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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쌤 Aug 20. 2024

인연은 저질러지는 거야

시 카드

essay


얼마 전, 나에 대한 문답을 지인들에게 돌린 적이 있다. 나에 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제삼자의 목소리를 듣고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중 단점을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한 답이 내 속을 후벼 팠다. “상황에 따라 말을 쉽게 바꾼다”. 살면서 내가 실수라고 여기는 것들은 바로 나의 이 점 때문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 말라고 다짐해놓고 저지르는 짓들. 나는 그것을 실수라고 부른다. 누군진 몰라도 그 친구는 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다. 실수는 ‘흘린’ 기분이 든다. 특히 내가 실수라고 여기는 것은 저지른다기보다는 흘렸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내가 흘린 실수들은 대부분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들이다. 멈추고 싶지 않은데 멈추고 싶다고 말하거나, 다 알면서 모른 척했거나. 인생 대부분을 쿨하고 유쾌한 듯 살고 있지만, 정작 진심이 필요할 때마다 나는 입을 닫았다. 좋아한다는 표현도 싫다는 표현도 모두 말이다. 원하는 인연은 놓쳤고, 원치 않는 인연을 잡았던 실수의 순간들이 지금 모순된 나를 만든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는 대부분 차가운데 나에게만은 친절하던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과 정말 안 맞는다고 생각이 들었고, 왜 내게 살갑게 대해줄까 항상 의문이었다. 그렇게 의문을 품던 마음이 드러난 걸까. 내가 정말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의 전화를 몇 번이나 거절하던 때가 있었다. 힘들수록 남에게 티 내지 않는 내 성질머리 때문이었다. 전화가 온 순간을 분명 기억한다. 그렇지만 받지 않았다. 그때 내 마음 깊은 곳에는 ‘남들이 뭘 안다고 날 위로하겠어?’라는 못난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중에 그 사람에게 “난 정말 널 걱정했는데” 라며 장난스럽게 투덜거리던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하는 얘기겠거니 하고 흘려들었다. 사소한 일이지만, 아마 그 뒤로 나는 그의 사람이 아니게 됐던 것 같다. 다른 여러 계기로 인연이 끊어졌지만 나중에야 내가 그의 진심에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조금 얄밉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면서 부끄러워진다. 그 실수가 내 삶에 이렇게 깊이 박힌다는 것에 놀라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다시 연락해서 잘못했다고 한들 부러진 인연을 다시 이어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시절은 이미 다 한 것이니까.


흘린 실수를 닦고 다시 흘리지 않게 나를 잘 안아주는 수밖에 없다. 그게 너의 최선이었어,라고 달래주는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 할 때 나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혹여 같은 실수를 반복하더라도 내 모순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나에게만은 실수하지 않도록 말이다.


시 카드는 에세이에 있는 단어 조각을 모아 만든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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