다.
커다란 그늘을 베푸는 보타락 아래에는 더위로 지친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옆에 보타락 위로 통하는 계단이 보였다. 호기심이 들끓었지만 안타깝고 당연하게도 올라가 볼 수는 없었다.
잠시 땀을 식히곤 보타전으로 향하기 위해 저리 높은 돌계단 앞에 섰다. 계단 때문에 사찰이 안 보이다니. 그 높고 높은 곳에 위치했던 불국사에서도 경험해보지 않은 생경한 기분에 조심스럽게 발을 뗐다.
어렸을 적 부모님 따라 주말이면 산에 갔다-어딘가 이 이야기를 썼던 것 같은데 그냥 다시 써 본다-.
산에 가면 절이 있어.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이 생각이 마치 상식처럼 굳어버렸다. 산은 싫은데 절은 좋아서, 힘들게 숲길을 걷는 것은 싫은데 사찰 안에서 절을 하면 부모님이 손에 쥐어주는 천 원짜리가 좋아서 싫어하지만* 산을 올랐다. 그때의 기억이 좋아서 나는 종교가 없지만 꼭 사찰에 들릴 때면 몇천 원을 모금함에 놓곤 한다.
* 진심이다. 나는 하이킹이 운동 중에 가장 싫다. 외국인 친구들은 꼭 친해지면 산에 가자고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편이다. 유년 시절 절은 좋아하지만 주말이면 산에 끌려가 억지로 걸었던 기억 때문에 하이킹은 질색이다. 아마 한국의 사찰들이 산에 없었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산에 오를 일은 없었을 거다. (차멀미 때문에 차만 타면 토했던 초등학생을 부모님은 왜 그리 끌고 다니셨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가파른 길을 오르니 판판한 공간 한가운데 해수관음상이 보였다. 경사가 심해 험준한 산 한가운데에 이렇게 넓은 평지가 있다니. 고르게 다진 땅 중심에는 해수관음상이 있었고 자연스러운 능선이 그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막힘 하나 없는 하늘이었다. 나무 그늘에 숨어 이 풍경을 차근히 둘러보니 쨍쨍한 날씨가 천운이었다.
시끌벅적, 사진 찍게 모이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초등학생들이 툴툴거리며 사라졌다.
저 멀리에는 노부부가 있었다.
나는 넘지 못하는 담 너머에서 주름 진 손에 긴 호수를 쥔 사람도 보였다.
카메라 필름이 '34'에서 '36'으로 넘어갔다. 자동으로 릴을 되감는 필름 카메라 소리에 놀라 황급히 낙산사를 내려왔다. 시간에 쫓기는 지금이 아쉬울 뿐이었다. 캐리어를 맡아준 보살님께 감사의 인사를 표하게 근처 식당으로 이동했다.
정인회 식당 (강원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32)
> 식당이 '장소'에 검색되지 않은 적은 처음이지만 이렇게라도 적어본다.
강원도 여행 중에 맛있었던 음식 세 가지를 꼽아보라면 '강릉 꼬막/양양 회덮밥/속초 회냉면'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다. 속초에서 맛보았던 물회는 내 입맛에는 간간했던지라 이번에는 물회를 시켰는데 아주 성공적이었다. 젊은 친구 둘이 찾아온 것이 신기하셨는지 이모님께서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고 물으셨다. 인터넷 검색해서 왔다고 하니, 요즘 그런 친구들이 늘었다면 인심 좋은 웃음을 터뜨리셨다.
정말 덕분에 맛있게 먹고 간다는 인사말을 드리고 이제는 터미널로 향했다.
검색해보니 GS25 안에 터미널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보기 전까지는 믿기지 않았다. 일부러 색깔까지 맞춘 것인지 민트색이 상큼한 낙산 터미널이 횡단보도 건너편에 보였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편의점에 들어왔는데 시외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가게 한쪽에 차지하고 앉았는데 편의점 음식을 안 사 먹으니 뭔가 마음이 콕콕 찔렸다. 덥기도 더우니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고 우리는 시간 맞춰 도착한 버스에 올랐다.
고개를 좌우로 열심히 떨구며 단잠에 빠진 지 한 시간이 조금 넘게 지나자 버스가 속도를 줄였다. 에어컨 바람 풍부했던 버스에서 하차하니, 아까는 축복 같았던 태양이 얄밉도록 날씨가 뜨거웠다. 급하게 터미널을 빠져나와 오죽헌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더위에 지쳐있기에 오늘의 계획이 너무도 알찼다.
한참 선거 유세 때문에 열띤 거리를 지나자 유채꽃이 흐드러진 노란 들판이 보였다. 시간만 된다면 그 앞에서 마음껏 놀 수 있을 텐데. 캐리어를 끄는 어깨는 너무 무거웠고 몇 시간 동안 걸으니 목도 말랐다. 오죽헌의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판을 따라 무작정 걸어 들어갔다.
오후 3시쯤 되었을까. 정문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급했지만 6시 30분에 문을 닫는 오죽헌을 생각하니 발이 돌처럼 굳어 더 이상 걸을 생각을 안 했다.
친구의 제안을 따라 당장 코앞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섰다. 어차피 우리는 염치없게도 이 터질 듯한 백팩과 캐리어를 잠시 맡길 수 있을까요, 묻기 위해 어디든 가야 했다. 강원도에는 마음씨 좋은 분들만 사는지 우리는 감사하게도 짐을 가게 구석에 잠시 놓을 수 있었다. 아침부터 속초, 양양과 강릉을 오갔던 여정이 어지간히 힘들었던 모양인지 카페 사진을 이것을 제외하곤 찍지도 않았다.
"여기 진짜 좋다."
뻥 뚫린 테라스에서 잠깐의 오후를 만끽하며 그렇게 좋아했는데, 사진이 없어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 안타깝다.
뭔가, 매일 쓰고 공부하고 책 읽고 있는데 브런치에 글을 자주 못 올리고 있어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다음에는 더 빨리 돌아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