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기록
손끝이 야무지다는 말이 있다. 긍정의 의미로 칭찬을 많이 받아 익숙해진 표현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반대의 이유로 어릴 때부터 자주 들었던 표현이다. 초등학교 시절, 기억나지 않는 특정 주기로 '조립식 장난감'을 가져와 만드는 수업 시간이 있었다. 동세대라면 분명 기억할 이 시간에 주목을 받는 주인공은 단연코 손끝이 야무진 친구들이다. 지금 봐도 복잡하기 짝이 없는 비행기, 탱크, 혹은 건담 모형 등을 가져와 만들었던, 심지어 강력 접착제와 작은 커터를 사용해 제공된 도안과 똑같이 만들어 냈던 그들은 그리하여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순간적인 짜증과 귀찮음 혹은 막막함에 질려 몇몇 중요해 보이지 않는 부품을 외면하거나 모형의 완성을 포기했던 나 자신과 비교하면 더더욱. 사춘기를 겪어내며 한 번쯤 시도해 봤던 종이학, 학알, 별 접기 또한 같은 이유로 엄두를 내지 못했고, 피처폰의 부흥기에 짧지만 강렬하게 유행한 자판 꾸미기는 다른 세계의 신비에 불과했다.
손재주가 뛰어나지 못한 사람에게는 다행히도 첨단 기술의 발전은 상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이루어졌고, 컴퓨터, 프린터, 스마트폰 등 직접적인 손재주보다 두뇌와 관련된 능력의 유무와 발달 정도가 더 중요해진 세상이 도래한지 오래다. 얼리어답터까지는 아니지만 흥미와 경험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필요한 만큼은 다룰 줄 아는 정도의 능력은 갖춘 듯하다. 나만의 뚜렷한 강점이라고 내세우기에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지만 최선의 결과물을 얻어내는 면에서는 포기하지 않고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정도라고 비유하겠다. 이십 대 초반 군 복무 시절 보유했던 화려하고 빠른 손기술은 많이 쇠락했지만 또래와 비교하면 여전히 손끝은 잘 작동하고 있음이다.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은 새로운 시도로 향할 긍정과 부정, 가능과 불가능의 깃발을 구분하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ㅅ소위 '내적 계산'을 해 봤을 때 내 손으로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값이 도출되는 방정식은 계산이 끝나자마자 머릿속에서 지운다. 십 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꽤나 잘 수행한 이 작업에 제동이 걸린 것은 몇 년 전으로 돌아간다. 교보문고에서 손바닥보다 살짝 길고 살짝 폭이 좁은 미니북을 발견했을 그때이다. 무엇에 홀린 듯 매대 앞을 떠나지 못하고 책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구매한 미니북이 십 여권이 넘는다. 소장 욕심이 넘쳐흘러 선물 용도로 구입했던 미니북도 이십여 권은 족히 넘는 것 같다.
구매에서 멈췄더라면 편했을 것을. 여기서 만족하지 못한 나는 이제 직접 미니북을 제작하고 있다. 낱장으로 잘라 제본을 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다른 방안을 찾기 위해 검색의 검색에 매몰되길 몇 달, 겨우 단초로 삼을 영상을 발견해 끊임없는 실험과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일단의 해결책을 찾아냈고 그에 따라 결과물은 계속 만들어내 여러 행사에서 나름대로 유익하게 사용했지만 끝까지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것은 역시 야물지 못한 손끝 감각이다. 실험을 거듭해도 균일하게 만들지 못하는 책 배는 어떻게 해야 할까. 표지는 미니북 판형보다 크게 해야 할까 딱 맞게 해야 할까. 아무리 천천히 세심하게 다뤄도 제본용 풀은 균일하게 접착되지 않는다. 이쯤 되니, 무엇을 하든 이 정도의 난관에 봉착했을 때 중얼거리는 '이걸 내가 왜 손대서는......' 공허한 한 문장이 입 밖으로 탈출하기 시작한다.
포기하고 손을 떼면 된다. 지금의 결과물로도 충분히 탄성을 자아냈고 호기심을 이끌어냈고 판매고 또한 올렸다. 시작한 것이 내 의사였으니 포기하는 것도 내가 결정하면 된다. 그저 스스로에게 결정의 내용을 통보하면 될 일이지만 어딘가 존재하는 머뭇거림이 뇌로 향할 전기신호를 붙잡고 있다. 이 녀석이 뇌로 달음박질쳐 내 몸을 조종하기 전에 그 정체를 알아야겠다는 욕구를 느낀다. 건강한 욕구는 풀어야 함이 마땅하므로 마땅한 고찰을 시작할 시간이다.
탐구의 시작은 올바른 질문으로 행해야 한다. 최근 몇 년간 얻은 깨달음 중 하나는, 해답을 얻기 위한 질문은 '무엇' 이 아니라 '왜'로 시작해야 하고 '왜'가 해결이 되면 자연스레 '어떻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로 나 자신에게도 '왜 이것을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시간 위에 시간이 더해지는 작은 스탠드 불빛 아래의 웅크린 작업자는 잠시 손에 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슴속을 가득 채운 하나의 답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미니북의 생김새는 이미 익숙하다. 책 크기가 작아졌을 뿐 크게 특별한 점은 없다. 결과물의 평범한 겉모습에 비해 제작에는 상당히 섬세하고 예민한 집중력과 꼼꼼함 그리고 세심함이 요구된다. 꼼꼼하고 세심한 손길이 부족함을 절절하게 느끼는 내게, 따라서 미니북의 제작을 시도하는 것은 오히려 부족함을 갈구하는 행위로써 생명을 얻는다. 다시 말해, 무엇이 부족한지를 거듭해서 망각하는 인간으로서의 부족함을 일깨우기 위해서는 부족함으로 벽에 부딪히는 아픔 속에 스스로를 밀어 넣어야 하는 것이다.
멀리 흘러간 과거의 대해 위 여전히 떠 있는, 흘러간 만큼 현재로부터 떠나보낸 과거의 그들에게로 생각이 옮겨간다. 그들이 결국 바랐던 것은 조금은 더 세심한 배려와 사려 깊은 마음의 손길이었다는 사실이 수평선 위에 떠 있다. 나 또한 괜찮은 척하는 가면을 움켜쥐고 그들이 바랐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손길에 목말라했었음이 어두워진 반대편 하늘에 박혀있다. 덧칠해 버린 이전의 관계에 후회하고 슬퍼하고 또다시 다음의 관계에서 같은 실수를 저지르며 다시 후회의 한숨을 내쉬는 나는 참오하는 심정으로 내려놨던 풀과 칼을 들어 만들다만 미니북을 만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