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읽는 시간, 1분. #9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미지근한 공기가 제일 먼저 나를 반긴다.
밖보다야 낫긴 하다만 이렇게 꿉꿉한 상태로는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 때쯤 이미 내 손은 어딘가에서 찾은 리모컨을 쥐고 있다.
꾹-.
에어컨이 꿈쩍도 않는다.
다시, 꾹-.
마치 에어컨 신께서
"인간 주제에 감히. 더 공손히 해봐."
하고 비웃는 것만 같다.
결국 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팔을 쭉 뻗은 채 리모컨을 연신 눌러대기 시작한다.
왼손으로,
또 오른손으로,
가끔은 양손으로.
어쩌다 보니 내 포즈는 어느 외진 마을의 부족이 종교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변해 우스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띡--'
다행히 리모컨이 고장 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리모컨'님'과 에어컨'님'이 내게 바랬던 건 정성이 아닌가 싶다.
이제야 그들은 비로소 내게 시원한 바람을 선사해 주신다.
리모컨님과 에어컨님 만세!
기획자와 카피라이터로 일을 하며 꽤 많은 문장을 써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리모컨에게 또 한 수 배웠다.
툭 건드려서는 켜지지 않는 것들.
정성껏, 오래도록 눌러야 비로소 반응하는 것.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