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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Dec 18. 2019

눈으로 샤프란을 씹는 듯했다

프랑크푸르트 역






여행 이틀 차. 프랑크푸르트에서 드레스덴으로 넘어간다.     



드레스덴? 


드레스덴 츠빙거 성



유럽 여행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몰랐던 도시였다. 영국의 브라이튼이나 이탈리아의 부라노 섬 같은 존재. 가본 자만이 아는, 안갯속에 숨은 마추픽추 같은 전설의 도시. 그곳에 가기 위해 시간 맞춰 일어섰다. 당장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을 뿐, 정신은 새벽 5시부터 맑았다. 흘러간 시간처럼 떠나간 체력 탓에 나는 새벽에도 다섯 번을 뒤척였다.


시차 때문인 줄 알았던 이 불면은, 살을 뜯어먹은 베드버그 때문이라는 사실을 드레스덴에서 깨달았다.





6시 10분. 아침을 먹으며 밀린 톡에 답장을 보냈다. 천천히 움직여 프랑크푸르트 역에 도착했다. 나는 곧장 하얀 전경에 "DB"라고 빨갛게 적힌 센터 안으로 들어섰다. DB는 독일열차(Deutsche Bahn)를 뜻한다. 한국으로 따지자면 코레일이다. DB는 독일 시내 어디로 이동하는 한 번은 이용하게 되는 이동 수단이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1165번이 떴다. 나는 빨간 뿔테 안경을 쓴 여인에게 인사했다. "구텐 모르겐." 

미리 예약해두었던 자유석을 지정석으로 바꿔달라고 말했다. 내 예약 내역을 살피던 여인이 슬쩍 안경을 내리며 게슴츠레하게 쳐다봤다.



“드레스덴에 가는구나.” 



나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녀는 반가워하며 “내 고향이 드레스덴이야!”하고 밝혔다. 푸근한 풍채의 그녀는 제 고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기쁘게 설명했다. 특히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유채꽃밭이 예쁘다며 내게 어떤 자리에 앉고 싶은지 물었다. 다른 대답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창가가 좋다고 답했다.


그녀는 세심하게 좌석을 골라주었다.


때는 5월. 나는 9번 정류장 앞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여기 너무 추워!


라고 톡을 보내자 [여긴 너무 더워!]라는 메시지가 한국에서 날아왔다. 나는 발을 동동 굴렸다. 패딩을 입은 사람들 틈에서 홀로 옆구리를 껴안았다. 베드버그가 줄줄이 달라붙은(이때는 몰랐지만) 목도리에 턱을 숨겼다.





기차에 올라탔다.

느릿하게 기차는 111km/h로 달렸고, 바깥으로 유채꽃 밭이 빠르게 지나갔다. 샤프란을 눈으로 씹은 듯했다. 황홀해서 눈을 못 뗐다. 빗물이 도시의 색깔을 앗아갔지만 유채꽃만은 제자리를 지켰다. 


동시에 안타까웠다. 익숙해진다는 건, 이 아름다운 유채꽃밭에 더 이상 눈길을 빼앗기지 않는다는 거구나.


나는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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