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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쌤 Dec 28. 2022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시인 나태주 인터뷰

인터뷰를 다니며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많이 만났지만 시인을 인터뷰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특히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한 문장만 들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 그 시!” 할 정도로 많이 알려진 <풀꽃>의 주인공이다.

시를 전공으로 삼았지만 대중적으로 유명한 시나 시인은 되레 멀리했던 나는 그 유명한 나태주 시인에 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던 터라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나태주 시인에 관해 많은 걸 새롭게 배워야 했다. 원래 교직 생활을 했다는 것, 많은 시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탄생했고 일상 속에서 툭 튀어나온 ‘말’이 시가 되었다는 것, 살아있는 시인 중 문학관을 가진 유일한 이라는 것 등… 이런저런 기사들을 훑어보면서 내 나름대로 시인의 모습을 가늠해 보았다. 평생 꼬리표처럼 쫓아다닐 유명한 시구를 가진 느낌은 어떨까. 어떤 의미일까. 생전에 문학관을 가진 시인은 어떤 기분일까… 뭐 이런 소인배스러운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풀꽃문학관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지만 인터뷰를 갔던 때는 코로나로 완전히 개방을 하지 못하던 시기여서 한산했다. 생각보다 아담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풀꽃문학관’이라는 이름과 잘 어울렸다.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지만 나태주 시인은 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뒤늦게 나타난 그는 인터뷰를 하러 오던 길에 적은 시를 보여준다. 약속을 위해 서둘러야 했으므로 “하나의 시를 썼으나, 하나의 시를 놓쳤다”라고 농담을 던지며. ‘9월 1일’이라는 제목을 달고 “9월이 왔다”라고 시작하는 시는 지나가는 한 여인의 눈 속에 담긴 평범한 일상 속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었다.


참 신기했다. 시가 일상인 모습을 목도한 것도, 노시인의 천진난만한 얼굴도 모두 처음이었다. 그렇게 나이 들어서도 주변의 모든 것들이 신기할까? 정말로 모든 게 시의 재료가 될 수 있는 걸까?


인터뷰를 나누면서 시인에게 그 호기심에 관해 물었다. 호기심은 그에게 자유를 지탱하는 힘이었다.

“시 쓰는 사람에게 기본적인 힘은 호기심과 사랑, 그를 받쳐주는 열정인데 가장 큰 힘은 호기심이에요. 시인들이 나이 들어서 시를 못 쓰는 이유는 호기심이 식기 때문이거든요. 날카롭게 보고, 새롭게 보고, 뒤집어서 보는 게 저의 호기심이에요.”


랭보는 ‘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태주 시인은 ‘견자’란 ‘보는 사람’이라는 의미이지만 “아마도 새롭게 보는 사람, 들여다보는 사람, 관찰하는 사람”이라고 해석한단다. 그런 의미에서 호기심은  사람이 가진 두 개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견(見)’의 의미보다 한 발 더 나아가 ‘관(觀)’에 가깝다. 관(觀)은 어떤 현상이나 사태를 생각과 시각을 가지고 속에 내포된 의미까지 바라본다는 뜻이니까.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 1


2012년 광화문 교보생명 글판에 오르면서 유명해져 드라마에서 배우 이종석이 읽기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시 <풀꽃>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에게 <풀꽃>은 “많은 작품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했다.


“오늘이 어떤 의미냐고 물으면 오늘은 그저 많은 날 중의 하나일 뿐이잖아요. 만약 그날 사고가 나면 나쁜 날, 좋은 사람을 만나면 빛나는 날이고요. <풀꽃>이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것은 ‘나’가 아니라 ‘너’(독자들) 때문이에요. 마지막 구절인 ‘너도 그렇다’는 일종의 선언이거든요. 되돌릴 수 없는 말이요. 내가 너도 그렇다고 한순간에 모두가 풀꽃이라는 선언이 되는 거예요. 저는 사실 지금 예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늙고 병든 사람인데 작품 속에서 여전히 풀꽃이에요. 그만큼 <풀꽃>은 저를 바꾼 시예요. 시를 통해 ‘나만 그렇다’가 아닌 ‘너도 그렇다’라는 마음이 퍼진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글은 단순 명료하다. 명확하다. 인터뷰 때 마침 출간되어 들고 간 책 <부디 아프지 마라>는 시인이 어느 날 쓰러졌다 일어난 뒤에 일생을 돌아보며 쓴 책으로, 더욱 거침없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눈과 세상을 읽는 지혜로운 눈을 동시에 지닌 시인은 자신의 늙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들여다보기’를 택한 것이다.


인터뷰 중 반팔을 입은 나의 팔 한쪽을 유심히 살펴보던 시인은 “타투를 했네?”라고 말했다. 시인이 아무리 자유로운 스타일이라고 해도 어른이신데 타투를 가리고 올 걸 그랬나 싶어서 머쓱하게 웃었더니 그는 타투에 새겨진 글자의 의미를 묻더니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딱 한 마디 건넨다.


“참 겸손하게 새겼네.”


2년 간 고민하다 당차게 새긴 것이긴 하지만, 내 외모와 타투가 잘 안 어울린다는 생각에 누가 뜻을 묻거나 집중하면 괜스레 쑥스러워지는 타투가 그날 이후로 당당한 내 몸이 되었다. 타투를 보고 들은 어떤 칭찬보다 그의 한마디는 잊을 수가 없다.


문학관 구석구석에 있는 풍경과 종, 액자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풍금 연주를 듣는 것으로 인터뷰는 마무리 됐다. 아담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시인과 함께하니 새로운 세상이 됐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기운이라는 것이 있는데 내가 만난 몇 안 되는 시인들 또한 각자 커다란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나태주 시인과 있으면 투명하고 맑은 비눗방울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순식간에 나를 유년 시절로, 순수했던 순간으로 데려다주는 느낌이었다.



“대롱이 긴 벌이 꽃 깊숙한 데에서 꿀을 얻는 것처럼, 깊이 보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삶에서 탐험가, 과학자, 여행가가 되어야 해요. 삶 속을 탐험을 하는 거예요. 톨스토이가 그랬죠. 순간을 영원처럼 살고, 영원을 순간처럼 살라고. 그런 지혜를 발휘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나도 처음 글을 배울 때는 그 어떤 풍경을 바라보든 나만의 말을 찾으려고 치열하게 ‘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 봤던 세상은 정말 넓고 재밌었는데. 어쩌면 그때의 훈련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의 눈’은 반드시 글을 쓰지 않더라도 누구나에게나 필요하지 않나 싶다. 모두가 어딘가 몰두해 살아가고 있지만 뭔가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니까 말이다. 아무도 보려 하지 않는 것들에게 눈길을 던지는 것. 그 순간이 모여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리라 믿는다. 부디 아무도 아프지 않기를.



나태주, <부디 아프지 마라>, 시공사

보편에 이르는 길. 그것은 먼저 자기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는 데서 출발한다. 진정으로 나이가 든 사람이 되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게 된다. 그래야 한다. 먹고, 입고, 사는 것들에 목을 메고 살던 시절에서 한발 물러나 조금쯤 그런 것들을 포기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러할 때 느슨하고 넓고 부드러운 세상이 열린다. 젊은 시절과는 전혀 다른 인간상이 허락된다.

생화를 손으로 만질 때 촉촉한 수분의 느낌이 있다. 바로 그 수분의 느낌이 생명의 느낌이고 생명의 실체인 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또다시 잊지 말아야 한다. 왜 조화보다 생화가 아름답고 의미가 있는가. 언젠가 시드는 꽃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언제입니까?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요 물음이다. 나의 시간은 언제입니까? 나의 끝 시간은 과연 언제입니까? 때때로 물어야 하고 어물거리지 말고 대답하여야 한다. 그래서 늘 대답을 준비하면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 시간을 향해 씩씩하게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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