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의 시간을 지켜보며

일상기록

by 글멋지기

[2024년 10월 25일의 흔적]


1. 동네 서점 이야기


삼 년째 단독으로 세 권의 독립출판물을 펴낸 입장으로 보면, 독립출판물을 취급하지 않는 동네 서점을 지지해야 할 직접적인 이유는 사실상 없다. 만약 내가 분위기에 휩쓸리는 사람이었다면 이미 교보문고에서 책을 구입했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이 동네 서점을 지지하는 이유는 다양성의 확보에 있다. 최소한의 문화 영위 권역을 확보하는 데 있다. 그것이 종내에 시민 모두에게 돌아갈 혜택이자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 외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의 이름으로 공유되고 있는 담화문의 내용에 또한 전적으로 동의하고 공감한다.


2. 지적 허영심??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 이후로 난리다. 서점이 난리고 출판사가 바쁘고 인쇄소 불이 꺼지지 않고, 사람들은 책을 사지 못해 난리다. 언제부터 그리 책을 읽으셨냐 빈정거리진 않겠다. 그러나, 지금의 현상이 건강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나만의 감정은 아니었는지 문제 제기가 여럿 있었는데 해당 문제 제기에 대한 반박 의견 안에서 희한한 단어가 보인다. '지적 허영심.' 이렇게라도 책을 사서 보는 것이 어디냐, 지적 허영심을 느껴야 그걸 채우기 위해 책을 구매하고 그러면서 책 읽는 인구가 늘게 된다는 주장이다. 말인지 방귀인지 코딱지인지 이해하느라 한참이 걸렸다.


그렇다면, 허영심에도 격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지 않나. 격이 높은 허영심은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 허영심이 '지적'으로 연결되면 되려 권장해야 한다는 것인가. 경제적 성공에 몰두하고 심지어 권장하는(돈과 관련되어 쏟아져 나오는 자기 계발서를 생각해 보자) 사회에서 그렇다면 경제적 허영심은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문학에서만 허영심이 예외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문학만이 '지적'인 것인가. 예술의 존재 의미가 언제부터 '지적'인 것이 되어버렸나. 이러고도 문학 교육이 잘못됐다고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게다가, 지금 현상의 동력이 식으면 그때 과연 사람들의 관심이 다른 책으로 넓게 옮겨 갈 것이라는 희망찬 기대의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정답만을 찾아야 하는 교육을 강요받은 사람들로 가득 찬 이 사회에서, 어느 때보다 타인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편을 나누며 갈등의 골이 깊어진 지금의 사회에서, 서로의 생각과 감정과 의견을 건강하고 자유롭게 주고받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나아가 문화로 탈바꿈 시키는 것에는 관심도 없고 실현할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서 '이렇게라도' 따위의 태도를 견지하는 모습은 너무나 우습고 너무나 허무할 뿐이다. 옳다고 믿는 결과를 위해 과정의 올바름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식의 결과 만능주의는 언제쯤 이 사회에서 혁파될 수 있을까. 책은 왜 읽어야 하는가? 문학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되지 않나.


3. 읽을 책은 정말 많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기쁜 일이다. 너무나 기분 좋고 자랑스럽고 축하할 일이다. 이 부분에 이견은 전혀 없다. 그러나, 제발, 지금의 관심이 여기서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상에 목매달지 않고 언론에서 부추기고 조장하는 인위적인 유행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지 않기를 기원한다. 서점 안 벽을 따라 서 있는 서가에, 제대로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그곳에 무수히 많은 책이 꽂혀있다. 거기에 각자의 노벨 문학상이 있고 그걸 능가하는 책이 분명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것에서 멈추지 않기를 또한 바란다. 주변인들과 끊임없이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를 바란다. 나를 알고 너를 이해하고 그럼으로써 관심과 사랑으로 세상과 어울려 사는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매거진의 이전글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