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우는 아버지의 표상_최민수

by 글멋지기



겨울이었다. 기억이 정확하려면 그날은 분명 겨울의 끝자락, 1995년 2월 16일 목요일이었어야 한다. 목동 외곽의 작은 빌라 건물 1층 집, 101호였을까 102호였을까. 지하층이 있었기에 1층 집이라고 하기에는 거실 창문의 시작 지점이 눈높이보다 위에 있던 그 집. 그날은 겨울임에도 거실 창문은 열려 있었고 밤은 깊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여전히 기억이 또렷할 만큼―함께 있던 어머니의 울음소리와 문 열린 창문턱을 타고 넘어오는 앞집·윗집·뒷집 아주머니들의 울음소리가 선명한 밤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던 열 살 꼬마는 다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어머니의 눈이 향하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 창문 아래 거실 벽에 기대어 빛을 밝히던 텔레비전 세상 속에는 아버지와 참 비슷한 얼굴의 배우 아저씨가 떨고 있었다. 이상한 옷을 입고 손은 두꺼운 줄에 묶인 채로. 삭막하게 밝은 태양 아래 그는 격정으로 가득 찼고, 푸들거리는 몸을 겨우 가누면서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떼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 밑이 퀭한 얼굴이 애처로웠다. 한껏 붉어진 눈으로 누군가에게 끌려가던 그는 눈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눈물 안에 잠겨 서럽게도 울던 어머니 옆 꼬맹이는 ‘울 아부지가 울면 저런 모습이겠다’라고 어렴풋한 간질거림을 느꼈다.


못해도 오 년은 넘게 흘러간 뒤였다. 우연한 기회로 그때 그날의 밤, 어머니와 온 동네 아주머니들을 울린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손을 묶은 것은 포승줄, 입고 있던 이상한 옷은 교도소의 수감자가 입는 죄수복. 당시 배우 아저씨는 사형 집행장으로 끌려가던 중이었고, 카메라는 사형수로서 마지막 하늘을 마주하는 그의 절절한 연기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눈물에 서로 다른 울음소리가 합류한 것도 그때부터였고, 이름 모를 아주머니들과 어머니가 함께 한 눈물의 합창은 사형 집행 후 박상원 배우와 고현정 배우가 산에 올라 화장한 그의 유골을 바람에 날려 보내는 장면까지 잦아들 줄 모른 채 더욱 깊어져 갔다.


“나, 떨고 있냐.”를 비롯해 많은 인상 깊은 연기와 대사를 대중문화에 새기고, 근현대사의 질곡과 그 안에 휩쓸린 개개인의 운명을 생생하고도 처연하게 그려낸 대작 드라마 「모래시계」였고, 아버지를 닮은 그 배우 아저씨는 최민수였다.


「모래시계」의 방영 기간은 1995년 1월 9일부터 2월 16일까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지금으로서도 파격적일 주 4회 편성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매일, 드라마가 방영하는 시간이 되면 어머니와 함께 앉아 텔레비전을 봤다는 말이 된다. 가슴으로 느끼기에는 너무나 깊고 복잡한 드라마였기 때문에 초등학생이 온전하게 감상할 리 만무하지만. 옛날에 본 기억이 있다는 어렴풋한 느낌과 최민수 아저씨의 연기를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는 몇몇 코미디언의 모습만 가지고 있었더랬다. 여담으로, ‘-했더랬다’를 말이나 글에서 자주 쓰게 된 것도 민수 아저씨의 영향이 크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민수 아저씨가 풀어내는 옛 시절의 일화. 여전히 깊은 눈빛 아래 옅게 파인 주름이 괜스레 친근했고, 작은 미소 달아둔 입을 통해 울리는 매력적인 저음이 장식하는 ‘했더랬다’는 무척이나 멋있었더랬다. 그 후로 입과 손가락에 배어버린 말은 고루하다는 핀잔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말투이자 글투가 되겠다.


최민수 아저씨의 연기를 보다 진지하게 혹은 온전하게 감상한 것은 2007년의 가을이 시작될 무렵부터라고 해야 한다. 군 입대 후 일 년이 지나 소위 ‘짬’이 차올랐을 그 시절, 같은 생활관을 쓰던 후임들에게 이미 텔레비전의 점유권을 양도했던 그때 최민수 아저씨가 출연하는 드라마가 시작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바로「태왕사신기」. 판타지와 신화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게 단군신화와 광개토 대왕을 연상케 하는 주제와 배경이라니. 심지어 그 「모래시계」를 제작했던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가 다시 뭉쳤다니. 게다가 최민수 아저씨가 출연한다는 것은 바로 용의 눈동자를 찍는 것. 드라마 방영이 군대 취침 시간 이후였기 때문에, 잠시나마 취침 시간에 어떻게든 몰래 드라마를 볼 계획을 구상했던 것은, 잠시나마,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을 테다. 규정 위반의 유혹을 애써 이겨낸 대신 후임들에게 넘겼던 텔레비전 점유권을 한시적으로 강탈했다. 조건은 단 하나. 주말 양일간 오후 한 시부터 드라마 재방송이 방영되는 딱 50분 동안만. 군 생활에 적응할 대로 적응해 점차 의욕을 잃어가던 차에 2007년의 9월부터 12월 첫째 주의 주말까지 이어진 삼 개월의 시간은 그야말로 한여름 밤의 꿈같이 달콤했지만 서글픈 호접지몽이었다.


나름의 가치관과 취향이 갖춰진 채 「모래시계」를 제대로 대면한 것은 미국 유학 시절의 이야기이다. 나이로는 이십 대 중반의 시기. 시간으로 표현하면 2009년의 초여름 정도, 배경은 당시 친해진 두 살 위 형의 캠퍼스 아파트 집 거실, 그리고 적절하게 시원한 밤바람이 살랑이며 넘나들던 술자리와 그 무대에 앉아 있는 두 인물.


“살면서 한국 드라마 본 거 뭐 있냐?”

“드라마? 군대 있을 때 태왕사신기 진짜 재미있게 봤는데.”

“야이씨, 그딴 것도 드라마라고 봤냐.”

“아 왜요 형. 재미있잖아. 최민수 아저씨 나온단 말이에요.”

“최민수 하면 또 모래시계지. 모래시계 봤어?”

“그거...! 봤던 기억은 대충 있는데, 너무 어릴 때라.”

“이 새끼 이거 안되겠네. 모래시계도 안 보고 드라마를 논하고 있네. 필리핀에 있을 때 모래시계 DVD가 시장에서 팔길래 샀거든. 보니까 진퉁이라 그거 여기 올 때 가져 왔는데 빌려줄 테니 볼래?”


「모래시계」는 24부작 드라마이고, DVD 한 장에 두 화씩 들어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것보다 선명한 것은 주말마다 방에 틀어박혀 DVD를 바꿔가며 노트북과 한 몸이 된 나 자신의 모습이다. 드라마를 관통하는 것은 극 중 최민수 아저씨가 맡은 배역의 짧았지만 선명했던 삶의 궤적이었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 모습을 꼭 빼닮은 최민수 아저씨는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 사랑하고 절망하고 좌절하고 체념했으나 다시 사랑을 위해 희생하며 태양처럼 강렬히 불타오르다 초신성 폭발처럼 사그라졌다. 24부가 이어지며 그려냈던 그 시간 안에 또한 부모님이 존재했던 80년 5월의 빛고을이 있었고 우리 세 식구를 위해 시대가 불러온 거친 파도를 견디며 희생하고 헌신했던 시간이 덧칠되어 있었다.(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 두기 시작한 것이 이때고, 부모님이 80년 5월 광주에서 집회에 참여하다 가까스로 서울로 올라왔다는 말을 들은 것도 이 무렵이다.)


극 중 최민수 아저씨와 똑같이 고불고불한 곱슬머리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가 여기저기 고개 내민 흰머리의 미련을 뒤로하고 중환자실에서 눈을 감은 그날의 밤이 2012년 2월, 음력설로부터 정확히 삼 주가 지난 그날. 시한부 선고를 받은 가장이 인생에서 퇴장하기 전, 가족과 화해를 이루고 가장 행복한 가족으로 만들어 준 이야기를 그린 최민수 아저씨 주연의 드라마「해피엔딩」이 방영된 것이 두 달 후인 2012년 4월부터 7월까지. 어머니는 울음에 지쳐 잠드는 것으로 깊은 밤을 헤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기였고, 같은 공간의 벽 너머에서 허공을 찢어내는 울음을 견디는 것으로 매일 밤을 보내야 하는 것이 내 몫이었던 시기에 한낱 신규 드라마의 방영 소식에 관심을 둘 이유가 전혀 없었지만. 아마도 의식하지 못한 채 최민수 아저씨의 이름을 몇 번이고 인터넷에 검색한 덕분에 알게 된 소식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와 나로서는 평생 불가능할 일이 드라마의 주제라서 였을까. 썩어 문드러져가는 죄책감에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나 자신을 놓고 싶어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무 생각 없이 매일을 보내는 와중에도 드라마가 방영될 시간에는 텔레비전을 켰고 또다시 24부가 흘러가는 동안, 하루만 면도하지 않아도 거뭇하게 까끌까끌해지는 턱수염까지도 닮은 최민수 아저씨를 관찰했다. 시한부 판정의 독살스러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황망하게 저버린 아버지와는 다르게 남겨질 이들을 위해 마지막 최선을 다하는 최민수 아저씨의 연기를 보며 참 많이도 울었다.


유튜브가 지극히 당연해진 현재,「모래시계」 또한 무료로 제공되고 있으니 언제든지 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자주 찾아보는 영상은 따로 있다. TV조선에서 2016년에 방영됐던「엄마가 뭐길래」. 최민수 아저씨 가족이 함께 나누는 시간을 모니터 너머로 바라볼 때마다 복잡해지는 마음에 실소가 나오면서도 주기적으로 찾아보게 된다. 단호한 눈빛과 함께 하는 엄한 음성이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아들인 최유성 군과 눈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의 부드러움은 언제나 더는 해소할 길이 없는 질투와 부러움과 눈물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수많은 풍파에도 서로의 신뢰를 잃지 않고 사랑과 의지로 굳건한 관계를 보이는 최민수 아저씨 부부의 모습이 영상 속에 보인다. 그 위에 내 어머니의 모습을 투영해 본다. 내 어머니도 저들 못지않게 아낌과 사랑을 받으며 사실 텐데.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면.


전라남도 강진. 당신이 쭉 살아온 고향에서 별세한,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때가 언제였는지 손가락으로 헤아려본다. 내가 중학생이었으니, 당시 아버지는 대략 마흔 살, 지금의 내 나이이었거나 한두 살 더 위였을 거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때를 시작점으로 다시 손가락을 짚어보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약 15년 정도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셈이다. 아버지의 작고로부터 13년째이니 얼추 비슷한 시간이 흘렀다. 할아버지를 여의고 걸었던 아버지의 15년은 어땠을지, 그저 가능하다면 여쭙고 싶다.「엄마가 뭐길래」 속, 자신의 아버지(故 최무룡)의 생전 녹음된 음성에 왈칵 터진 눈물을 소리를 죽인 채 애써 참아내는 최민수 아저씨의 심정과 같았을까. 고인의 묘 앞에서도 덤덤한 미소만을 보이고, 평소에는 눈물을 잘 안 보인다는 부인의 말처럼 그저 속으로만 삭이고 살았을 아저씨의 모습이 내 아버지가 살아냈을 모습이었을까.


“(상략) 그들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날아다니며 우리에게 목소리를 들려주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자주 슬픔에 잠겨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중략) 그날이 오면, 백학의 무리와 함께 회푸른 안개 속으로 흘러가리라. 대지에 남겨둔 그대들 모두를 천상 아래 새처럼 목 놓아 부르리.”


「모래시계」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최민수 아저씨가 맡은 극 중 ‘태수’의 테마곡인「백학(Cranes)」의 가사 일부분을 번역한 내용이다. 십 년은 족히 넘는 시간 동안 매일 아침 울리는 알람과 함께 내 방을 가득 채우는, 마치 소네트의 그것과도 같은 운율은 늘 최민수 아저씨를 떠올리게 한다. 제대로 피워내지 못한 인생의 후반부를 남겨두고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모래시계」의 태수가 갈망했던 행복을 곱씹으며,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오랫동안 행복한 삶을 영위할 최민수 아저씨의 현재와 미래에 축복의 기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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