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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Dec 24. 2019

노들서가 오리엔테이션

노들서가 x 브런치





10월 2일


브런치 일상작가 OT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신청서에 써두었던 책 다섯 권을 옆구리에 끼고 노들섬으로 향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무엇을 할까. 내부는 어떻게 생겼지. 나는 다양한 각도로 집필실을 상상하며 지하철을 타고 노량진 역에서 내렸다. 


초행길에 길을 헤맸다. 9호선 급행은 나를 멀찍이 내려주었고,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가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널널이 2시까지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겠다는 계획은 이미 수포로 돌아갔다. 





이 카드를 정말 받을 수 있나? 



언제부터인가 카카오 페이지에 보이는 카드 하나. <브런치x노들서가> 작가 인증 카드이다.


이게 뭐야! 처음 봤을 때 나는 마치 블루마블에서 황금 열쇠라도 뽑은 듯 기뻐했다. 보기만 해도 영롱한 것이, 취직하고 나서 받는 사원증만큼이나 빛났다. 회사 사원증은 물론이요, 명함을 파기도 전에 취직했던 곳을 박차고 나온 내 입장에서는 감회가 남달랐다.





하늘이 찌뿌둥했다. 추적추적, 새로운 발걸음을 막는 빗길을 뚫고 노들섬에 도착했다. 


여기구나. 나는 미지의 세계를 파헤치는 탐험가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새로운 환경에 놓인다는 것은 두려운 만큼 설렌다.





노들서가는 노들섬 안에서도 깊숙한 곳에 위치해있다. 1층에는 다양한 출판사와 서울의 독립서점이 직접 큐레이팅한 책들로 가득했다. 푸릇푸릇 키가 큰 나무들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지나다닐 때면, 눈을 사로잡는 책 소개글과 소품들 앞에 곧잘 걸음을 멈추었다.


아무래도 집필실은 2층에 있는 듯했다. 나는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눈앞으로 카페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내 키보다 조금 작은 하얀 서랍장들이 벽을 따라 즐비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 위에는 16명의 작가 이름을 담은 종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여기구나. 나는 집필실을 바라보았다. 그 앞에는 접근을 불편하게 만든 까만 줄 가운데로 작은 패널이 보였다. 



소중한 기록이 만들어지는 이곳은 '노들서가 집필실'입니다. 
평일 낮시간 동안 16명의 일상 작가님들이 머물며 이곳, 노들서가에서 우리의 소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좋은 글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자리를 양보해주시고 배려해주신 방문객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나 또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자리를 양보해주신 모든 분들과, 이런 예쁜 글을 남겨주신 분께.





승연의 서재.

아직도 내 이름 옆에 붙는 '작가'는 어색하다. 작가 글지마와 일반인 이승연은 독립적인 존재인 것처럼 구분했다. 친구들은 나를 이름으로 불렀고, 사회에서 만난 분들은 필명으로 불렀다. 그렇기 때문에 <승연 작가>는 마치 나의 두 정체성들에게 "사실 너네 한 몸이야."라는 아침 드라마 수준의 충격을 주는 느낌이었다. 어색하고 이상해서 몸이 베베 꼬였다.


구경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왔다. 3시에 맞춰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됐다.





팀장님의 간단한 소개 이후 다 같이 밖을 나섰다. 집필실 사용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노들섬을 한 바퀴 돌고 난 후에 하기로 했다. 우산을 펴 들고 걸었다. 비가 내려서 축축해진 땅에 발이 잠겼다. 우중충한 하늘과 한강을 구경했다. 


10월부터 12월. 이곳의 풍경을 지켜보며 글을 쓸 생각 하니 남모를 자부심과 책임감이 생겼다.





우산을 접고 실내로 다시 들어왔다. 우리는 실내 깊숙이 마련된 집필실에 들어섰다. 초록색 갓을 쓴 스탠드는 어디 미국 드라마에서 보았던 듯했고, 테이블은 1인이 쓰기에 사치스러울 정도로 넓었다. 곱게 깔린 하얀 천 위로 밀림 방지 패드가 놓였고 나는 연필을 손에 쥐었다.





슬기 매니저 님이 앞으로 나오셨다. 우리는 설명에 따라 앞에 놓인 집필실 일정표와 기본 안내를 읽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한 달에 한 글'이었다. 


노들서가에서는 월세 대신 '글세'를 받습니다. 받은 글세는 소중히 저희 노들서가 공간에서 작은 전시를 통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작가님들께도 '한 달'에 '한 글'이라는 작은 목표가 생기겠지요. 가을, 집필실에 머무는 동안 총 3편의 글을 노들서가의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공유해주세요.





고작 30분에 불과했던 오리엔테이션. 왜 그리 긴장을 했는지, 나는 어깨를 바짝 세운 채 작가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서가 측에서 마련해준 다과를 뜯어 먹으며 조심히 브런치 아이디를 물었다. 우리들은 함께 둘러앉은 채 서로가 가져온 책에 대한 소개를 적었다.


이곳에서 어떤 글들을 쓸까. 2년 동안 계속된 출판에 지친 나를 무엇이 달래줄까. 날이 맑은 날 한강은 예쁠까. 인천 사람이라 서울의 풍경은 어색하다. 매니저 님들과는 언제쯤 반갑게, 어색하지 않게 인사할까. 


무엇보다 이 공간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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