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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Jul 21. 2018

강릉 이틀. 영진 해변

강원도 여행 DAY 5




강원도 여행 5일 차

강릉 2일 차 일정.

   - 경포 해변 (아침 바다)

   - 헤리티지 펜션

   - 주문진 영진 해변 (<도깨비> 촬영지)

   - 위니 버거(점심)

   - 카르페디엠 커피(카페)

   - 강릉 터미널






   이제 반나절이면 강원도를 떠나는데, 아쉬워 죽겠다. 친구보다 내가 먼저 일어날 것은 예견한 일이었고, 난 시간이 남으면 경포 해변을 갔다 와야겠다던 어제의 다짐을 지킬 수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많지 않아서 해변 가는 길을 재촉했다. 주말인데도 사람이 적었던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아침에는 바닷가로 산책을 나온 주민을 제외하고 관광객은 나뿐이었다.





   저 텐트는 누가 쳐놨을까. 누군가 하룻밤을 머물렀다고 하기엔 사람의 흔적은 바다에 씻겨나갔는지 향기조차 남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랑자의 안식처라고 하기엔 그 주인의 부재가 너무도 길어 보였다.





   사람도 소음도 누구도 무엇도 없으니 온전히 바다에 집중하게 되었다. 발이 폭폭 꺼지는 백사장을 거닐며 제발 한 톨의 모래도 내 신발 안에 안 들어가길 바라며 사뿐히 걸었다. 이어폰은 빼고 철썩, 어젯밤보단 조금 상냥하게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귀 기울였다.





   "오호츠크 해 돌고래 떼죽음." 


예전에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박명수 씨가 했던 N행시의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문구였다. 밤 사이 몰아치는 파도에 너무 멀리 나와버린 물고기가 미쳐 돌아가지 못한 채 떼 지어 있었다. 손수 물을 떠다 공급하거나 바다로 되돌려주기엔 볕이 너무 따갑다.



*무한도전 없는 토요일 6시 20분은 아직도 어색하다.





   바다를 안 보고 산 것도 아닌데 이번 강원도 바다는 왜 이리 예뻐 보일까. 아마 이번 여행이 나에게 의미가 남다른가 보다. 어떻게 남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보람차게 떠난 여행이라서, 서점 투어를 하며 마음 좋은 사람들을 이리도 많이 만난 적은 처음이라, 혹은 첫 독립출판을 하느라 수고했다는 의미에서? 어쩌면 그 모두에서.

 




   신발 벗고 뛰놀고 싶었지만 아직 때가 이르다. 시간도 없고. 어린애처럼 바다 거품을 시원하게 즐기기엔 어딘가 어쭙잖게 나이를 먹은 모양이다.





   나름 아침을 일찍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나 나보다 앞서는 사람은 있기 마련. 바다 한가운데 서있는 배의 주인의 아침은 몇 시부터 시작되었는지 무척 궁금했다. 



여기저기 떠도는 상념에서 벌떡 깨어나 시계를 보니 벌써 돌아갈 시간이다. 인천 거주민이지만 바다는커녕 오히려 빌딩에 눈이 익숙한 나를 위해 바다를 녹화했다. 숨 죽이고 화면에 비친 푸른 물빛을 쫓으니, 어느새 나도 바다를 느끼고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뙤앙볕이 몰아친다. 아침에 빨고 잠시 테라스에 걸어두었던 검은색 바지가 바싹 말라있었다. 


이 날씨에 바다 앞에서 사진 찍기?


바다로 뛰어드는 것도 아니고? 현기증 나는 햇빛의 반짝임에 살짝 현기증이 나는 듯싶었지만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에서 인증샷 하나는 남겨야지. 









   주말 한가운데 떠난 강릉 여행인지라, 여행객들이 많을 것을 대비하여 우리는 버스 대신 택시에 올라탔다. 금액은 꽤 나왔던 것 같지만 에어컨 바람에 훅훅 달려가는 차창의 풍경을 바라보니 내 선택에 대한 뿌듯함이 몰려들었다.


"감사합니다."


   택시 기사님께 감사함을 표하곤 바로 오른쪽을 바라봤다.





바다다!




  지겹지도 않게 광활하게 펼쳐진 바다가 시원해 보였다. 저 에메랄드 빛 색깔마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온 마음이 청량하게 물들었다.



오른쪽의 방파제 삼발이를 '테트라포드'라고 칭한다. 어감이 어딘가 재밌다.



   얕은 깊이의 방파제는 세네 개 정도가 죽 줄지어있었는데, 하필이면 <도깨비>를 찍은 방파제에서 낚시 중인 사람들 때문에 친구와 나는 일단 그 옆 방파제에서 놀고 있었다. 사실 방파제에서 '논다'는 말은 조금 위험할 수 있다. 


방파제; 파도를 막기 위하여 항만에 쌓은 둑**.


   말 그대로 방파제는 항만(내륙)을 보호하고 모래의 유실을 막기 위해 내륙 외각에 둑을 쌓아 거친 파도를 막아낸다***. 방파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파도가 세단 뜻이기 때문에 거기서 노는 것은 조금 위험한 거구나, 라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참고

*** 네이버 사전 참고





   멀리서 지켜보니 관광객들의 요청에 낚시꾼들이 자리를 피해 줬다. 친구와 나는 꼼지락거리며 짐을 싸곤 옆 방파제로 옮겨갔다. 나도 옆에 도깨비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겨울도 아니고 빨간 목도리도 없고 초 꽂힌 케이크도 없으니 그저 홀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뒤로 줄지어 선 사람들을 바라보니 화관을 쓴 사람이나, 하얀색 원피스를 곱게 입고 온 분들도 있었다. 드라마의 영향력이 참 어마어마하구나. 잘 키운 예술작 하나, 다섯 경제 사업 안 부럽다. 영국에서 <해리포터> 시리즈 투어에 눈이 돌아가 날뛰는 나를 스스로 관찰하며 들었던 생각이 여기 강릉*에서도 일맥상통한다.




*강릉엔 왔으면서 정작 <도깨비> 촬영지로 유명한 동인천 책거리는 아직 가보지도 않았다.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가.







   사진을 찍고 나서는 모래사장 위에 쌓인 테트라포드에 걸터앉아 바라를 바라봤다. 친구는 저 멀리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나는 차례를 기다리며 열띤 기운을 뽐내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이렇게 평화롭다니. 잔잔한 해수면만 바라봐도 마음이 평화로웠다. 


빠듯한 일상이 기다리는 집으로 점점 더 돌아가기 싫었다.







   그래도 점심은 먹어야 했기에, 우리는 걸어 걸어 해변가로 향했다.


"물회 먹고 싶다."

"해변 앞이니까 횟집 있을 거야." 


   예상을 뒤엎듯 바닷가를 따라 늘어선 상점 중엔 물회를 파는 집이 없었다. 







'에이, 여기까지 와서 무슨 햄버거야.'

   

맛집 리스트를 찾아보다가 속으로 삼켰던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점심으론 햄버거 먹을까?***"





*** 무척 맛있었다.






   바다 놀러 와서 회 말고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는 것만큼이나 꺼려졌던 것이, 여행 와서 개인 카페 말고 프랜차이즈 커피숍 방문이었다. 아마도 '나는 뻔한 거 말고 이런 것도 해봤어'라는 희소성을 자랑하고 싶어서인 듯하다.


   외관은 아무리 봐도 프랜차이즈 느낌인데 3층까지 창이 뻥 뚫린 것은 마음에 들었다. 친구의 힘찬 발걸음에도 어딘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지만 근처에 갈 곳도 없으니 일단 발을 내디뎠다. 친구의 음료까지 주문을 마친 나는 2층에 올라섰다. 


   "와우, 여기 좋네."

 

   음료가 쏟아질까 조심히 3층을 올랐다.








   "와아아, 친구야. 여기네."


   하루 종일 이곳에만 눌러앉고 싶다는 얄미운 생각이 저절로 드는 풍경이었다. 자리 잡고 오늘을 위해 아껴둔 책 『완벽한 날들』을 무릎 위에 올려두니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졸릴 때는 조금 졸고, 책을 읽다 눈이 피로하면 시선을 돌려 해변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안 되겠다. 나가자."





   이제 떠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아직 강원도 여행 와서 물에 발을 담가보지 못했다.





   햇빛에 등은 따가운데 발목까지 찰랑거리는 바닷물에 심장까지 차가워졌다.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는 부드러운 감촉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집 가서 포스터로 하나 뽑아야겠다.'


마지막 남은 필름 한 컷을 소비하며 모래 붙은 발바닥을 털어냈다.












   대단한 물놀이를 즐긴 것도 아닌데 버스틀 타고 강릉 터미널로 가는 내내 창에 머리를 기댔다.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는 이 평화로운 논밭과 시골 향기가 도시로 돌아가는 나에게는 멀어지는 천국과 같았다.





    언제나 그렇듯 여행 마지막 날의 사진은 쓸만한 게 없다. 이젠 이 여정이 끝났다는 생각에 기록도 사진 촬영도 무의미하게 느껴지기에. 


   하지만 어떻게 5일간의 여행에서 남은 게 없을까. 내가 만든 캘린더에 들어간 바다 사진이라든가, 세상에 한 장 밖에 존재하지 않는 폴라로이드 필름들, 그리고 속초에서 만난 인연이 남아 지금까지 추억을 연장한다. 


그래도 다음에는 마지막까지 여행에 충실해봐야겠다, 끝에서 뚝 끊겨버린 폴더의 추억을 바라보며 다짐해본다.








당분간 국내 여행 이야기는 쓰지 못할 듯합니다. 열심히 구상한 소설:-)과 미국 여행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관심이 없으시더라도 한 번쯤 제 브런치에 들려 감상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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