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도 긴 추석이다.
나도 연휴 사이에 구멍 난 평일을 연가로 메우니 빨간날이 10일이 생겼다. 1월부터 달력을 넘겨 보며 10월은 언제 오나 손꼽아 기다렸는데 올 게 왔다. 연말처럼 마음이 붕 떠서 일이 손에 안 잡힐 지경이다.
마음 같아서는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으나 어딜 가나 넘쳐나는 인파와 값비싼 물가를 감당할 자신은 없었다.
그럼, 이 귀중한 시간에 도대체 무엇을 할까. 갑자기 넘쳐난 장난감에 벙쪄버린 어린아이처럼 생각이 멈춰버렸다. 그래 일단 계획을 세우자! 주체할 수 없는 여유시간을 위해 미뤄뒀던 숙제와 하고 싶은 일을 체크리스트에 하나씩 기재했다.
□ 방 청소하기
□ 동아리 글쓰기
□ 넷플릭스 보기
□
어떤 걸로 저 빈칸을 채울까.
어떻게 하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쓸 수 있을까.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에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쉬고 싶다. 이랬다저랬다 흐느적거리는 상념 속에 고민하다가 추석 당일은 어쩌지 한다.
나에게 추석은 도망가는 날이니까.
우리 집은 큰 집이고 명절 때마다 항상 제사를 도맡았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친척들은 모두 우리 집으로 집결한다. 애초에 가족 외 남이 거실에 있는 걸로도 방구석에 틀어박히는 나에게 명절은 너무나 버겁다. 특히 손님으로 맞이하는 주인의 입장은 굉장히 피곤하다.
분명 내 방에 누워 있는데 누워 있는 기분이 아니랄까.
먼 길 오시는 손님의 불편함도 있겠지만 그것조차 부러웠다.
오죽하면, 어릴 때 내 소원은 한복 곱게 차려입고 귀성길 휴게소에서 알감자 먹는 거라며 입이 댓 발 나왔었다. 그러나 외갓집조차 20분 내로 가까워서 절대로 이루어질 리 없는 투정이었다.
나이 들면 좀 달라지려나 했으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요즘 어떻게 공무원 공부는 잘하고 있니? 이런 거 물어보면 요새 애들은 싫어한다던데. 하하하.”
이게 뭔 말이야 방구야.
불편한 안부 인사만 보내는 어른들과 이제는 서로 머리가 컸다고 어색한 사촌들. 나한테 친하게 말 붙이던 동생들도 이제는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만 바라본다.
같은 동네 아줌마네는 와이파이가 없다고 손자들이 할머니 집에 가기 싫다고 했단다. 그래 그나마 와이파이라도 있으니 이렇게라도 얼굴이나 보나 보다.
도망가자. 추석에는 어디든 가야만 할 것 같아.
답답한 기류만 가득해진 집에서 나가버리자. 설날이라면 말렸을 부모님도 어느새 적응했는지 그러려니 하신다. 남아 계실 두 분에게는 친척들 질문에 적당히 답할 핑곗거리를 드린다. 요새 회사에 일이 많아서 쉬는 날도 나가봐야 한다고. 추석에 당직이 걸렸다고.
그거 아시나요?
추석 아침 일찍 집 밖을 나온 인간이 시내에 갈 만한 곳은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뿐이라는 것을.
평일 아침 커피를 파는 카페조차도 모조리 문을 닫는다. 추석 당일은 갈 곳이 없다. 나는 분명 집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도 있는데 스스로 밖에 나와 놓고 쓸쓸함을 느낀다. 이게 뭔 셀프 고문이람.
예전에 동생과 같이 나와서 역시나 떠돌아다닌 적이 있다. 오랜만에 맛있는 거나 먹자고 간 맛집은 모두 문을 닫았고 둘이서 먹은 건 돈까스와 부대찌개를 같이 파는 집이었다. 평소라면 지나쳐 갈 음식점이었지만 우리는 들어가야만 했다.
여기만 문을 열었다. 부대찌개는 평범했으나 돈까스 소스가 정말 특이했다. 이상한 핑크빛 소스는 맛도 묘해서 추석만 아니었으면 안 올 집이었다며 지금도 우스개로 떠든다.
시내는 갈 곳이 못 됨을 알고 그다음 해는 친구와 용문사로 템플스테이를 떠났다. 이 친구도 나와 같은 큰 집 K장녀다. 역시 끼리끼리 논다더니.
우리 둘은 차라리 속세를 버려버린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품고 절로 향했다. 그러나 제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많았던 그녀들. 절에 가면 단무지로 밥그릇을 헹굴 수 있으니 거하게 상다리 부러지도록 먹고 들어가자고 그렇게나 떠들었다. 얼마나 맛집을 검색했는지. 결국 산 초입에 있는 한정식집에서 더덕 정식을 야무지게 해치우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고즈넉한 절을 자기 집 안방처럼 온갖 곳을 쏘다니다 저녁 무렵 스님과의 다도 시간을 가지게 됐다.
나와 친구 외에도 생면부지의 한 아주머니와 함께 자리하게 되었다. 마음속 고민을 털어놓는 시간이었는데 단순 도피로 도망 온 우리와 달리 아주머니는 눈물을 뚝뚝 흘리시며 가족사를 꺼내셨다. 마지막에 자리를 정리하며 나오는데 그때 그분이 던진 말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다고요? 둘이 너무 보기 좋아요. 나도 그런 친구 있었으면 좋겠다.
그 말의 힘이 작용한 건지 그냥 또 추석이 싫었는지 우리 둘은 또 도망갔다.
돈이 있는 직장인은 도망도 남다르다. 해외를 갔다. 해외여행에 관심 한 톨도 없던 내가 이참에 가보자고 마음먹을 정도라니. 얼마나 추석이 싫었으면.
그렇게 떠난 첫 여행지는 바로 싱가포르였다. 누군가 그랬지. 해외여행에 한 번 빠지면 답이 없다고. 재정적 상황을 고려하여 1년에 한 번만 가자고 정했던 약속은 올해 2번을 기록하며 무참히 깨져버렸다.
올해의 추석 당일은 또 어떻게 흘러갈까.
밖에 나가는 게 귀찮아 집에 눌러앉을지 정 갈 곳 없으면 영화관에서 죽치고 있을지. 다만 분명한 건 도망쳐 나온 발걸음 뒤로 매년 새로운 추석이 쌓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