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멋지기 Jul 28. 2024

언어에 대하여

영화「행복한 사전」평론

드라마, 일본

2014.2.20 개봉

마츠다 류헤이, 미야자키 아오이, 오다기리 죠




국어 대백과 사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크기는 어린아이 몸통을 가릴 만큼 크고 또한 두껍다.(심심할 때 손에 잡히는 대로 사전을 펼쳐 ‘독서’를 했던 어린 시절의 시간은 여전히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 속 벽에 걸려 있다.) 진한 검은색 바탕에 금색 글자가 수려하게 박힌 딱딱한 껍데기 안을 가득 채운, 역시나 검은색 표지와 미끄럽게 흘러 넘어가는 흰색 내지를 갖춘 사전은 무게 또한 만만치 않다. 내지 안에 빼곡히 적힌 작은 검은색 활자는 또 어떤가. 기역으로 꺾여 들어가 히읗의 히읗으로 마침표를 찍는 모든 단어와, 단어에 숨을 불어넣는 정성스러운 정의의 무게는 따라서 무거울 수밖에 없다. 


사전을 이루는 내지 특유의 얇고 미끄러운 감각은 일반 책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감각임을 어린 시절부터 충분히 만끽한 세대의 일원으로서, 현시대의 온라인 사전의 유용성은 부정할 수 없겠으나 동시에 유용성의 너무 큰 유용함에 의문을 표하게 된다. 종이 사전과는 다르게 몇 번의 조작만으로 모르는 단어의 뜻과 예문과 어원과 한자까지 한 번에 찾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낯선 단어를 마주하게 되면 경계하고 배척하며 단어(message)의 몰이해의 귀책사유를 상대방(messenger)에게서 찾는 현상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단 몇 초만 덜어내 온라인 사전에 끼얹으면 뜻을 찾아낼 수 있는 편리함은 되려 외면하기 때문일 테다. 언어의 존재 이유를 외면하고 되레 편을 가르는 불법적이지는 않지만 지극히 비상식적인 행동의 도구로 삼기 때문일 테다.


사전은 필요 없는 것인가. 언어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언어만, 유명한 몇몇 온라인 플랫폼에서 소비되는 언어만이 진정 쓸모를 증명한 것인가. 내가 못 알아듣는 언어는 이유 불문 사용자의 잘못인 건가. 15년의 시간을 오롯이 하나의 사전을 완성하는 데에만 쏟은 이야기에서 대답을 구해보자. 바로 이시이 유야 감독의 2014년작 「행복한 사전」으로, 15년의 긴 시간 동안 단 하나의 사전을 완성해 나가는 마지메의 숭고하리만큼 단단한 집념과 언어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도 마지메를 믿고 함께 걸어가는 사전 편집부 동료 직원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1. 오른쪽을 정의한다면


오른쪽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왼쪽의 반대편. 그렇다면 왼쪽의 정의는 무엇인가. 북쪽을 바라보고 섰을 때 해가 뜨는 방향은 어떨까. 북쪽을 먼저 정의해야 한다. 이처럼 단어를 정의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능하면 또 다른 정의가 필요한 단어의 사용 없이 한 단어의 정의를 내려야 한다. 이점을 인간 사회에 그대로 대입해보자. ‘가능하면 또 다른 정의가 필요한 단어의 사용 없이 한 단어의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의미가 된다. 


언어의 당사자로 청자와 화자가 존재한다. 일방의 의사소통을 제외하면 양자는 두 역할을 다 다룰 수 있어야 한다. 화자에게 주어진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청자를 배려하는 자세일 것이다. 사회에서 지극히 널리 통용되는 보편타당한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사용하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언어는 또한 약속의 증거이자 발현이다. 정해진 약속에 따라 청자는 화자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또한 진심의 영역에서 다해야 한다. ‘북쪽을 바라보고 섰을 때 해가 뜨는 방향’을 말하며 북쪽이 어디인지 설명하려고 시도하자. 북쪽이 어디인지 먼저 찾아보거나 문맥을 통해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자. 청자와 화자의 역할은 외면하며 오로지 권리만을 요구하는 염치없는 목소리가 유독 커져가는 지금이다. 


2. 모르면 찾아봐야지


작중 시점인 1995년, 고요히 흘러가기만 하던 겐부 출판사의 사전 편집부에 변화의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아내의 건강 문제로 편집부의 핵심 편집자 이라키가 관두게 되고, 편집부의 총괄이자 감수자인 마츠모토(선생님이라고 불린다)와 함께 새로운 사전을 편찬하는 데 있어 이라키의 업무를 이어 맡는 중책에 거부감을 보이는 니시오카는 이라키와 함께 출판사 부서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인원을 찾는다. 마츠모토가 제시한 ‘오른쪽을 정의하라’의 질문을 마주치는 직원마다 던지지만, 인기 없고 존재조차 잘 모르는 사전 편집부인 탓일까 누구 하나 제대로 설명하는 이가 없고 심지어 제대로 된 고민하는 모습조차 보이질 않는다. 


추후 사전 편집부의 대표가 될 마지메와 마주하게 되는 첫 장면은 이 시점에서 시작된다. 밥을 먹을 때조차 책을 읽고 있는 마지메의 모습은, 책으로 둘러싸인 그의 하숙집 방과 책을 읽는 중 마주하게 된 단어의 정의를 사전에서 찾아보는 장면에서, 특별한 설명과 행동 없이도 그 정점에 다다른다. 책을 읽던 와중에 발견한 단어의 뜻을 찾아본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작가가 건넨 인사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이해하고 느끼려고 하는 독자의 적극적인 행동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다. 고요의 한가운데 마지메의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종이사전의 얇은 내지가 사각거리며 넘어가는 순간은 그러므로 순수하며 숭고하기까지 하다. 동시에, ‘금일’, ‘명일’, ‘명징’, ‘적확’, ‘심심한 사과’, ‘우천 시 장소 변경’,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께’ 등의 표현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생긴 손해와 피해의 결과에 발끈하여 되려 발신자에게 책임을 돌렸던 이들이 꼭 봤으면 하는 장면임을 주저함 없이 강조한다.


3. 사랑을 정의한다면


단어란 무엇인가. 오른쪽을 정의하라는 물음만큼 당혹스러울 수 있겠다.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잠시 옆으로 미뤄두고 보면 단어란 세상 만물의 이름이라 하겠다. 단어가 세상 만물의 이름인 것을 거듭 언급하며 강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특정 대상을 지칭하는 이름의 의미에 호기심을 가진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이름의 주인을 이해할 수 있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지메의 입을 빌려 마지메가 거주하는 하숙집 고양이의 이름인 ‘도라’ 또한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규칙적으로 마지메를 찾아오던 도라가 보이지 않자 도라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 나선 마지메는 마침내 영화의 여주인공인 하야시(첫인사에서 성 대신 이름인 카구야로 소개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와 마주하게 되는 장면에서 하나의 상상을 더해보자. 고양이의 이름이 없었다면 마지메가 고양이를 부르며 먹을 것을 주며 보살펴 줄 수 있었을까. 이름이 없는 존재에 이름을 붙이지 않은 채 종 자체의 이름을 부르며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또한 고양이가 없었다면 마지메는 카구야와 만남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며 카구야와의 첫 만남에서 잊기 어려운 독특한 인상을 남기지도 못했을 것이다.(카구야는 고양이가 귀엽다고 말한 후 이름을 물었지만, 마지메는 자신의 이름을 물은 줄 알고 마지메라고 답한다. 스스로가 귀엽다고 인정한 모양새이지 않은가.)


소소한 웃음을 만들어낸 첫 만남의 해프닝 이후 마지메는 카구야에게 어렴풋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머릿속이 온통 카구야로 가득해 주변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고,(니시오카의 부름에도 듣지 못하자 뒤로 몰래 다가가 놀래는 순간 마지메는 너무 놀라 기절할 정도의 실신을 하고 만다) 평소 지참하는 단어용례수집 카드에 카구야에 대해 알게 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모습에서 조용하기만 한 마지메의 감춰진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이 모습을 본 마츠모토는 마지메에게 사랑의 정의를 작성해 볼 것을 권유하고 사랑의 진전을 돕는다며 카구야가 일하는 식당에서 편집부원들과 함께 식사 자리를 가진다.(카구야가 마지메 대신 마지메의 이름인 마쓰야를 언급하는 장면 또한 중요한 장면이지 않을까)


마지메의 하숙집으로 카구야를 찾는 전 연인의 전화가 걸려오고 통화를 한 카구야는 하던 일에 집중하지 못한 채 심란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메는 카구야에게 ‘끊다’의 용례를 쭉 설명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고 카구야는 이 모습에 작은 위안을 얻게 된다. ‘끊다’의 용례가 많은 만큼 관계를 끊는 것에 있어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으니 너무 부담 가지거나 힘들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마지메만의 언어로 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들의 관계는 주방용품 상가를 둘러보러 같이 외출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되고, 여러 종류의 칼을 살펴보며 마지메에게 이름과 제작 방식과 사용처를 자세히 설명해 줌으로써 카구야는 마지메가 전한 방식에 맞춰 감사의 말을 건네주는 장면이야말로 낯선 방식의 언어를 접했을 때 해당 방식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상대방을 알아가려는 행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상가 관람 후 카구야의 권유로 놀이공원에 간 마지메가 관람차 안에서 카구야의 요리가 가장 좋다고 고백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한다) 


영화 「행복한 사전」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1990년대의 무대 위에 마지메와 카구야의 관계 정립이 핵심이 되는 부분이라면 후반부는 12년이 흐른 후 2000년대에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사전 편찬의 실무자로서, 추후 마츠모토의 역할을 이어받아 총책임자가 된 마지메가 사전의 완성을 향해가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전반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장면이 바로 마지메가 카구야에게 고백하는 장면이다. 마지메는 카구야와의 외출(이라고 쓰고 데이트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후 자신의 마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백할 결심을 한다. 바로 연애편지를 쓰는 것. 이후 니시오카에게 편지를 읽어봐줄 것을 부탁하지만, 쉽게 읽을 수 없는 단어와 문투로 작성한 것뿐만 아니라 보통의 펜 글씨가 아닌 붓글씨로 적어 전국시대 무장이냐며 되려 타박을 듣는다. 다만 저녁에 다시 이야기를 꺼내며 “만약 카구야씨가 너에게 관심이 있다면 어떻게든 읽지 않겠냐”라고 말하며 마지메에게 편지를 고쳐 쓰지 말고 그대로 전해줄 것을 권한다. 


편지를 건네고 며칠 후 카구야의 대답을 듣기 위해 하숙집 현관에 앉아 퇴근하고 올 카구야를 기다리는 마지메의 모습이 전반부의 마지막 장면의 시작이다. 역시나 글을 읽을 수 없었던 카구야는 편지 내용을 알기 위해 근무하는 식당의 주방장에게 읽어주기를 부탁했고 고백편지를 읽을 수 없던 점과 혼자 읽어야 하는 내용을 남이 알게 했다는 이유로 창피했던 감정을 울먹이며 마지메에게 털어놓는다. 미안해하는 마지메 앞에 마주 앉은 카구야. 이윽고 마지메에게 글 말고 직접 말로 마지메의 마음을 확실히 자신에게 말해줄 것을 요구한다. 입으로 직접 하는 말이다. 단어와 글로 세상과 대화하던 마지메가 어찌보면 처음으로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로 전한 순간이 아닐까. 이처럼 마지메와 카구야의 관계에서 상대의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생각과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고 이점이야말로 인간만이 영위할 수 있는 숭고한 가치라고 믿으며 마지메를 통해 영화가 전하는 사랑의 정의를 소개하겠다.


“사랑: 어떤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자나 깨나 그 사람 생각이 떠나지 않고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게 되며 몸부림치고 싶어지는 마음의 상태. 이루어지게 되면 하늘에라도 오를 듯한 기분이 된다.” 


4. 대도해


영화 속 시간상 1990년대에 편찬 작업을 시작한 사전의 이름은 ‘대도해’이다. 영화 초반 마츠모토는 다른 사전과 차별되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전을 만들고픈 소망을 밝힌다. 이후 회식 자리에서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하며 “단어의 바다는 끝없이 넓고, 사전은 그 너른 바다에 떠 있는 한 척의 배. 인간은 사전이라는 배로 바다를 건너고 자신의 마음을 적확히 표현해 줄 말을 찾는다. 그것은 유일한 단어를 발견하는 기적. 누군가와 연결되길 바라며 광대한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사전”이라고 묘사한다. 이를 위해 마츠모토와 마지메는 직접 길거리로 나가 특히 현재에 살고 있는 젊은 사람들의 말을 수집하고 다닌다. 이름하여 ‘용례 수집’. 마츠모토는 수 십 년간 습관처럼 반복해온 용례 수집을 하는 이유를 “단어는 생겨나기도 하고 또 소멸되기도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의미가 변하기도 합니다. 단어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뜻이죠. 그건 타인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이 아닐까요.”라는 말로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15년에 걸친 사전 편찬 과정을 통해 가장 큰 변화를 보인 두 인물이 있다. 단어와 글로만 세상을 바라보던 마지메는 어엿한 감수자가 되어 대도해의 완성을 책임진다. 사소한 실수에도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고 단단하게 밝히며 엄청난 수고가 드는 교정 작업에도 직접 참여하며 끝까지 꿈꿔왔던 사전을 완성시킨다. 인쇄소 직원과 사전 내지를 고른는 장면에서도 이 점은 명확히 드러난다. 미세한 느낌의 차이를 간과하지 않고 인쇄소 직원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마지메의 모습은 이전 모습을 의심할 만큼 든든하다.(편집부를 떠나 홍보부로 옮기기로 한 니시오카에게 현대어 중 일부 단어의 뜻풀이를 맡기자는 건의를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하는 모습에서 능글스러움마저 느껴진다)


마지메만큼 큰 변화를 보인 인물은 니시오카이다. 영화 초반 아내의 건강 문제로 편집부를 관두게 되는 이라키의 업무를 이어받아야 하는 사실에 난색을 표하는 니시오카는 대도해 편찬에도 그리 열정적이지 않고 시큰둥한 모습이다. 자기 대신 실무를 담당할 직원을 찾는 일에 동참하는 것 또한 동일한 선상에서 나온 행동에 불과하다. 매사에 자유로움과 멋을 중시하는 니시오카는 그러나 마지메의 순수하고 조용한 열정에 조금씩 감화되기 시작해 대도해 편찬이 중단될 위기에 발 벗고 나서 해결책을 찾아 뛰어다니고, 사전 편찬과 편집부 존속의 조건으로 홍보부로 옮기는 것도 받아들인다. 중요한 것은 편집부를 떠나는 것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미안함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고, 홍보부로 옮기게 됨에도 앞서 언급한 마지메의 건의에 응하고 마지메가 보여주는 일관된 정성에 감동해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것 또한 니시오카의 변화된 모습임을 눈여겨봐야 한다. 니시오카의 관심과 애정은 이후 마지메가 마츠모토의 뒤를 이어 대도해 편찬을 총괄하고 나아가 사전을 완성했을 때까지 이어져 대도해의 홍보를 도맡아 하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영화 전체에 걸쳐 마지메가 보여주는 언어는 조용하다. 하지만 동시에 뜨겁다. 단어와 글로 시작한 마지메의 언어는 카구야를 감동시켰으며, 조용하지만 애정 가득한 단단한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 열정은 니시오카를 감화시킨다. 니시오카의 부서 변동 이후 잡지 편집부에서 일했던 기시베가 새로 사전 편집부에 합류하게 된다. 사전 편찬의 길고 낡아 보이는 집요한 방식에 낯설어하는 기시베의 능력을 칭찬하며 마지베는 그녀에게 패션 관련 단어 풀이를 맡기게 되고 기시베 또한 점차 사전 편집부의 분위기에 녹아들기 시작한다. 


앞서 마츠모토가 용례 수집에 대해 언급한 말인 “단어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뜻이죠. 그건 타인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망이 아닐까요”는 결국 마지메와 편집부 직원들을 나타내는 말이지 않을까. 마지메와 카구야는 서로를 알고 싶어 했기에 각자가 알고 있는 단어로써 서로를 이해한 끝에 부부가 되었고, 일견 고리타분하고 딱딱한 언어를 가진 마지메와 현대어와 신조어 등 동시대에서 주로 소비되는 언어를 가진 니시오카 또한 서로의 언어를 주고받으며 끈끈한 선후배이자 동료가 될 수 있었다. 마지메가 보여준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언어로 인해 사전 편찬에 참여한 다른 직원과 학생 아르바이트들도 품이 많이 드는 작업에도 이탈 없이 하나가 되었다. 누구 하나 마음속에서 자신의 언어만을 고집했다면 열거한 모든 일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5. 성실함


일본어 ‘마지메’의 사전 정의는 ‘성실함’이다. 미래가 없어 보이는 사전 편집부 일을 관두지 않은 성실함일까. 그렇지 않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인 마지메의 성실함은 주변 사람의 언어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멈추지 않았던 성실함이고, 자신의 열정을 놓지 않은 성실함이고, 대도해의 편찬 목적과 방향에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고 고수한 성실함이고,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성실함이다. 장장 15년을 투자하여 마침내 대도해 사전을 세상에 내놓은 마지메의 헌신은 심지어 성실한 투쟁으로까지 비친다. 


대도해의 완성을 목전에 두고 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마츠모토는 와병 중에도 부인의 도움을 받으며 용례 수집을 멈추지 않는다. 또한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에서도 “저세상이 있다면 거기서 단어 수집을 할 생각입니다.”라며 끝을 맺는다. 마지메의 성실함은 마지메 이전 편집부를 맡아온 마츠모토에게도 있었다. 아내 간병을 위해 떠났다가 사별 후 다시 도움을 주려 찾아온 이라키에게도 있었다. 편집부를 떠났지만 끝까지 도와준 니시오카에게도 있었고, 요리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나간 카구야에게도 있었다. 언어라는 넓은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다른 항해자와 안전하게 조우하려면,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려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영화 「행복한 사전」 그러므로 사전 편찬을 그린, 개봉한지 10년이나 지난 영화이지만, 언어에 무심해져만 가는 가혹해져만 가는 현재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영화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