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교토-오래된

2019-10-?

by 글쌤 류민정


한번쯤, 한 세기 정도는 거뜬히 품었을 오래된 카페에 앉아 보고 싶다.



내 막연한 소원 중 하나였다. 파리에서의 일상이 담긴 한 에세이에서 “파리의 카페는 100년 정도는 넘어야 카페 취급을 해준다”는 글귀를 보고난 뒤 든 생각이었다. 여행 전 급히 알아본 교토에도 오래된 건물이 많다고 했다. ‘오래된’에 관련된 경험이 없는 나는 선뜻 가늠이 되질 않았다. 오래되어봤자, 라는 오만한 생각에 이름을 보고 마음이 이끄는 카페에 가보자 다짐했다. 그렇게 먼저 고른 카페는 신신도 카페였다. 숙소 근처에도 분점 비슷한 것이 있었지만 무조건 본점인 교토대 북문점이어야 했다. 시간을 품은 카페로 가는 게 목적이었으니까. 특히 블로그로 엿본 나무 테이블 사진이 아른거렸다. 만져보고 싶었다.


오래된 카페를 찾아 가는 길은 참 즐거웠다. 비슷비슷해보여도 각자의 품위를 지키고 있는 건물들이 사랑스러웠다. 날 좀 봐달라고, 열어보라며 켜진 화려한 조명이 없으니 나무 빗살 사이로 간신히 새어 나오는 빛으로 겨우 영업 중임을 알 수 있는 샵이 많아 자꾸 문을 열어 보고 싶었다. 칙칙한 색감의 맥도날드가 나왔을 때는 왜인지 흐뭇하게 미소지어졌다. 너도 여기 적응하느라 고생이 많구나, 라는 느낌?





신신도 교토대 북문점은 버스에서 내려서도 이런 곳에 카페가 있는 걸까 싶은 길을 걸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학가와는 사뭇 다른 고요함이 어색했지만 이내 이국적인 간판을 발견하고 당차게 문을 열었다.





훅 느껴지는 아늑함. 커다란 나무 테이블이 6개 정도 놓여 있고 적어도 10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는 그 테이블에 조식을 먹는 젊은 사람이 한 명씩 앉아 있는 모습에 자동으로 “실례합니다”라고 말할 뻔했다. 절대,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스쳤고 최대한 겸손한 포즈로 창가에 있는 큰 테이블 하나를 차지했다.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직원에게 이방인인 내가 안절부절 주문을 했다. 커피에 감자 샐러드와 갓 구운 빵이 나오는 조식 세트였다. 교토에 최초로 프랑스 빵을 가지고 들어왔다는 신신도의 역사를 알기에 빵 맛이 좀 더 다르게 느껴졌다. 빵이 놓여 있는 테이블의 세월이 풍미를 만들어내는 듯했다.




88년. 꼬박 그 시간을 한 자리에서 수많은 이방인과 단골 손님의 숨을 받아냈을 나무결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다. 시간에서 빵 냄새가 나는 걸까, 빵 냄새가 시간처럼 느껴졌다. 1930년 오픈 때부터 사용한 계산대와 잠깐 움직이기도 미안할 정도로 조용한 것이 경이로운 공간이었다.




이노다 커피에는 거의 노인이 전부였다. 심지어 나올 때 줄을 서 있던 사람들조차. 그들은 하얀 천이 덮여있는 동그란 테이블에 혼자 혹은 여럿이서 둘러 앉아 문고판으로 된 책을 읽거나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참 신기했다. 카페 안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게 옛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예컨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내 앞에서 살아서 움직인다면 그런 느낌이려나. ‘변함없이 그대로’를 풍경으로 묘사한다면 그들이겠다. 함께 간 지인과 나이 들어 이렇게 지내고 싶다는 말을 계속해서 주고 받았다. 꾸준히 일상을 이어가는 힘이 느껴졌다. 눈을 뜨면 아침 공기를 따라 커피를 마시러 이곳에 오는 사람들. 이노다 커피는 78년의 역사를 간직한 공간보다 사람에 매료된 시간이었다.



신기하구나, 좋구나, 하며 잊어 버리고 아무렇지 않게 치열하게 살 수도 있다. 매일 꾸는 꿈을 잊듯 나의 느낌들은 언제가 될 지 모르는 내일로 옮겨둔 채 말이다. 그러나 교토에서 마주한 시간은 모든 가능성에 나를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얘기해준다. 내가 알고 있던 시간을 앞서가기만 했는데 이제 길로 보인다. 골목으로 보이고 발걸음으로 보인다. 발소리로 들린다. 속도가 어찌 되었든 자신만의 시간으로 꽉 채워져 있는 교토라는 요상한 도시에 대해서. 그 안에서 숨쉬고 있는 가게들과 커피향에 대해서 나는 계속해서 궁금해할 것 같다.


비행기 타기 직전 마지막 커피, 그냥



난 오래된 물건 같은 사람이 되기를, 광내지 않아도 그 자체로 빛이 나고 말하지 않아도 에너지가 느껴지기를 바래왔다. 그것이 교토와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와 비슷해 보이는 또 다른 도시들을 닮아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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