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_유시민

by 글멋지기

주변 사람들과 술 한 잔 기울이며 어울릴 때 종종 입에 올리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내 행동이나 생각의 표현 위로 칭찬 몇 문장을 부어줄 때 주로 나오는 편이다. 술잔을 마주친다는 것은 비교적 편한 분위기 속에 머무른다는 것이니 정제된 언어의 선택을 향한 선호도는 평소보다 약하기 마련이다. 말보다 글이 훨씬 더 격을 갖춰야 한다지만, 포장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를 옮겨도 큰 상관이 없겠다는 의미도 되겠다.


"그게 다 생존전략이라니까요. 옷걸이와 몽따주가 형편 없으면, 응?! 이렇게라도 발버둥을 쳐야 중간이라도 가는거 아니겠어요?"


옷걸이란 내 신체 조건을 가리키고 몽따주란 내 얼굴을 나타낸다. 몽따주를 소리 낼 때 쯤에는 얼굴 앞에서 손을 위아래로 휘적휘적 저어주어야 한다. 주로 오른손을 사용하며 핸드볼 크기의 물체를 잡을 정도로 손을 펼친다. 쉽게 요약하자면,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이 서로의 얼굴을 놀릴 때 '살아있네'와 함께 휘적이던 손짓을 떠올리면 된다. 말을 하든 글을 쓰든 비유와 은유와 상징은 언제나 내 언어에 함께 존재한다.


키가 크지 않다. 얼굴과 머리도 큰 편이다.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배우 박정민 님이 내 책을 구매해 가실 때 같이 찍힌 사진을 보면 처참하게 알 수 있다. 살을 많이 뺐을 때조차도 똑같다. 잘생기지 않은 것도 추가해야겠다. 자조와 자기 비하가 아닌 그저 냉정하고 가치 중립적인 인정이자 납득이고 자기 객관화이다. 일찍이 얻은 이 깨달음으로 시작된 것이 '생존전략'이자 '발버둥'의 소재를 찾는 것이었다.(연애 횟수가 나름 꽤 되는 것을 보면 다행히 효과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오묘한 느낌을 늘 가지고 산다.)


빠른 습득 속도와 소위 '퍼뽀먼스' 에서도 나름대로 찬사를 받았던 운동, 음악, 미술을 옆으로 밀어냈다. 십수 년째 가르치고 연습하고 생활화한 덕분에 대표 능력이 된 영어도 여기서는 아니다. 사람 앞에 자리한 '멋있는' 형용사를 대체할 다른 형용사를 찾아 헤맸다. 혹은 그것을 수식해 줄 부사가 절실히 필요했다. 어떻게든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지금도 똑같은 소망의 무게를 가진 몸부림인 셈이다.


먼저 찾았던 것은 '똑똑한' 이었다. 고상하게 한자어로 표현한 '지적인'도 있었고, 부사로 바꿔 '똑똑하게 멋있는, 지적으로 멋있는'을 완성했다. 멋있는 외모의 부재가 촉발한 반발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외적 아름다움의 반대편에 지성미를 올려둔 듯하다. 고작 대학교 2학년일 때 과학생회장에 출마할 최종 결심을 내린 이유였기도 하다. 노동 해방을 외치며 춤추는 몸짓패에 일말의 고민 없이 가입한 것도 마찬가지다. 먼저 올라선 그 길 위에서 정의를 역설하고 약자를 노래하며 투쟁하는 선배들이 지적으로 보였더랬다. 이 시기에 우연히 접한 한 편의 글에 푹 빠진 것 또한 동일선상의 일이다. 법대 선배 한 분과 나눈 대화의 기억을 반추한다.


"이회창 씨가 국회 입성하기 전에 판사 였던거 아냐? 그때 쓴 판결문들이 기가 막혀, 그 양반이. 경기중, 경기고, 서울대 테크트리를 보면 당연한가 싶기도 한데. 성욱이 너가 나중에 4학년 수업 들을 때 아마 한 번은 읽게 될 거다. 그런데, 그것만큼 유명한 게 이 유시민 씨가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쓴 항소이유서다 이 말이다. 짜식아."


테이블 위에 툭 던진 종이 뭉치 위로 담배 연기를 훅 뱉으며, 내가 곧 온 마음으로 접할 놀라움과 경탄과 탄식과 부러움을 먼저 겪어낸 이의 이미 다 안다는 듯한 눈빛 아래로 선배는 악동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구니의 웃음이었다. 손 글씨로 가득 찬 종이 뭉치를 펼쳐보게 만든 유혹의 미소였다.


<항소이유서>는 많이 알려져 있듯 유시민 작가가 20대 시절 감옥에서 쓴 글이며 문자 그대로 1심 판결에 항소하며 쓴 이유서이다. 여러 프로그램에서 밝힌 바와 같이 초고와 퇴고가 불가능한 환경에서 생각으로 완성하고 한 번에 적어내린 일필휘지의 글이다. 분량이 200자 원고지 약 100매라고 하니 단편소설 1편의 분량이기도 하다. 체감이 낯설다면, A4 용지 한 장을 채웠을 때 설정에 따른 약간의 차이는 차치해도 2,000자가 조금 안 되는 것을 떠올리면 된다. 분량에 압도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고작 20대 중반의 대학생이 선보인 글 전체를 가득 채우는 논리, 어휘 수준, 문장 구사력과 화려한 수사법, 그리고 국가와 법과 인간을 향한 깊은 사색과 고찰과 철학과 분노와 비판 때문이다. 평범한 법적 문서로 남을 글자에 문학과 비문학을 조화롭게 버무려냈기 때문이다.(시대의 변화로 인한 일종의 감가상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탐구할 가치가 있다.)


중학교 때 입문한 뒤 쭉 이어진 장르 문학 탐독의 시절. 가입 한 달만에 고객 점수 1등을 차지할 만큼 매일 방문한 책 대여점에서 빌려온 판타지와 무협으로 하루를 열고 닫던 시절. 그 선배가 선뜻 건네준 항소이유서 원문과 필사 흔적이 가득한 종이 뭉치가 비집고 들어온 것이 아마도 그 해의 가을께였을 테다. 한 문장의 마침표에 도달할 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검은 잉크가 담아낸 지성의 깊이에 감탄하고 시기하며 좌절했다. '유시민' 세 글자를 깊게 새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무뎌져 가는 것과 반비례해 빨라지는 시간은 20대의 나를 어느새 30대 초반의 청년으로 바꿔놓았다. 아낀 만큼 툴툴거렸던 <무한도전>은 안타까운 마침표를 찍은 때였기도 하다. 요동치는 삶의 굴곡을 버텨내느라 한동안 잊었던 유시민 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2017년, <무한도전>의 마침표로부터 대략 1년 전인 이때 유시민 님이 출연한 tvN 예능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 첫 시즌을 맞이했다. 분에 겨운 눈빛과 울부짖는 몸짓과 칼을 품은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계절 순환의 흔적이 자글하게 남은 웃음을 품고 그는 TV 속에 앉아 있었다.


시쳇말로 '말로 두들겨 팬다'라고 한다. 기억 속, 각종 토론에서 한쪽 진영에 자리한 유시민 님이 정확히 그랬다. 억울하고 분한 심정에 논리로 날카롭게 벼린 칼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던 그가 허허 웃으며 맛집을 검색하고 낚시 이야기에 흥분해 홍안의 소년으로 돌아갈 줄이야. 여행의 즐거움으로 어둑해진 밤, 진행자 유희열 님을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네 아저씨의 좌장으로 분해 풀어내는 지식의 향연에서 활약하는 유시민 님의 모습도 물론 볼 수 있었다.


그는 멋있었다. 똑똑하게 멋있었고 지적으로 멋있었다. 여전히 논리는 자명했고 냉철한 식견은 풍파에 맞선 세월이 더해져 깊이와 너비가 마치 바다와도 같았다. 시즌 1의 2화쯤에서 부지불식간에 감탄사를 흘렸고 시즌 1의 4화쯤부터 일상을 <알.쓸.신.잡>으로 가득 채웠다. 낮에는 그가 던지는 화두에 나만의 대답을 떠올리는 공상으로 바빴고, 그의 맞은편에 앉아 대화를 함께 나누는 장면을 밤마다 감은 눈 너머에 그리며 잠들었다. 그야말로 'sapiosexual'의 표상이 되는 사람이었다.(sapiosexual: 라틴어가 뿌리가 되는 용어로 옥스퍼드 사전이나 케임브리지 사전에 따르면 상대의 지적 능력에 매력을 느끼고 끌리는 현상이나 사람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삭막한 모래로 뒤덮여 한동안 보이지 않던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은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고 유시민 님의 식견과 논리를 끌과 정으로 삼아 오래된 소망 앞에 '지적으로'를 새겨 넣었다.


첫 번째 시즌 첫 화부터 세 번째 시즌 마지막 화까지 방영되는데 걸린 시간 1년 6개월. 이것은 다시 말해 지적으로 멋있어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시간이다. 그리고 또한, 무엇보다 귀중한 역설을 맛본 시간이기도 하다. 시즌 1의 6화로 돌아간다. 술을 곁들이며 편하게 대화하는 자리임에도 자신의 발언에 과한 무게가 실렸음을 알아차리고 사과하는 유시민 님의 모습을 본다. 마지막 화에서 소개된 미방영분 속, 대화를 복기하며 대화 상대의 의도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이를 통해 상대를 인정하고 존경을 표하는 모습도 보인다. 시즌 1은 시즌 2를 위한 예열 작업이었을까. 시즌 2 전체를 아우르며 그가 보여준 깊이에 입안에 굴리던 감탄은 가슴 깊은 곳으로 내려가 크기를 키운다. 단종과 세조를 이야기하며 우리가 가져야 할 중요한 삶의 자세를 들려주고(2화),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을 회상하며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이것을 받아들이는 철학을 풀어내는 동시에, 세월호 사건의 아픔을 불가피하게 같이 겪어야 했던 진도의 슬픔을 어루만져 주기도 한다.(3화) 어린 시절에 느꼈던 가족과의 행복을 전하는 덤덤한 목소리를 나를 울리기도 했다.(7화) 시즌 3의 열매 또한 만만치 않다. 오래된 고아원을 돌아보며 가족의 역할과 의무에 절실히 공감했고(3화), 유럽의 광장 위에 세워진 공동체를 우리의 공동체에 비춰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고찰하고 흠결을 꼬집는다.(4화)


1년 6개월의 시간 동안 맺히고 숙성된 역설은 무엇일까. <알.쓸.신.잡> 시즌 3이 종영하고 나서도 몇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됐다. 역설적으로, 발길을 끊겠다던 정치 세계로 다시 한 걸음 걸어들어가 여전히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는 유시민 님의 행보를 보며, 방대한 지식보다 더 따뜻하고 밝게 빛났던 인간을 향한 그의 존중과 사랑이야말로 <알.쓸.신.잡>을 보며 맛보게 된 역설이었음을 깨달았다. 그의 형형한 눈빛과 정제된 언어와 세심한 사색은 인간을 향해 있었고 냉철한 이성보다 연민과 측은지심과 겸손함의 무게를 듬뿍 담아냈던 것이다. 항소이유서에서 시작하여 사회 참여 활동과 정치 활동을 통해 보여준 유시민 님의 지식을 삶의 길잡이로 여기고 이성과 합리만을 추구했던 나 자신이 내심 갈망했던 것이 사실은 <알.쓸.신.잡> 속 그가 보여준 낚시 좋아하는 옆집 아저씨의 안온한 인간의 마음이었음을, 반대로 다시 정치의 전쟁터로 돌아간 그의 찌푸린 미간과 회의적인 시선에서 느끼게 된 것이다. 역설적으로.


절절히 고백하건대 내 30대 시절의 10년은 지적으로 멋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소망에서 부사를 고쳐 새기는 시간이었다. 그저 유시민 님처럼 지혜롭게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타인에게 귀를 기울이고 양보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추고자 애썼다. 그저 그렇게 따뜻한 마음의 멋을 띠고 싶었다. 뉴스에서도 기사에서도 유튜브에서도 팟캐스트에서도 더는 그의 멋짐을 찾아볼 수 없다. 사라진 것 같다. 나는 그처럼 멋있고 싶었는데 멋있었던 그는 보이질 않는다. 내가 추구하던 멋짐 또한 죽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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