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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서가 오리엔테이션

노들서가 x 브런치

by 글지마





10월 2일


브런치 일상작가 OT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신청서에 써두었던 책 다섯 권을 옆구리에 끼고 노들섬으로 향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무엇을 할까. 내부는 어떻게 생겼지. 나는 다양한 각도로 집필실을 상상하며 지하철을 타고 노량진 역에서 내렸다.


초행길에 길을 헤맸다. 9호선 급행은 나를 멀찍이 내려주었고,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가는 지하철에 올라탔다. 널널이 2시까지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겠다는 계획은 이미 수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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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를 정말 받을 수 있나?



언제부터인가 카카오 페이지에 보이는 카드 하나. <브런치x노들서가> 작가 인증 카드이다.


이게 뭐야! 처음 봤을 때 나는 마치 블루마블에서 황금 열쇠라도 뽑은 듯 기뻐했다. 보기만 해도 영롱한 것이, 취직하고 나서 받는 사원증만큼이나 빛났다. 회사 사원증은 물론이요, 명함을 파기도 전에 취직했던 곳을 박차고 나온 내 입장에서는 감회가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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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찌뿌둥했다. 추적추적, 새로운 발걸음을 막는 빗길을 뚫고 노들섬에 도착했다.


여기구나. 나는 미지의 세계를 파헤치는 탐험가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새로운 환경에 놓인다는 것은 두려운 만큼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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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서가는 노들섬 안에서도 깊숙한 곳에 위치해있다. 1층에는 다양한 출판사와 서울의 독립서점이 직접 큐레이팅한 책들로 가득했다. 푸릇푸릇 키가 큰 나무들 때문에 고개를 숙이고 지나다닐 때면, 눈을 사로잡는 책 소개글과 소품들 앞에 곧잘 걸음을 멈추었다.


아무래도 집필실은 2층에 있는 듯했다. 나는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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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으로 카페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내 키보다 조금 작은 하얀 서랍장들이 벽을 따라 즐비한 공간이 나타났다. 그 위에는 16명의 작가 이름을 담은 종이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여기구나. 나는 집필실을 바라보았다. 그 앞에는 접근을 불편하게 만든 까만 줄 가운데로 작은 패널이 보였다.



소중한 기록이 만들어지는 이곳은 '노들서가 집필실'입니다.
평일 낮시간 동안 16명의 일상 작가님들이 머물며 이곳, 노들서가에서 우리의 소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좋은 글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자리를 양보해주시고 배려해주신 방문객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나 또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자리를 양보해주신 모든 분들과, 이런 예쁜 글을 남겨주신 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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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연의 서재.

아직도 내 이름 옆에 붙는 '작가'는 어색하다. 작가 글지마와 일반인 이승연은 독립적인 존재인 것처럼 구분했다. 친구들은 나를 이름으로 불렀고, 사회에서 만난 분들은 필명으로 불렀다. 그렇기 때문에 <승연 작가>는 마치 나의 두 정체성들에게 "사실 너네 한 몸이야."라는 아침 드라마 수준의 충격을 주는 느낌이었다. 어색하고 이상해서 몸이 베베 꼬였다.


구경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왔다. 3시에 맞춰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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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의 간단한 소개 이후 다 같이 밖을 나섰다. 집필실 사용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노들섬을 한 바퀴 돌고 난 후에 하기로 했다. 우산을 펴 들고 걸었다. 비가 내려서 축축해진 땅에 발이 잠겼다. 우중충한 하늘과 한강을 구경했다.


10월부터 12월. 이곳의 풍경을 지켜보며 글을 쓸 생각 하니 남모를 자부심과 책임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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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접고 실내로 다시 들어왔다. 우리는 실내 깊숙이 마련된 집필실에 들어섰다. 초록색 갓을 쓴 스탠드는 어디 미국 드라마에서 보았던 듯했고, 테이블은 1인이 쓰기에 사치스러울 정도로 넓었다. 곱게 깔린 하얀 천 위로 밀림 방지 패드가 놓였고 나는 연필을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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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 매니저 님이 앞으로 나오셨다. 우리는 설명에 따라 앞에 놓인 집필실 일정표와 기본 안내를 읽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한 달에 한 글'이었다.


노들서가에서는 월세 대신 '글세'를 받습니다. 받은 글세는 소중히 저희 노들서가 공간에서 작은 전시를 통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작가님들께도 '한 달'에 '한 글'이라는 작은 목표가 생기겠지요. 가을, 집필실에 머무는 동안 총 3편의 글을 노들서가의 시간과 공간에서 함께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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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30분에 불과했던 오리엔테이션. 왜 그리 긴장을 했는지, 나는 어깨를 바짝 세운 채 작가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서가 측에서 마련해준 다과를 뜯어 먹으며 조심히 브런치 아이디를 물었다. 우리들은 함께 둘러앉은 채 서로가 가져온 책에 대한 소개를 적었다.


이곳에서 어떤 글들을 쓸까. 2년 동안 계속된 출판에 지친 나를 무엇이 달래줄까. 날이 맑은 날 한강은 예쁠까. 인천 사람이라 서울의 풍경은 어색하다. 매니저 님들과는 언제쯤 반갑게, 어색하지 않게 인사할까.


무엇보다 이 공간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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