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받았다가 씁쓸했다가

일상기록

by 글멋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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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뻑!"

"아!! 아이씨 뭐야!"


휴대폰을 보며 아파트 단지 내부를 걸어가다 사진에 보이는 저 단단한 물체(위에 꽃을 주로 심더군요)에 정강이를 강하게 찧었어요. 순간 입술 바로 뒤까지 욕이 넘실거렸지만 정강이의 아픔이 손톱만큼은 더 커서 다행히 내뱉진 않았죠.


제 잘못인걸요. 앞을 안 보고 걷는 게 잘못이라고 평소에도 말하고 다니는 만큼 욕하는 순간 저한테 하는 꼴이 될 테니까요. 오랜만에 고통과 교훈을 맞바꿨다며 아픔을 삭여내면서 가던 길을 재촉하던 찰나, 발을 멈추게 됐어요. 그리곤 뒤를 돌아 저 단단하고 차가운 덩어리들을 쳐다봤어요. 이전에 저것들이 분명 없었다는 생각이 걸음을 붙잡은 거죠.


저 장소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유일무이하게 아이들의 공간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일종의 작은 놀이터이자 운동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래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축구를 하고 피구를 하고 뛰어다니고 수다 떨며 때로는 모여앉아 게임을 하는 그런 곳이요. 그 외 다른 곳은 어른들의 차지입니다. 담배 피우고 침 뱉고 앉아서 술 마시며 욕지거리하는, 혹은 차를 세우거나.


저 덩어리들을 보면서 경관이나 조경의 목적을 떠올리긴 힘듭니다. 배달 오토바이의 불법 통행을 막으려는 시도일까요? 이른 저녁의 외출과 산책이 끝나고도 뚜렷한 이유를 못 찾게 되더군요. 결국 생각의 화살이 향한 과녁에는 어른의 이기심이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이들이 나와 뛰어노는 게 그렇게 시끄러웠을까요? 꼬맹이들이 설마 밤 9시, 10시까지 거기서 놀고 있으려고요.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초등학교가 하나 있긴 한데, 그곳 운동장에 가서 놀라는 암묵적 의사 표시일까요? 이곳 어른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돼서 잘 모르시는 걸까 싶어요. 학교 운동장은 해가 지는 순간부터 어두워져서 아이들이 활용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아파트 단지 내 가로등 조명 아래서 노는 것이 훨씬 더 밝고 안전하죠. 해가 진 경우에 말이에요. 게다가 저렇게 구조물을 두면 해가 쨍쨍한 낮에도 아이들은 나와서 놀지 말라는 소리로만 들리는 건 제 착각이 아닐 거예요.


집에 와서 정강이를 보니 살점이 파여있네요. 천천히 걷다가 부딪혔는데 살점이면, 뛰다가 부딪히면 그때는 문제가 뼈로 넘어가게 되겠죠. 그 끔찍함은 상상하기도 싫네요. 잠깐만. 그러고 보니 저 덩어리들은 어디서 가져왔을까요. 새로 샀다면 아파트 관리비를 사용했을 텐데, 무슨 명목으로 구매를 했을까요. 저걸 설마 공동비용으로 청구하는 만행을 저지른 건 아닐 거라 믿고 싶습니다.


사회가 고령화로 접어드는 속도만큼 기술의 발전도 빠르게 진행된다고 하죠. 그에 따라 노년층과 비노년층의 기술 격차도 심각해지고 있고요. 그런데요. 노년층이 겪는 기술 소외만큼이나 아이들이 소외되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어른에게 맞서 목소리를 내기가 너무나도 어렵거든요. 저렇게 막아버리면 아이들은 어디 가서 놀아요 할까요. 결국 벤치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는 것으로 귀결될 텐데, 그때 가서는 '요새 애들은 나가 놀지를 않고 휴대폰만 붙잡고 산다'라고 비판할 그 삐뚤어진 입과 날카로운 목소리가 이미 예상됩니다.


단지 후문 상가에 작은 24시간 무인 카페가 들어서 있습니다. 오늘 낮에 잠시 들렀는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 6명이 작은 테이블 하나에 둘러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었어요. 시끄러웠고 부산스러웠고 몇 없는 테이블에 아이들 가방과 겉옷이 놓여 있어 앉을 자리가 없었어요. 덕분에 되돌아가는 사람도 몇 봤고요. 그때는 속으로 혀를 차며 짜증이 났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아이들도 갈 곳이 없었겠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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