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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Feb 06. 2019

서울 익선동_ 1. 동백 양과점과 프루스트














익선동 가는 길




작년 5월에도 익선동은 핫했다. 한창 떠오르는 동네로 당시 '익선동'과 '을지로'가 있었는데 친구와 나는 익선동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은 오후 6시였지만 나는 평소 습관대로 대낮에 집을 떠났다. 


인천에서는 어느 곳이든 멀다.  위치로 가깝다고 생각하는 일산까지도 버스로 1시간, 홍대까지는 대략 40분. 특히 약속이 잠실이나 강남에 있다면 왕복 4시간을 잡고 집을 나서야 했다. 그런 입장에서 익선동 가는 길은 이제 어렵지 않았다. 







청계천 인근에서 내려 도로를 걸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기분 나쁠 정도는 아니라서 오히려 산뜻할 정도였다. 숨이 턱턱 막혔지만 가로스가 드리운 그늘이 기분 좋아 사진기를 주머니에서 계속 꺼내 들었다. (겨울에 바라보는 여름의 추억은 그저 싱그럽다.)






익선동 풍경





익선동을 찾기가 은근히 어렵다고 들었지만 많이 헤매지 않고 곧장 도착했다. 확실히 익선동 입구에서는 한옥 거리나 나올 거라 예상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전봇대와 조금 낡은 간판, 담배 피우는 아저씨들이 점심을 배불리 먹고 양복을 들추며 걷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짧은 골목만 통과하자 익선동이 나왔다. 


"오전 11시 맞아?"


사람이 무척 많았다. 좁은 골목에 즐비한 카페와 음식점들. 그곳을 수없이 누비며 어깨를 부딪쳐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예상가는 것 하나가 있었다. "이곳 물가 비싸겠다."였다. 가끔 이태원에서 술을 마시실 때나 강남에서 저녁을 먹을 때면 찾아오는 불안감이었다. 같은 서울에서도 물가 차이가 다른 나라처럼 벌어지는 순간, 나는 최대한 머리를 굴려 싼 곳을 찾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목적이 있었기에 일단 걸었다. 







친구는 저녁에 올 텐데, 그렇게 생각하자 거리 구경은 지금 아니면 못하겠다 싶었다. 두 무리가 골목에서 마주한다면 한쪽은 기다려야 할 정도로 좁은 이곳을 밤에 활보할 자신이 추호도 없었다. 






그렇게 둘러본 익선동은 북촌 한옥마을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실제 거주자가 존재하며 게스트하우스로 많이 이용되는 그곳 한옥과 달리 이곳은 철저하게 상권 목적으로 발달된 느낌이 컸다. 가끔 보이는 포토존이나 가게들의 세련된 인테리어가 도저히 손님들 발길을 떼지 못하도록 유혹했다. 


골목골목마다 느낌도 달랐다. 이곳은 예전 한옥을 살려 리모델링으로 바꾼 느낌이라면, 저쪽은 양식의 특징을 살려 독특하고 깔끔하게 내부를 채워뒀다. 간혹 가다 레트로를 겨냥한 뉴트로 만화가게와 편집숍들도 보였다. 나보다 앞서 걷던 사람들은 골목골목에 붙잡혀 손쉽게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1. 동백 양과점 







구경을 마친 나는 발길을 <동백 양과점>으로 돌렸다. 사실 오늘의 목적지는 이곳이다. 







익선동의 <동백 양과점>은 마치 1930년대의 건축물 외관을 하고 있었다. 그 특징을 꼽아보라면 화장실이 무척 좁았고 인테리어 소품으로 예스러운 문양을 품은 테이블들과 경첩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분위기는 어두운 것이 펍 같으면서도 천장 위로 높게 뚫린 유리 안으로 햇빛이 들이쳐서 따뜻했다. 


군산이 인기가 많은 것처럼 <동백 양과점>도 인기가 많았다. 특정 시대를 구현해 내고자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직원 분들은 서스팬더-등에서 교차하여 어깨로 이어져서 바지에 고정하는 아이템-을 유니폼처럼 입고 있었다. 그 시대가 궁금해서 관련 책을 찾아보고 있던 나에게는 무척 유용한 시각자료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 시대에 이런 카페에 드나들 형편의 사람들과 나를 동일시하면 피곤해지기 때문에, 너무 멀리 생각하지 않고자 노력했다.)







메뉴는 듣던 대로 음료나 디저트는 가격이 나갔다.



익선 1937  (7.5)
- 구운 견과류의 진한 고소함과 캐러멜의 단맛이 조화로운 커피

동백아가씨 (8.0)
    - 베리 계열의 단맛과 화사한 꽃향이 어우러진 커피

수플레 팬 케이크
- 딸기 (23.0)








디저트는 워낙 흥미가 없어서 음료 한 잔을 시켰다.


"내 8천 원."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첫 만에 반 잔 정도 비워줘야 제맛이라 여기며 드링킹하던 내 손을 주저하게 만드는 가격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돌연 정신 차리고 보니 밖에 웨이팅이 길게 늘어졌다. 카페에 들어온 지 2시간도 안 되었을 때였다. 순간 고민했다. 나도 오래 앉아 있을 만큼의 값을 치렀다는 이기적인 생각과, 뙤약볕에 서서 이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피 맛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2. 라렌느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가게를 나서고 나니, 이제는 내가 찾아야 할 카페의 기준이 섰다. 적당히 복잡하진 않지만 혼자만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 그런 곳을 찾고자 익선동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카페에는 평일 낮에도 사람들로 빼곡했고 도무지 발을 내딛지 못할 정도로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곳들도 많았다(소란스러운 것은 절대 문제가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선호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던 중 홍차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 하나를 찾아냈다. 이름은 <라렌느>였다.









이곳은 유독 전통 한옥의 분위기를 살린 카페가 많은 골목에 위치해있었다. 실내는 시원한 화이트 톤으로 꾸며져 있었고 딱 봐도 '홍차 마시는 곳'이란 느낌을 풍겼다(그 느낌이 뭐냐고 설명을 하라면 무척 힘들어지겠지만). 입구 오른쪽에서 주문을 마치고 나는 맞은편에 앉았다. 깊숙한 곳에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이 있었고, 내부 곳곳에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마치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구조였다. 모든 손님의 조망권을 위해 설계되었다기보단,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준의 벽-장애물-을 곳곳에서 마주쳤다.








"대표 메뉴가 무엇일까."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사람들이 자주 찾는 것으론- "애프터눈 티세트 (25.0)"와 "웨딩 임페리얼 (8.0)"이 있었다. 커피는 대체로 4천 원에서 6천 원. 티 종류는 주로 8천 원 정도였다. 애프터눈 티세트를 무척이나 도전하고 싶었지만 2인 이상부터 가능하다고 하니 나는 홍차를 주문했다. (조심히-어떤 카페에서 어쭈어봤다가 눈초리를 받은 적이 있다- 우유도 주시냐고 물어봤더니 따로 말씀을 준 사람에게는 주신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우유는 물론 각설탕도 받았다. 나는 우유와 각설탕을 멀찍이 밀어 두고 먼저 홍차를 한 잔 따랐다. 이제부터는 주관적으로 홍차를 즐길 시간이다. 사실 어디 가서 - 커피에 관심 많은 사람들이 커피 수업을 듣듯- 홍차를 먹는 방법을 따로 배운 것은 아니다. 다만 중학생 때부터 다양한 차를 온라인 주문해서 마시다 보니 나만의 방법이 생겼다. 


나는 첫 잔은 홍차만 마신다. 아직 찻잎이 많이 우러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게 깔끔해서 입맛에 맞았다. 찻잎의 떫은맛이 강해지는 두 번째 잔에는 설탕을 넣었다. 고슬고슬한 설탕이 아직 뜨거운 물에 녹으면서 고진감래의 진수를 보여준다. 웃긴 사실 하나는 홍차를 두 잔 비우면 배가 부르다. 그럴 때면 휴대폰으로 장난도 치고 책도 읽다가 입이 심심해지는 순간 마지막 잔을 티컵에 따른다. 


식고 떫은 차에는 설탕과 우유를 시원하게 부었다. 따뜻한 홍차만큼 매력적인 것이 시원한 밀크티니까. 그렇게 세 잔을 털어 넣으면 홍차 한 티폿이 끝이 난다. 주로 찻물이 모자라면 모자랐지 남지는 않았다. 


하루의 네 시간은 훌쩍 익선동에서 보냈는데 아직 하루가 끝이 나지 않았다. 친구와는 바로 저녁을 먹기 위해 <경양식 1920>으로 자리를 이동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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