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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쌤 Dec 16. 2022

시인의 고통이 위로가 된다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난다, 2021

최승자 시인은 내가 사랑하는 시인이다. 누군가 물어보면 제일 먼저 말할 수 있고, 왜 좋은지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떠들어댈 수 있는 시인 중 하나이며, 마음이 흔들릴 때나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일종의 ‘의식’처럼 그의 시집을 통째로 필사하곤 한다.


다소 투박하고 거친 말들 속에서 사랑이 느껴지는, (역시나 내가 사랑하는)모순으로 가득 찬 최승자의 시가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최승자의 시로 나는 행복했고 위로받았으며 살 기운을 얻었다. 하지만 몇 년 전 한 기사를 통해 시인의 소식을 듣고 행복한 마음에 빚을 진 기분에 휩싸였다.


그동안 나에게 위로는 준 시들은 시인의 헤아리기 힘든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비집고 나온 것들이었다. 인터뷰 기사가 실린 당시 시인은 고시원 생활을 전전하다가 조현병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워낙 책도 드문드문 내고 얼굴을 비치지 않는 시인이라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것이 미안할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건 없겠지만, 한 인간의 고통이 누군가에게 이토록 큰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예술’인가에 관해 깊이 고민했다.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나를 살린 물 한 모금이 그의 뼈를 갈아 만든 물이었던 것이.



그렇기 때문에 최승자의 글은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 정성 들여 읽을 수밖에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덕후의 마음에 빚 갚는 마음을 더해 몇 안 되는 그의 시집을 전부 사놓고 책장 맨 앞에 꽂아둔다. 책이라도 나올라치면 제일 먼저 사고 옛날에 번역했던 책을 발견하면 어떻게든 사려고 한다.


작년에 나온 이 에세이집은 1989년에 세상에 나왔다가 1995년~2013년의 기록을 추가한 최승자 시인의 기록이다. 젊은 시절에는 더욱 투박하고 기백 있었지만 최근으로 오면서는 시와 글을 향한 회의감과 삶을 바라보는 염세가 강해진 느낌이다. 복원된 시집 말고, 가장 최근에 쓰인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도 그랬는데. 작가의 말에 “그만 쓰자”라고까지 말했으니 정말 그만 쓰려나?


계속 쓰셨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아니, 조금 더 건강한 모습을 찾았으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두 가지 마음이 매번 왔다 갔다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단단한 마음으로 당신의 글을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것이 전해진다면 좋겠다. 시인이 되어 본 적은 없지만 시인은 어쩐지 그런 것들의 힘으로 살아갈 것 같기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최승자, 난다, 2021

시를 쓴다는 것이 만약에 내게 무엇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구원도 믿음도 희망도 아니고, 다만 작은 위안이 될 뿐이다. 내가 완벽하게 놀고먹지만은 않았다는 위안. 그러나 그것은 내 삶의 현실에 아무런 역동적 작용도 할 수가 없는, 힘없는 시시한 위안일 뿐이다.

“펭귄이 자기가 먹은 음식 총 칼로리의 70퍼센트를 어디에 쓰느냐 하면… 쓰러지지 않고 일어서 있기 위해, 몸의 균형을 잡는 데 쓴다는 거야. 걷거나 달리는 것도 아니고 다만 쓰러지지 않으려고 몸의 균형을 가누는 데 말이야.”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기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 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떠나고 무수히 되돌아오면서 많은 시간을, 그것도 대부분 괴로움과 불행의 시간을 바침으로써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어쩌면, 행복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불행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조금은 쓴, 그러나 넉넉한 인식뿐일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인간은 상처투성이의 삶을 통해 상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모순의 별 아래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상처 없는 삶과 상처투성이의 삶. 꿈과 상처.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일상을 더욱 굳건하게 받쳐주는 원리, 한 몸뚱이에 두 개의 얼굴이 달린 야누스의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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