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멋지기 Jun 05. 2024

노란 우체통 속 빨간 소식

카카오톡의 빨간 알림 숫자가 100이 넘어가도록 

안 보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일까

나는 하나하나가 너무 두근대고 기분이 좋은데






노란 네모에 빨간 촛불이 켜지면 세상 속을 표류하던 쪽배는 잠시 항해를 멈추고 전서구가 가져다준 빨간 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전서구의 날갯짓은 너무나 거대하고 힘이 넘쳐 발목에 매단 쪽지는 하늘을 향해 날리는 순간 상대에게 도착하는 듯합니다. 끝과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속 높고 낮은 파도에 길을 잃은 세상 모든 항해사가 여전히 서로에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일 테죠.     


제각각 자기 자리를 고수하는 어둔 밤하늘 별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습니다. 별을 바라보며 속삭였던 기원이 피어올라 별빛 머금고 주인공을 향해 날아가던 시절, 우리는 분명 두근거림을 느꼈고 희망과 기대를 품어 그림자 속에서 풍기는 슬픔과 좌절을 내리누르곤 했었습니다. 사랑 가득한 소식을 싣고 돌아올 저 하늘 너머의 별빛에 귀 기울이는 시간은 무엇보다 달콤하고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여전히 우리는 기억합니다.     

   

투박한 회색 쇳덩어리를 붙잡고 지저분한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며 수화기 건너편 목소리에 귀 기울였던 시간 속의 열몇 살 어린아이가 저 앞에 서 있습니다. 몇 자리 숫자가 울린 진동에 반가워 헐레벌떡 뛰어갔음이 명백한 것은 이마 위로 흐르는 땀방울이 말해줍니다. 잘그락거리는 주머니 속에서 소중하게 챙겨온 동전을 하나 꺼내 기계에 집어넣고 나머지는 그 위에 조심스레 쌓아둡니다.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가슴은 뛰기 시작하고, 바닥을 찧는 발끝은 더러워져 가고, 쌓아둔 동전은 점점 자취를 감추는 전화 상자 불빛 아래 아이는 해가 밝아옴과 동시에 시간 속에 굳어 버립니다.     

   

기다림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그저 외면과 엿봄이 남았을 뿐입니다. 외면과 엿봄은 다시 기만으로 이어집니다. 상대에게 띄운 노란 번호 하나 사소한 그 숫자 하나에도 우리는 주도권을 다투며 의심과 기만의 악취를 여기저기 풍겨대고 있죠. 시간의 경계를 허물어 공간의 제약을 부숴버린 그 순간부터 서로의 눈을 피하려는 감시와 속임수는 교묘해졌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철저하게 굳건한 지지를 바탕으로 서로를 옥죄고 있음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은 그리하여 쓰디쓴 자조만큼이나 더욱더 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웃음 짓는 내 모습은 기약 없는 힘겨운 기다림에서 마침내 탄생합니다. 내가 띄운 빨간 불빛에 상응하는 대답이 멀고 먼 바다를 건너 즉각 눈앞에 떠오르지 않더라도, 언젠가 내 눈앞에 밝혀질 그 불빛을 기다리는 인내의 시간은 마음을 가득 채웠던 씁쓸함을 한껏 씻겨내 주기에 의심의 순간은 곧 증발해 자취를 감춥니다. 기만이 사라진 자리를 차고 들어오는 웃음은 그리하여 직사각형 쇳덩어리에 온기를 흐르게 하니 상대방의 얼굴은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사각 화면 위로 떠 오르게 됩니다.     

   

달그락 소리와 함께 색을 잃고 굳어진 전화 상자에도 다시 불이 들어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