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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쌤 Aug 15. 2024

빈티지 행복인가봐

시 카드


essay

항상 내 공간을 갖고 싶었다. 그것이 방이라면 방이고, 책상이라면 책상이며, 침대라면 침대다. 10대에는 집이 망해서, 20대에는 아픈 엄마와 침대를 함께 쓰느라 나는 늘 남동생과 애매하게 방 하나를 공유했다. 


모든 공간을 가족과 공유하는 통에 나는 생각에 빠져야 할 때나 나만의 일을 해야 할 때 바깥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야만 했다. 가끔 집에 있을 땐 조금씩 묻혀 놓은 나를 샅샅이 뒤져 찾아야 안심이 됐다. 이를테면 일기장 같은 곳에 적어둔 우울하기 짝이 없는 문장들만이 나를 위로했다. 정리라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내 공간이 없는데 무엇을 정리한단 말인가. 


그때 내가 했던 건 정리라기 보다는 관리라고 표현하고 싶다. 정리는 버리거나 채우는 일이다. 필요 없는 것을 선별해서 잘 버리고, 차곡차곡 쌓는 일이다. 나는 일기장에 내 생각을 버렸고, 집 바깥에서 생각을 채웠다.


2년 전 안산에서의 삶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시로 이사했다. 원래 살던 곳에 가려면 대중교통으로 2시간이 넘게 가야 한다. 그저 기쁘기만 했다. 드디어 혼자 사는구나, 온전한 내 공간을 갖게 됐다! 그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벅차올랐다. 이사를 와서 가장 기뻤던 순간을 꼽자면 아침에 눈 떴을 때 변함없는 내 공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내가 흘린 머리카락 위치가 다음 날에도 변함없이 똑같고, 내가 직접 치울 수 있는 것. 내 손으로 내 것들을 정리하는 것이 행복했다. 


아무도 침범하지 않는 내 집에서 매일 정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내가 버리고 내가 채우는 집, 온통 나로 범벅 된 이곳을 오늘은 직접 따온 상추를 씻는 소리로 채웠다. 그리고 이렇게 문장으로 남긴다. 이곳은 나의 정리가 가능한 수납장이다.


시 카드는 에세이에 있는 단어 조각을 모아 만든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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