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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쌤 Mar 01. 2022

아이들의 '막말'에 귀기울이자

아이는 솔직함을 무기로 이야기꾼이 된다

아이들과 매일 만나는 일상에 적응해 가면서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아이들의 ‘솔직함’이다. 아이들은 말, 표정, 행동, 눈빛… 갖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것과는 별개로 일상적인 상황에서 솔직함은 배가 된다. 특히 ‘이야기 선생님’이라는 나의 위치에서 아이들은 그야말로 ‘적극적으로 솔직한’ 편이었다.


특히나 놀랐던 점은 외모에 대한 평가가 누구보다 적극적이라는 것이었다. 난 아이들이 ‘선생님 예뻐요’ 같은 귀엽고 예쁜 말만 하는 줄 알았는데, 아주 큰 오산이었다. 몸이 펭귄 같다든가, 파마가 아줌마 같다든가, 화장이 진하다든가, 구체적이고 날 것의 조언(?)에 깜짝깜짝 놀랐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이들이 하는 말에는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가끔, 정말 상대의 기분이 나쁘길 바라며 못된 말을 하는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아직 사회성이 다 자라지 않아서 필터 없이 하는 말이겠거니 여겼다. 그런데 아이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어쩔 땐 ‘진짜 알고 하는 말인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한 번은 쌍둥이 형제가 말싸움을 해서 한참을 말리다 지켜보기로 한 적이 있었다. 사소한 걸로 시비를 걸던 동생이 계속 깐죽거리자 형은 “야! 넌 양심이 있냐?”라고 큰 소리를 쳤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동생이 심장을 퍽퍽 치며 “여깄지!” 하는 것이다. 양심이 거기 있는 줄은 그때 나도 처음 알았다. 만약 내게 양심이라는 게 어딨냐고 하면 난 딱히 어디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양심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애쓰겠지.


또 한 번은 공부를 하기 싫은 이유를 주제로 토론이 열리기도 했다. 하도 할 말이 많은 것 같아 다 얘기해보라는 식으로 대화의 장을 열어놓자 “공부하기 싫어요” “숙제하기 싫어요”라는 말에 숨겨진 복잡한 아이들의 마음들이 쏟아져 나왔다. 예상외로 아이들은 공부의 중요성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부모님이 공부를 시키는 이유와 숙제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알지만, 지나치게 강압적인 부분이나 하려고 하는데 잔소리를 하는 등 각자 싫은 지점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정확하고 다양했다. 공부에 관련된 문제는 집안마다 부모와 아이 간의 소통 방식이 제각각이니 각자의 사정을 전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날의 열띤 토론을 통해 나는 내 생각보다 아이들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구나라는 걸 여실히 느꼈다.


본 대로, 느낀 대로, 생각난 대로 입 밖으로 내뱉는 건, 그 시절에만 가질 수 있는 일종의 무기다. 무기는 누군가를 해하려고 쓰기도 하지만, 나를 지키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무기라고 쓴 건 아이들은 솔직함을 무기로 어른들은 결코 생각해낼 수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탄생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막말로’ 치부하거나 버릇없다고 넘겼던 말들은 새로운 이야기의 무기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7살 아이와 ‘아이들은 솔직한데 어른은 왜 솔직하지 못한가’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아이는 엄마가 헤어스타일을 바꿔서 예쁘냐고 물어보면 정확하게 판단해서 “아니?”라고 대답한다며 웃었다. 그런데 엄마는 자기가 거짓말해주길 바라는 것 같다고 말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어른들은 왜 솔직하지 못해요?”

“글쎄… 머리를 너무 굴려서 그래~”


나의 대답에 아이가 우스워 죽겠다는 듯 웃었다. 왜 웃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그야말로 우문현답이었다.


“머리를 굴리면 공이 생각이에요?
생각을 뻥 차 버리면 넘어져서 다치잖아요!
박치기 파워로 솔직하지 못하나?”


‘머리를 굴린다’는 말을 저렇게 해석하다니. 난 솔직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경험의 양에 비례해 떠오르는 생각에 달라붙는 사족도 많아지다 보니 창조성을 향한 욕망도 사라지게 된 지금. 7살 아이의 ‘생각 공 이론’은 회초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름대로 창의적인 생각을 떠올린다고 하더라도, 생각을 뻗어가기도 전에 뻥 차 버려 넘어지고 포기한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솔직하다는 건 정말 뭘까. 나도 정말 해맑은 말들로 이야기를 만들던 때가 있었을 텐데. 아이들과 더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양심이 엉덩이에 붙어 있다는 말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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